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가 아니면 초등학교 3학년이 중학교 2학년 도형 척척척'
'초등학교 3, 4학년 때 오십시오. 5, 6학년 때는 늦습니다'
'이 (학원)버스의 종점은 SKY(서울·고려·연세대)입니다'.
초·중·고교생들의 선행학습을 부추기는 학원 광고들이다. 도처에 널린 이 같은 학원 광고는 '교육과정을 미리 공부해 두지 않으면 나중에 뒤떨어진다'는 식으로 학부모와 학생의 불안 심리를 자극하고 있다.
정부가 공교육의 정상화를 위해 학원들의 지나친 선행교육 광고·선전을 단속키로 했다. 이르면 오는 9월부터 시행될 '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 특별법'(선행교육 금지법)에 따라서다.
그러나 선행교육 광고·선전 금지 조항이 전혀 구속력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선행교육금지법에 선행교육 광고를 하지 못하도록 해놓고도, 실제 광고하는 학원 등에 대한 처벌 규정이 빠진 것이다. 선행학습을 실시하거나 유발한 초·중·고교와 대학의 경우 해당 교원 징계와 재정 지원 중단·삭감, 정원·학과 감축 등 강력한 제재를 취할 수 있는 것과 달리 사교육업계에 대해서는 실질적인 규제조치가 마련돼 있지 않다.
물론 이 법대로라면 학교에서 '배우지도 않은' 어려운 문제를 출제하기 때문에 학원을 다닐 수밖에 없다는 명분은 줄어들지 모른다. 그러나 의도와 달리 법의 실효성은 우려되는 부분이 없지 않다. 선행학습은 학교보다는 학원, 교습소 등 사교육기관에서 행해지는 경우가 대부분인데도 사교육기관에 대한 선행교육 규제는 광고 제한 정도에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학부모들은 입시제도가 변화하지 않는 한 여전히 남보다 미리 먼저 많이 학습하지 않으면 경쟁에서 뒤쳐질지 모른다는 막연한 공포를 버리지 못할 것이고 학원의 '공포조장 마케팅'과 맞물려 쉽게 근절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불난 집의 불은 끄지 않고 집 옆에 불조심 포스터 붙이는 꼴
선행학습을 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교육 현실을 나 몰라라 해서 눈 가리고 아웅식의 법만 만든다고 아무것도 해결 되지 않는다. 선행학습을 하는 이유가 뭘까? 시험문제가 어렵기 때문이다. 시험문제를 어렵게 내야 하는 이유는 변별력을 가져야 대학들이 학생들을 선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학생들이 대학만을 바라보고 밤낮으로 공부하게 만들어 놓은 지금의 대학입시중심의 교육제도가 결국 시험문제의 수준을 어렵게 할 수 밖에 없고 학생들의 공부 강도를 높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당연히 경쟁에서 앞서가기 위해서는 먼저 배우고 먼저 달달 외우는 선행학습이 필수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근본적인 문제에 해결책을 찾지 않고 이름만 그럴듯하게 만든 선행학습금지법은 불난집에 불은 끄지 않고 집 옆에 불조심 포스터 붙이는 꼴이다. 당장 학교에서는 선행학습이 안 이루어질 수 있다고 하지만 사교육시장 자체는 오히려 물 만난 고기마냥 더욱더 선행학습의 열린장이 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그러면 결국 학교에서 학생들은 수업에 집중력을 가질 수 없게 되고 비싼 학원비 부담에 사교육에 소외되는 서민들의 자녀들은 배움과 기회에서 더욱 차별이 커지게 된다.
우리가 걱정할 것은 '선행학습'이 아니라 '선행학습밖에 보지 못하는 눈'이다. 애초에 '학교 교육의 정상화'를 지향하고 학생들의 '학력 신장'과 '사람다운 사람으로 기르기'에 뜻을 두었다면 학교가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을 주고 자생적으로 교육의 생태를 정착시킬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외풍을 막아주겠다고 이리저리 바람막이를 쳐준들 온실 속의 화초가 튼실하게 자랄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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