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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 전문작가         

2008년 4월 5일, 호남의병전적지 가운데 전북 임실의 전해산 의병장 무덤과 전남 화순의 양회일 의병장 쌍산의소, 두 곳을 둘러보자 밤이 늦었다. 양 의병장 후손인 양동하(전 능주 전교) 선생은 떠나려는 나에게 저녁이라도 먹고 가라고 옷소매를 꼭 잡았다.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이 궁벽한 의병지를, 더욱이 영남 태생의 선생이 당신 고장보다 먼저 호남 의병지부터 찾아준 것도 고맙고…."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 5층 사진자료실에서 한국전쟁 자료들을 스캔하고 있다. 그때 내 노트북이 없어 오마이뉴스 권우성 기자 것을 빌려갔다(2004. 2).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 5층 사진자료실에서 한국전쟁 자료들을 스캔하고 있다. 그때 내 노트북이 없어 오마이뉴스 권우성 기자 것을 빌려갔다(2004. 2). ⓒ 박도
나는 그분의 손길을 도저히 뿌리치고 떠나올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 고장 특미인 육회비빔밥을 들고나자 밤 9시가 넘었다. 그새 바깥이 매우 컴컴했다.

시외버스 정류장으로 갔으나 이미 광주행 막차는 막 떠난 뒤였다. 그 고장에는 하룻밤 묵을 만한 숙소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하는 수 없이 택시를 잡고 광주로 향했다.

광주로 가는 도중에 손전화가 울려 받고 보니 열흘 전에 강원도 산골 내 집까지 찾아와 인터뷰를 하고 간 한 잡지사 기자였다.

"선생님 기사를 다 써 데스크로 넘기려고 하는데 그냥 '작가'라고만 하기에는 좀 부족한 듯하여 '현대사 전문작가'라고 달겠으니 양해해 주세요."
"굳이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아니에요. 선생님은 남다른 글을 쓰셨잖아요."

부끄러운 고백

그 얼마 뒤 내 집으로 배달된 그 잡지를 보자 '현대사 전문작가'라는 호칭이 붙어있었다. 그 뒤로 다른 언론에서도 '현대사 연구가' 등의 호칭을 붙여주었다. 아마도 내가 펴낸 책을 유심히 본 편집자들이 그런 호칭을 붙인 모양이다.

 연해주 연추(현, 극동 러시아 크라스키노)에 있는 안중근 의사 단지동맹비 앞에서 기자(2009. 10.)
연해주 연추(현, 극동 러시아 크라스키노)에 있는 안중근 의사 단지동맹비 앞에서 기자(2009. 10.) ⓒ 박도
내가 유독 근현대사에 관심을 가지고 그 역사 현장을 탐방하는 데는 우리 학생들의 근현대사에 대한 역사 지식이 거의 까막눈 수준이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현직에 있던 어느 해, 서울대학교 수시 대입고사가 끝난 다음 날 등교한 한 학생의 표정이 밝지 못했다. 그 사연을 들어보자 구술시험관이 '윤봉길 의사'에 대해 질문했는데 제대로 답변을 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너 그것도 몰랐니?"라고 꾸중하려다가, 순간 그 잘못은 나를 비롯한 교사들에게 있다는 것을 알고는 얼굴이 뜨거웠다.

사실 나도 대학시절 날마다 등굣길에 '왕산로'를 지나다니면서도 그 유래를 모르고 지냈다. 그러다가 느지막이 하얼빈에 가서야 그 유래가 된 '왕산' 선생은 내 고향 출신으로 대한제국 시절 13도 창의군 군사장 허위 선생이라는 사실을 알고 쥐구멍을 찾고 싶도록 부끄러웠다(이웃마을 출신인 박정희 대통령은 익히 잘 알면서도).

그 부끄러움으로 나는 1999년부터 국내외에 숨겨진 근현대사의 현장에서 묻힌 역사의 진실을 찾고자 부지런히 발품을 팔았다. 국내 의병지는 물론 중국대륙 네 차례, 미주 세 차례, 일본 다섯 차례, 러시아 한 차례 등을 취재노트와 카메라를 메고 누볐다. 

어느 해 여름은 나 혼자 북만주 광야를 헤매며 한 파르티잔의 희생지를 찾기도 했다. 또 어느 해 초겨울에는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행적을 뒤쫓고자 속초에서 배를 타고 극동 러시아 크라스키노, 블라디보스토크, 우스리스크, 포브라니치나야, 쑤이퍼허, 하얼빈, 채가구, 창춘, 다롄, 뤼순까지 홀로 답사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하얼빈 행 열차를 탔을 때다. 러시아 여승무원이 "러시아어나 중국어를 아느냐"고 물었다. 내가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자 그가 다시 물었다.

"Can You speak English?"
"No."

나의 대답에 승무원은 입을 닫지 못하고 난처해 했다. 나는 그 열차를 타고 생수와 비스킷만 먹으며(러시아어를 몰라 사먹지 못해) 40시간 45분 만에 하얼빈에 도착했다. 그때까지 그와 나는 필담이나 손짓으로 소통했다. 그렇게 답사하여 펴낸 책이 <영웅 안중근>이었다.

어린 영혼을 위하여

미국 메릴랜드 주 칼리지파크 소재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 세 차례 70여 일 방문하여 한국전쟁 사진 약 2000컷 가까이 수집해 왔다. 그런 뒤 펴낸 책이 <지울 수 없는 이미지 1~3> <나를 울린 한국전쟁 100장면>이다.

이밖에 펴낸 책이 <개화기와 대한제국> <일제강점기> <누가 이 나라를 지켰을까> <항일유적답사기> 등이다. 나의 근현대사 탐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나는 이즈음은 <미군정기> 편을 쓰고 있는데, 욕심 같아서는 건강이 허용하는 한 2000년대까지 현대사도 펴낼 생각이다.

 박도 엮음, 사진으로 보는 근대사 편 <개화기와 대한제국>
박도 엮음, 사진으로 보는 근대사 편 <개화기와 대한제국> ⓒ 눈빛출판사
 박도 엮음, 사진으로 보는 근대사 편 <일제강점기>
박도 엮음, 사진으로 보는 근대사 편 <일제강점기> ⓒ 눈빛출판사

사실 나는 사학과 출신이 아닌, 30여 년 고교에서 국어를 가르친 국문학과 출신이다. 그래서 역사 전문가들이 펴낸 책을 참고하여 우리 청소년들이 근현대사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마치 어미닭이 지렁이와 같은 거친 먹이를 병아리들이 먹기 좋게 쪼아 주는 그런 역할을 하고 싶다.

나는 오늘도 여러 문헌과 사진을 뒤적이며 부지런히 컴퓨터 자판을 두들기고 있다. 후일 어린 영혼들이 내가 쓴 책을 보고 지난 역사를 제대로 쉽게, 그리고 올곧게 얘기해 주었다고, 그들이 내 이름을 기억해 준다면 더 없는 영광이겠다.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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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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