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꿍이의 첫 등원
유치원에 처음 가는 날. 까꿍이는 한껏 들떠 있었다. 유치원에서 무려 23명의 친구를 만나는 것도 그렇고, 아빠 자전거 뒤에 타고 간다는 것 역시 즐거운 일이었다.
오전 7시 30분인 아침 일찍 일어나 유치원 가기를 기다리는 까꿍이. 녀석은 누나를 보내고 집에 남아 있을 두 동생에게 아침 내내 '나는 유치원 간다'를 무한 반복하고 있었다.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려 하니 가장 힘든 것은 역시나 아내였다. 평소 같았으면 늦게까지 잠투정을 하는 막내를 재우고 꽤 늑장을 피웠을 시간인데, 까꿍이가 오전 9시까지 등원하려니 평소보다 1시간은 일찍 일어나 분주하게 움직여야 했다.
밥하고, 먹이고, 씻기고, 옷 입히고, 머리 묶어 주고 등등. 물론 남편인 내가 도와주기도 했지만, 나 역시 회사 갈 준비를 하는 터라 저녁과 달리 아내를 도울 여유가 그리 많지는 않았다. 덕분에 높아지는 아내의 잔소리.
"어서 밥 먹어라." "TV 보지 말고 네 하던 거 해라." "화장실 들어가서 살 거냐. 빨리하고 나와라."
아내는 심각했지만, 그 잔소리들을 듣고 있자니 슬며시 웃음부터 나왔다. 익숙함 때문이었다. 20년여 년 전부터, 아침마다 집안에 울려 퍼졌던 그 소리. 아마 이제부터 시작이리라. 어느새 우리가 그만큼 나이 들었단 이야기겠지.
까꿍이가 외출복을 입고 유치원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서자 오전 8시 30분. 내게는 평소보다 이른 출근시각이었지만, 까꿍이를 유치원에다 데려다 주고 가려면 빠듯한 시간이었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15층에서 1층까지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는 매 층에 서서 등교하는 초등학생을 태우고 있었다. 우리 아파트 동에 이렇게 많은 초등학생이 있었던가!
드디어 자전거 뒤에 까꿍이를 태우고 출발. 다행히 녀석은 며칠 전 장착한 자전거 안장에 어렵지 않게 적응했는지 등 뒤에서 유치원 가는 내내 종알거렸다. 아빠랑 자전거 타고 유치원 가서 좋다느니, 저기 로기(초록색)랑 타요(파란색) 버스가 지나간다느니, 너 때문에 자전거가 무겁다고 하자 아빠가 덕분에 살 빠지겠네 등등. 어쩜 그리도 할 말이 많은지.
까꿍이의 쉼 없는 지저귐에 대꾸하느라 자전거는 평소보다 느렸지만, 딸자식을 뒤에 앉히고 자전거를 운전하는 기분은 색달랐다. 딸과 연애하는 기분이랄까? 그러고 보니 산들이 출산 이후 까꿍이와 단둘이 있었던 적은 거의 없었구나.
어느새 도착한 초등학교 정문 앞. 보안관 선생님께 인사한 뒤 녀석과 함께 초등학교 운동장을 가로질러 유치원으로 갔다. 현관에서 까꿍이는 자신의 이름이 붙은 신발장에 신발을 가지런히 올려놓은 뒤 선생님의 지도에 따라 자신의 옷장을 찾아 가방이며, 외투를 집어넣었다. 그리고 아빠에게 안녕을 고하는 녀석. 그래, 우리 딸이 진짜로 많이 컸구나.
까꿍이와 헤어진 뒤 회사로 가는 동안 기분이 참으로 묘했다. 무엇보다 내가 어느새 학부모가 될 만큼 나이 들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으며, 씩씩하게 아빠와 헤어진 뒤 선생님의 손을 잡고 사라지는 까꿍이가 대견했다.
그런데 이 섭섭함은 뭐지?
까꿍이의 유치원이 회사와 집 가운데 있기에 아침 등원은 출근하는 길에 내가, 하원은 아내가 시키기로 했다. 다만, 일이 있을 때는 가능한 사람이 하기로 했었는데 그날은 아내가 모임이 있었던 터라 내가 까꿍이를 유치원에서 받아 아내에게 데려다 주기로 했었던 날이었다.
하원 시간에 맞춰 초등학교 앞으로 갔다. 등원시키던 아침과 달리 대부분 엄마들이었는데 교문 앞에서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예전 서구 영화에서 보던 장면들과 비슷했다. 그때는 왜 부모들이 아이들 하원 시간에 맞춰 대기하고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지금 내가 딱 그 꼴이었다. 내가 어렸을 때도 어머니가 하원 시간에 맞춰 유치원 앞에서 기다렸던가? 난 유치원에서 집까지 혼자 걸어왔던 것 같은데. 그만큼 시절이 험해졌다는 뜻일까?
이윽고 조잘조잘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선생님의 안내에 맞춰 아이들이 한 줄로 서서 교문 밖으로 걸어 나오고 있었다. 그래도 제 딸이라고 제일 끝에서 따라오고 있는 까꿍이가 가장 먼저 보였다.
반가운 마음에 손을 흔드는 나. 그런데 어라? 엊그제 하원 때와 달리 까꿍이가 나를 본체 만체 하는 것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무언가에 정신이 팔려서 나를 보지 못하는 듯했다. 뭐지?
이유는 쉽사리 알 수 있었다. 까꿍이가 혼자 줄을 서서 내려오던 엊그제와 달리 옆에 어느 남자 아이랑 손을 꼭 잡고 내려오는 것이었다. 만면의 웃음을 머금은 채 무엇이 그리도 좋은지 까르르대면서.
순간 흠칫했지만, 아이가 선생님에게 인사하고 헤어지기까지 태연하게 지켜만 봤다. 다행히 아이는 선생님께 인사한 뒤 곧바로 내게 달려왔으며, 언제 그랬냐는 듯 내게 매달리며 아빠가 와서 좋다며 싱글벙글했다.
차를 타고 집으로 가는 길. 까꿍이에게 슬며시 물었다.
"남자친구야? 잘 생겼다.""응. 그렇지? 그래서 좋아하는 거야.""저 친구도 네가 좋대?""몰라. 내가 옆에 앉아도 되느냐고 물었더니 좋다고 해서 그때부터 좋아해."극히 아이다운 대답이었지만, 아빠로서 그 대답을 듣고 있자니 기분이 복잡다단했다. 약간 섭섭하기도 하고, 다행스럽기도 하고, 사랑스럽기도 하고. 대체 이 기분은 뭐지? 설마 질투? 많은 아버지가 결혼식장에 딸자식 손잡고 들어가서 사위에게 넘길 때 기분 묘하다더니 설마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이 감정이 그와 같은 맥락은 아니겠지? 난 까꿍이가 커서 남자친구를 데리고 오더라도 전혀 아무렇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집에 와서도 까꿍이는 엄마에게 남자친구 이야기를 꺼냈다. 생각만 해도 좋은지 부끄러워하면서도 자랑스럽게 남자친구를 이야기했다. 이제 곧 아침이 되면 남자친구에게 잘 보인다며 직접 옷을 고르는 시기가 오겠지.
남자친구 이야기를 하면서 붉게 홍조를 띠는 까꿍이를 보고 있자니 세월이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산원에서 녀석을 안아 들었던 게 바로 엊그제 같은데, 벌써 다 컸다고 남자친구가 잘생겼네 어쨌네 하고 떠들다니. 내가 6살 때 유치원에서 꼭두각시 춤을 같이 추는 짝꿍이 예쁘다고 했을 때 우리 부모님도 이와 같았겠지.
어쨌든 까꿍아. 유치원 등원을 축하하며, 친구들과 더욱 열심히 뛰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