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란, 결국 사투르누스의 기습이다'이 말이 무슨 의미일까? '사투르누스(Saturn)'는 로마신화에 나오는 농경의 신이다. 그리스 신화의 '크로노스'에 해당한다.
사투르누스는 '자식의 손에 의해 죽음을 맞을 것'이라는 저주를 받았고, 그것이 실현될까봐 두려워서 자신의 자식들을 차례로 잡아먹은 것으로 유명하다.
스페인의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는 아들을 먹어치우는 사투르누스의 광기어린 모습을 그림으로 남겼다.
잔인하게 묘사된 그림과는 달리 고대 로마에서는 사투르누스를 기념하여 매년 말이 되면 떠들썩한 축제를 벌였다. 또한 사투르누스의 이름은 토성(Saturn)과 토요일(Saturday)에도 남아있다. 이런 사투르누스가 우리의 인생을 기습한다?
모호한 말을 남기고 자살한 작가위의 한 문장은 토머스 쿡의 2012년 작품 <줄리언 웰즈의 죄>에 등장하는 인물 줄리언이 자신의 공책에 남긴 글이다. 작품 속에서 줄리언 웰즈는 평생 동안 세상을 떠돌며 어두운 인물들을 찾아다니고 그것을 글로 남긴 작가였다.
줄리언은 러시아의 연쇄살인범, 헝가리의 마녀, 미제로 남겨진 스페인의 살인과 고문사건 등을 추적해 왔다. 줄리언의 한 지인은 그를 가리켜서 '그런 인간들을 머릿속에 넣고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겠구나'라고 말을 할 정도다.
그런 줄리언이 어느날 자살을 했다. 작은 배를 타고 호수 한 가운데로 들어간 뒤에 칼로 자신의 양 손목을 그었다. 알 수 없는 의미의 문장을 남긴 채로. 줄리언의 가장 친한 친구였던 필립은 충격을 받고 슬퍼하지만 곧 줄리언의 자살을 조사하기로 마음먹는다.
줄리언은 그의 저서 <쿠엥카의 고문>의 헌정사에서 '내가 지은 죄의 유일한 목격자인 필립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라고 썼다. 하지만 필립은 아무리 생각하고 기억을 더듬어도 줄리언의 죄를 목격한 적이 없다. 그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결국 자살하고 말았을까. 필립은 줄리언의 여동생과 함께 그의 죄를 추적하기 위해서 파리와 런던, 헝가리, 러시아 등을 떠돌기 시작한다.
죽음 뒤에 숨겨진 진실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만의 밀실을 가지고 있다. 그 안에는 타인에게 드러내고 싶지 않은 기이한 욕망이나 감히 드러내지 못하는 이상한 약점이 담겨 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부끄럽고 슬픈 인식도 함께 담겨 있다. 어쩌면 그 밀실 안에는 남들이 알지 못하는 '죄'가 들어있을 수도 있다.
가끔씩은 이런 밀실 안으로 들어와서 문을 닫아 걸고 자기만의 세상에 빠져들 수 있겠지만, 이 밀실을 더 이상 유지하거나 숨기기 힘들 경우에는 줄리언처럼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도 있다. 삶이란 것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결과에 모든 것이 달린 복권과도 같다. 가슴속에 꼭꼭 숨겨놓았던 것들이, 평소에 두려워하던 어떤 것들이 언제 눈 앞에 나타날지 모른다.
그것은 사투르누스의 기습과도 같다. 믿고 있던 아버지에게 잡아 먹혀서 인생이 끝장난 자식들처럼, 우리의 인생도 영문도 모른채 단 한 순간에 바뀌어서 모든 것이 예전과 같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될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계속 앞으로 나아가지만, 살다보면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을 때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인생이란 결국 사투르누스의 기습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줄리언 웰즈의 죄> 토머스 쿡 지음 / 한정아 옮김. 알에이치코리아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