연극 <굴레방 다리의 소극>에서 '굴레방 다리'는 서울 아현동 고가차도 부근을 말한다. 그 아현동 지하 단칸방에 아버지와 두 아들이 살고 있다. 이들은 그 방 안에서 연극을 한다. 그 연극의 내용이란 사실 아버지가 연변에서 서울로 오기 전 상황들이다.
큰 아들과 작은 아들은 여러 인물을 동시에 연기하며 아버지가 구축한 세계에서 살아간다. 그들에게 이 연극이란 현실을 부정하고 진실을 왜곡하는 방어막이자 살아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공연 초반 관객은 이 정신없고 숨 쉴 틈 없이 빠르게 돌아가는 이 연극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른다. 극도의 긴장감과 에너지가 폭발하는 이 연극의 목적은 아버지가 수여하는 '련기상'-극중 이들의 출신이 연변이기에 이렇게 표기한다- 수상이다. 물론 그 연기상은 언제나 아버지의 차지지만.
연극의 내용은 언제나 정해져 있으며 아들들은 대본대로 행동해야 한다. 그리고 '사실적'이지 못한 것을 싫어하는 아버지의 규칙 때문에 소소한 실수 하나에도 벌벌 떨 수밖에 없는 아들들은 이 답답한 현실을 벗어날 수 있다는 일말의 희망조차 없이 살아간다. 그런 그들에게 어느 날 이 감옥 같은 지하 단칸방에서의 탈출 가능성을 조금 높여주는 사건이 발생한다.
늘 똑같이 먹던 닭고기 대신에 소시지를 가져온 둘째 아들 덕분에 연극의 사실성을 훼손한 아들들은 아버지의 처벌을 받는다. 하지만 대신 그들의 일상에 마트 점원인 김리가 들어올 수 있게 된 것이다. 아버지의 왕국에 의심이라는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셈이다.
이 작품은 뮤지컬 <원스>의 작가 엔다 월쉬의 원작 <TheWalworthn Farce>를 극단 사다리 움직임 연구소의 임도완 연출가가 각색 연출한 작품이다. 원작이 아일랜드를 배경으로 했다면 이 작품은 연변과 서울 아현동을 주 무대로 했다.
이 세 부자가 벌이는 기묘하고 엉뚱한 연극은 아버지에게는 목적이 분명한 행동이지만 관객은 그 의미를 파악하기가 힘들다. 세 명의 배우가 펼치는 완벽한 메소드 연기 속에서 우리는 울고 웃다 보면 어느새 이 연극이 가지는 진실과 대면하게 된다.
아버지의 늘 강조하는 사실적인 연극과 마찬가지로 실제 이 작품 <굴레방다리의 소극>의 무대는 굉장히 사실적이다. 그에 반해 부조리하고 상징적인 이 연극은 말 그대로 소극에 가깝다.
두 시간 가까운 상연 시간 동안 단 한 순간도 한눈을 팔 틈이 없을 정도로 빠른 전개와 배우들의 열정적인 연기 덕에 연극이 끝나고 나면 멍한 상태에서 이 작품이 숨가쁘게 달려온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역할에 완벽하게 몰입하기 위해 삭발을 한 배우들의 혼신을 다한 열정과 원작을 뛰어넘었다는 평을 들은 <휴먼 코메디>, <보이체크>의 임도완 연출의 꽉 짜인 대본과 연출력에 박수를 보낸다.
공연은 3월 30일까지 학전블루 소극장에서 공연된다. 매주 수요일, 일요일에는 공연 후 관객과의 대화가 진행된다.
덧붙이는 글 | 본인 블로그에도 중복게재합니다. blog.naver.com/mmpictur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