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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밥 한 공기는 보통 15숟갈 분량이다. 물론 밥그릇 크기나 수저에 얼마를 담느냐에 따라 숟갈 숫자는 달라질 수 있다. 편의상 15숟갈의 밥을 먹는다고 가정하자. 이 경우 3숟갈 정도에 해당하는 열량, 즉 20%가 두뇌의 에너지원으로 사용된다.

두뇌의 무게는 약1400g, 성인 기준으로 체중의 단 2% 선이다. 하지만 섭취 에너지의 20%가 두뇌에서 소모되므로, 무게 기준으로는 두뇌는 근육이나 다른 조직에 비해 10배쯤 에너지를 많이 잡아 먹는다.

성인의 하루 권장 섭취 열량은 여성 2100 칼로리(kcal), 남성은 2300 정도다. 그러므로 두뇌가 필요로 하는 열량은 하루 대략 450칼로리쯤이다. 밥 한 공기의 열량을 300칼로리라고 하면, 한 공기 반쯤에 해당하는 열량이 매일 두뇌로 가는 셈이다.

축구는 제법 격렬한 편에 속하는 운동이다. 몸무게가 70kg쯤인 사람이 1시간 동안 열심히 축구장을 누비면 600칼로리 안팎의 열량이 사용된다. '근육' 하나 까딱하지 않는 것처럼 여겨지는 두뇌의 하루 열량 소모가 1시간 동안 열심히 축구를 했을 때와 별 차이가 나지 않는다? 이 대목에서 정신작용의 에너지 소모가 엄청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다.

머리로 무언가를 생각하고, 말하고, 깨닫는 등의 두뇌활동에 정말 축구처럼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는 걸까? 답은 '그렇다'일 수도 있고, '아니다'일 수도 있다.

시쳇말로 머리에 쥐가 날 정도로 어려운 수학문제들을 1시간 동안 풀었다고 하자. 이때 소모되는 에너지는 십중팔구 수십 칼로리 선, 즉 밥 한두 숟가락에 지나지 않는다. 다시 말해, 두뇌 활동에 에너지가 그다지 많이 들지 않는다고 답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고 인식되는 상태에서 에너지 소모는 어떨까? 깊은 잠에 빠져 있는 게 좋은 예인데, 하루에 12시간 넘게 잠을 자도 우리 두뇌는 일상 수준, 즉 450칼로리에 육박하는 에너지를 소모한다.

사람의 두뇌란 살아 있는 한, 전기 코드를 꼽고 스위치를 '온' 시킨 컴퓨터와 유사하다. 뇌의 모든 신경들은 서로 다른 신경과 이어져 서로 신호를 보내는 네트워크를 이룬다. 헌데 신경들이 눈에 띄게 활동하지 않는 '안정 시점'에서 소비되는 에너지가 실제 뇌가 소비하는 에너지의 거의 절반 정도에 이른다. 휴식을 취해도 상대적으로 엄청난 에너지를 '기본으로' 잡아 먹는 게 두뇌란 얘기이다.

초고성능 컴퓨터일수록 전기를 많이 잡아 먹는다. 생물체들의 두뇌 또한 비슷하다. 섭취 열량 가운데 두뇌활동을 유지하는데 쓰는 에너지의 비율이 인간의 경우 다른 동물에 비해 월등하게 높은 게 단적인 예다.

물고기나 개구리, 새 등은 섭취한 에너지의 2~8% 수준만을 두뇌 활동을 위해 쓰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간과 가장 닮은 침팬지나 오랑우탄 등에서는 이 비율은 크게 높아지지만, 인간 수준에는 미치지 못한다.

에너지 소모라는 측면에서 인간 두뇌의 독특한 면모는 신생아에서 보다 뚜렷하다. 신생아들은 수유 열량의 75% 가까이를 두뇌에서 소진시킨다. 사춘기가 오기 전인 10~11세 청소년들도 성인보다 1.5배 가량 많은, 즉 섭취 열량의 35% 안팎을 머리에서 사용한다.

인간 두뇌의 에너지 소모 특징을 보면, 성장기에 특히 잘 먹어야 하는 이유가 한층 확실하다. 또 두뇌 활동에 필요한 영양원은 포도당 형태로 공급되기 때문에, 수험생이나 머리를 많이 써야 하는 사람들에게 적절한 탄수화물 섭취가 긴요함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런가 하면 두뇌의 에너지 소모 양태와 관련해 평소 구분해 이해해야 할 정신작용도 있다. 충격이나 슬픔, 분노 등은 두뇌만 감당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즉, 수학문제 풀기와 같은 순수 정신작용이 아니라는 뜻이다.

가까운 사람이 세상을 떠난다든지, 이혼의 당사자 등이 될 때 정신상태는 두뇌 이외의 신체 기관에서도 많은 에너지를 잡아 먹는 활동이 '동반'된다. 심장이 벌렁거리고, 몸을 부들부들 떨고 눈물과 땀을 만들어 내는 등의 과정에서 추가적으로 적잖은 에너지가 소모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심장도 하루 종일 '켜져 있는 상태'의 두뇌처럼 죽기 전까지 움직임을 멈추지 않는다. 성인 심장의 무게는 평균 330g정도로 두뇌의 4분의 1정도에 불과하다. 하지만 평소 박동이 유지되기 위해 필요한 에너지는 하루 150칼로리 정도로 꽤 높은 편이다. 분노나 충격 등으로 심장 박동이 빨라지면 에너지 소모가 많아지는 건 자명한 이치이다.

똑같은 무게라면, 심장의 에너지 소비가 100이라고 할 때 두뇌는 80 안팎에 불과하다. 냉장고나 에어컨 같은 주요 가전제품에는 '에너지소비효율등급'이라는 노란색 딱지가 붙는다. 두뇌와 심장을 가전제품에 비유하면, 심장에는 에너지소비효율이 낮은 딱지가 붙을 수 밖에 없다.

두뇌 이외의 신체가 일을 했다는 건 곧 에너지를 소모했다는 의미이다. 특히 심장처럼 두뇌에 비해 상대적으로 에너지소비효율이 떨어지는 인체 기관이 개입하는, 분노나 슬픔 등은 에너지 소모가 훨씬 크다. 절망하거나 슬퍼하는 등의 행위는 이른바 강도가 센 '감정 노동'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이성과 감성 모두가 자극을 받으면 사람들은 더 지치고 더 피곤해 할 수밖에 없다. 

도움말: 대구경북과학기술원 김은경 교수

덧붙이는 글 | 위클리공감(www.korea.kr/gonggam)에도 실렸습니다. 위클리공감은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행하는 정책주간지입니다.



#두뇌#심장#분노#이성#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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