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 한눈에
- 김충식 방통위 부위원장은 역대 위원장을 평가하면서, 최시중을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이경재를 유비에 비유했다.
김충식 방통위 부위원장은 역대 위원장 3명을 모두 '모셨다'. 이 가운데 최시중, 이경재 두 사람은 <동아일보> 선배이기도 하다. 과연 김 부위원장은 세 사람을 어떻게 평가할까.
"최시중 위원장은 집념으로 꼭대기까지 올라간, 권력의 중심에 선 '풍신수길'(도요토미 히데요시) 같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간난고초 딛고 최고 권력에 근접해 갔다는 점에서 뚝심과 고집이 있었죠. 이계철 위원장은 독일군 장교 같았어요. 정통부 출신 관료로서 좌고우면하지 않는 전형적인 행정가 인상이었죠. 이경재 위원장은 삼국지에 나오는 유비가 기독교 장로가 되면 저렇게 되지 않을까 농담한 적이 있죠." 김 부위원장은 "세 사람 다 나하고는 말이 통했다"고 말한다.
"입장이 달라 양보할 수 있는 게 제한적이었지만, 나도 할 얘기는 다했고 자기들도 속사정을 충분히 설명했어요. 다만 배후에 있는 여권과 보수정권의 벽에 가로막혀서 운신의 폭이 없었던 거죠."하지만 '이명박 멘토'로 권력의 정점에 있었던 최시중 전 위원장은 다르지 않았을까.
"내가 보기엔 최시중도 청와대 보좌하고 정권 보위한다는 생각이 강했지 자신의 권력에 집착했다는 생각은 안 해요. 범정권의 주요한 권력자였을 뿐이지.""최시중 '흑묘백묘론' 맞서 '대기업 알뜰폰' 진입 늦춰"최시중 전 위원장에 대해 평가를 요청하자 "감옥까지 다녀온 사람인데"이라며 말을 아꼈다. 다만 최 전 위원장과 의견 충돌을 빚었던 일화도 털어놨다.
"2011년 '알뜰폰(MVNO)' 사업자를 허가하기로 했는데 이통사 자회사인 KTis와 SK텔링크가 먼저 신청하고 영세업자들은 뒷전에 머무는 상황이었어요. 3대 통신사 위주 시장을 완화해 통신요금을 낮추려던 건데 말이죠. 최시중 위원장은 '흑묘백묘(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말로 1970년대 중국 덩샤오핑의 개방 정책을 상징)'였어요.대기업 자회사라도 통신료만 낮추면 되는 거 아니냐는 거였죠. 난 그런 발상은 대형마트 '통큰치킨'과 같다, 값싸고 주부들이 좋아하지만 대기업 집중, 골목상권 붕괴, 작은 치킨집들의 고통 때문에 경제 정의 차원에서 못하는 거 아니냐. 그래서 결국 SK텔링크 MVNO 사업을 6개월 유예 두고 진입시켰죠. 그게 오늘날 알뜰폰 250만 대 씨앗이 된 거죠."'알뜰폰'이란 이름에도 재미난 일화가 숨겨져 있었다. 최시중 낙마 이후 들어온 이계철 위원장은 정통부 관료 출신답게 'MVNO(이동통신망 임대사업자)'를 적극 지원했지만, 인지도가 낮아 더 쉬운 이름을 공모했다. 하지만 마땅한 후보가 안 나오자 이 위원장은 MVNO를 그대로 유지할 생각이었다.
"당시 담당 과장에게 그 얘기를 듣고 내가 '알뜰폰'을 직접 제안했어요. 이 위원장이 '왜 이런 이름이 없었나' 하면서 바로 채택했죠. 순간적으로 떠올랐던 건데, 내가 직접 상금을 받거나 공모 폐기하고 상임위원이 정해 발표하면 의미가 퇴색하니까 직원 가족 이름으로 공모했어요. 그렇지 않았으면 영원히 MVNO로 갔겠죠. 결과적으로 지금 이름값 한다고 생각해요."애초부터 유임보다 대학 강단에 다시 서길 기다렸다는 김 부위원장은 지난 3년을 평가해달라는 말에 허탈함을 감추지 못했다.
"지난 3년 원 없이 열심히 뜨겁게 해왔지만, 어떻게 바라보느냐는 객관적인 분들의 몫이겠죠. 나로선 국회, 야당, 언론단체 등 내 업무 연장선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과 가슴을 열고 양심과 지식을 다해 헌신하는 자세로 해왔는데 그 결과가 뭐냐 하면 허탈한 대목이 있어요."
"양심적인 구걸,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느껴봐야"
이런 '허탈함'은 앞으로 자신을 이을 '야당 차관'에 대한 당부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해보니 2가지 생각이 들어요. 하나는 3대 2라는 구도에서 장렬하게 전사할 수밖에 없는 상황도 있을 것이다, 불가항력이어서 전사하는 것만이 능사일 수 없어 당연히 고개 숙이고 설득하고 손을 내밀어서 재야 언론과 공정 방송의 몫을 챙기려고 애걸해야 할 상황도 있을 것이다, 그 접점을 어떻게 찾느냐가 과제였고 그분들에게도 그런 숙제 넘어갈 거예요.쉽게 하려면 3대 2로 지면 되지만 그걸로 책무를 다하는 게 아니에요. '양심적인 구걸'이란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도 느끼면서 책무를 다해야할 거예요. KBS 야당 추천 이사들이 열심히 수신료 문제로 투쟁했지만 아무것도 반영된 게 없이 여당 이사 7명 의견만 방통위로 넘어왔을 때 야당 원내대표가 분개하던 장면을 봤어요. 구조적으로 설득하고 손 내밀고 애걸해서 얻는 건 겉보기에 정말 비참하고 보잘 것 없지만 나름대로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의 가치일 수 있어요. 평가는 제대로 받지 못해도 실질적 투쟁의 성과를 거두는 게 양심적이기도 해요. 그게 방통위원의 숙명이죠."김 부위원장은 오는 25일 이임식을 마치고 26일 그가 몸담았던 강단에 복귀할 예정이다. 가천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로서 학부생과 대학원생들을 상대로 미디어원론과 저널리즘 특강 등을 진행할 예정이다.
"오랜 만에 강단에 섰는데 봄바람도 불고 신입생들 앞에서 강의하니까 설레고 좋네요. 내가 서야할 자리 같아 기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