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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게 되어 영광입니다> 겉표지
<열게 되어 영광입니다>겉표지 ⓒ 문학동네
'18세기 중순의 영국'하면 떠오르는 것은 산업혁명과 대영제국이다. 당시에 영국은 막강한 군사력으로 세계의 바다를 제패하고 있었고, 산업혁명의 시작과 함께 경제성장을 이루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 영국의 수도 런던을 배경으로 한 작품들을 읽다보면 '런던 서민들의 삶은 참 고단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 하층민들의 삶을 보면 고단함을 넘어서 비참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영국에는 귀족제도가 남아있었고 당연히 귀족과 평민에 대한 차별도 존재하고 있었다. 귀족들이야 부와 사치를 누리면서 살고 있었지만, 하층민들은 하루하루 먹고 살기 위해서 온갖 종류의 노동에 시달리고 있었다.

여성에 대한 편견도 있었다. 여성이 직업을 가졌다면 일을 하지 않으면 먹고살 수 없는 하층민 아니면 매춘부로 여겨졌다. 양갓집 부녀자들은 얌전히 집에 앉아서 무료한 시간을 우아하게 허비해야 한다.

런던에서 발견되는 정체불명의 시체들

미나가와 히로코의 2011년 작품 <열게 되어 영광입니다> 역시 18세기의 영국 런던을 배경으로 한다. 작품 제목이 의미하는 것은 죽은 사람의 몸을 열게 되어서, 즉 해부하게 되어서 영광이라는 의미다. 어찌보면 좀 엽기적이기도 하다.

당시에는 해부학이라는 것이 하나의 학문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죽은 사람의 몸을 절단하거나 절개해서 열어보는 것도 금기시되던 때였다. 이런 일은 주로 외과의사가 했지만, 외과의사는 이발사와 비슷한 정도의 직업으로 취급되고 있었다. 반면에 내과의사는 외과의사와 달리 사회적인 지위와 명예를 얻고 있었다.

그런 만큼 해부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시신을 구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요즘에는 장기기증, 시신기증 이런 제도가 발달해 있지만 그때는 그런 것도 없었다. 거리에서 굶어죽은 거지의 시신, 일하다가 사고로 죽은 시신 등을 구해와서 해부를 하며 인체에 대한 지식, 의학에 대한 지식을 넓혀가고 있던 때였다. 때로는 무덤에서 몰래 파내온 시신도 그런 해부의 대상이었다. 그런 일을 전문으로 하는 도굴꾼들도 있었다.

<열게 되어 영광입니다>에서는 외과의사가 주인공 중 한 명으로 등장한다. 그는 해부학에 정신이 팔려서 도굴꾼들에게 시신을 사들이며 해부에 열중한다. 그를 돕는 제자들도 있다. 해부과정을 상세하게 그림으로 남기는 제자, 약물중독에 대한 검사를 위한 장치를 만드는 제자도 있다.

그 외과의사의 연구실에 정체불명의 시신 두 구가 등장한다. 사지가 잘린 소년과 얼굴이 짓뭉개진 중년 남성이다. 외과의사와 그의 제자들은 그 시신에 얽힌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서 움직이기 시작한다.

18세기 런던 빈민가의 풍경

작가 미나가와 히로코는 일본 작가이지만 18세기의 런던을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다. 당시 영국에서는 현대의학과 전통의학, 과학과 미신이 공존하고 있었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대립하고 있었다. 작품 속에서 런던 시민들은 해부학 의사를 가리켜서 '사람의 몸을 절단하는 악마'라고 말한다. 반면에 의사는 지역판사에게 의학의 발전을 위해서 좀더 시신을 구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작품에서 묘사하는 런던의 다른 풍경도 흥미롭다. 런던에는 밑바닥 직업도 많았고 그 직업을 구하지 못해서 안달난 어린아이들도 많았다. 하루종일 땅에 코를 처박고 개똥을 모아서 파는 아이들도 있고, 그 개똥을 가지고 가죽을 손질해서 먹고사는 아이들도 있다. 템스 강의 진흙을 뒤져 잡동사니를 모아서 푼돈으로 바꾸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사람들은 감옥 생활이 오히려 템스 강 생활보다 낫다는 얘기를 한다.

이렇게 복잡한 도시이니만큼 그 안에서 괴상한 살인사건이 발생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작품 속의 미스터리도 미스터리지만, 그보다는 오히려 작가가 묘사하는 18세기 런던의 우울한 풍경에 더욱 관심이 간다.

덧붙이는 글 | <열게 되어 영광입니다> 미나가와 히로코 지음 / 김선영 옮김. 문학동네 펴냄.



열게 되어 영광입니다

미나가와 히로코 지음, 김선영 옮김, 문학동네(2014)


#열게되어영광입니다#미나가와 히로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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