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리지 않는 의문으로 가득한 잃어버린 도시오얀타이탐보에서 출발한 기차가 마추픽추가 있는 종착역에 도착했을 때는 비가 제법 내리고 있었다. 오늘은 더 이상의 기차가 없음을 안 역 주변의 상인들은 일찌감치 문을 닫고 철수해 버렸는지 불빛이라고는 흐릿하게 빛나는 가로등뿐이다.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잉카 유적지는 보이지 않았다.
오로지 외국인만 탈 수 있는(정확히는 외국인은 반드시 이 기차를 타야하는) 기차에서 일본과 중국의 단체 관광객이 요란스럽게 빠져나가고 나니 텅 빈 기찻길에 남은 건 어느새 준과 나뿐이었다. 비가 내려 제법 싸늘해진 밤 11시가 지난 외딴 마을에서 어디를 어떻게 가야할 줄 몰랐던 우리는 되는 대로 눈에 띄는 숙소를 잡고는 따뜻한 물에 샤워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위안으로 삼았다.
애초에 쿠스코에서 출발하는 마추픽추행 열차를 타면 되었겠지만, 고작 3시간 거리의 기차비가 무려 80달러라는 사실에 놀란 우리는 기차를 최소한의 구간으로 탈 수 있도록 쿠스코의 다음 기차역인 오얀타이탐보까지 봉고차로 이동했다. 덕분에 기차비는 절반으로 줄었지만, 정원을 훌쩍 넘긴 봉고차에서 세시간이 넘게 구겨져서 온 그 고통은 이루말 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같은 구간을 현지인들은 우리 돈 4천 원에 이용할 수 있는 것을, 기차의 겉만 치장해 놓고는 외국인 전용기차로 스무배가 넘는 요금을 부과한다는 현실이 매우 못마땅 했다. 그날 밤 우리가 할 수 있었던 일은, 쿠스코의 단돈 6000원짜리 마사지를 그리워하며 잠드는 것 뿐이었다.
밤새 쏟아지는 빗소리에 불안했는지 지나치게 일찍 눈이 떠졌다 싶었는데 다행히도 버스가 다닐 시간 즈음에는 비가 그쳤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마추픽추가 있는 산 아래의 작은 마을 아구아스 칼리엔테였다. 우리가 숙소 바깥으로 모습을 드러내자 학교로 가던 동네 소녀들이 어김없이 모여들어 수도 없이 사진을 찍어댄다.
한바탕 나리를 치르고 나서 우리는 두고 두고 후회할 결정을 내리고 말았다. 마추픽추 유적지로 가는 셔틀버스 대신 저 높은 봉우리를 걸어서 오르기로 한 것. 비가 그쳐서 기분이 좋아진 탓인지 우리는 '이제 더 이상의 트레킹은 하지 않겠다'라는 다짐을 또 어기고 기어이 버스를 지나쳐 끝없는 산길을 걷고 또 걸었다.
마추픽추를 감고 있는 겹겹의 산맥들은 그 끝을 알 수 없다. 산맥 사이로 이어진 길들은 다시 또 다른 산을 돌아 강으로 이어지고 간밤에 내린 비로 제법 물이 불어난 계곡은 거친 소리를 내며 흐른다. 그리고 그 길을 지나 나선형으로 빙글빙글 돌아 높은 산길을 걷고 또 걷는 체험은 기억하고 싶지 않을 만큼 끔찍했다. 기어코 마추픽추에 도착했을 때는 우리는 이미 모든 기운이 빠진 상태.
그러나 겨우 마추픽추에 입성한 우리는 거의 뛰다시피 달려 마추픽추를 감싸고 있는 높은 봉우리를 향해 달렸다. 마추픽추의 전체 풍경을 조망할 수 있는 와이나픽추에 오를 수 있는 시간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금 도착한 곳이 어딘지도 모른 채, 입구의 장부에 이름을 적고 보니 와이나픽추에 오르는 가파른 고갯길에서 추락해 죽은 사람이 있으니 조심하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거의 수직이나 다름없는 절벽 길을 기어오르는 인고의 시간 끝에 걸터앉은 꼭대기 전망대에서 우리는 처음으로 마추픽추의 실체와 마주했다. 너무 멀어서 그 세세한 모습은 알 수가 없지만, 와이나픽추에서 바라보는 그 모습은 왜 마추픽추로 하여금 '공중도시'라는 별명을 갖게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실제로는 해발 2500미터가 채 안 되는 마추픽추는 쿠스코보다도 낮지만 이 신비로운 도시를 빙 둘러 솟아있는 기암절벽들과 무성한 열대 우림들은 마치 이 도시가 산 한가운데에 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안겨준다. 이곳을 최후의 보루로 삼았던 잉카인들에게는 이 수많은 낭떠러지와 높이 솟은 안데스 산봉우리들이야말로 천혜의 요새와도 같았을 것이다. 그들은 이곳에 숨어 지내면서 우루밤바 강가에 계단식 밭을 만들고 농사를 지었다. 그러나 마추픽추의 진정한 모습은 이제 시작이다.
최후의 잉카
결론적으로 마추픽추는,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풍경보다 가까이서 보는 것이 더 좋았던 유일한 도시다. 안데스 산맥에 자리잡은 이 정체불명의 도시는 정확히 누가 왜 건설했고, 어떤 사람들이 살았으며, 잉카의 도시 중 유일하게 외부의 침략을 받지 않은 곳임에도 어째서 긴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는지 여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알려진 것이라고는 그저 잉카인들이 세웠고 그들이 살았다는 사실뿐.
1911년, 하이람 빙엄에 의해 우연히 발견되기 전까지는 아무도 그 존재조차 몰랐기에 '잃어버린 도시'라고도 불린 마추픽추는 발견 이후, 도시냐 아니냐를 두고 논란이 많았다고 한다. 그 논란에 종지부를 찍은 것은 마추픽추 내에 만들어진 수로 시설. 지금도 어디선가 끊임 없이 물이 흘러 들어오는 그 수로를 이용해 잉카인들은 농사를 지으며 숨어 지냈다.
한편 잉카인들은 돌을 다루는 데에 있어서는 신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들은 수십 톤에 달하는 돌을 안데스 바위산에서 잘라내 이 산 꼭대기로 날라 신전과 집을 지었는데, 시멘트와 같은 경화제도 없던 16세기에 오로지 돌과 흙으로만 쌓아 올린 벽들은 면도날도 드나들 틈 없이 정교하다. 양손으로 힘껏 밀어봐도 꿈쩍도 하지 않는 벽을 구성하는 가장 큰 돌은 높이가 8m에 달한다고 하니 그 경이로움은 눈 앞에 두고도 믿지 못할 지경이다.
그러나 외부의 침략이 전혀 없었던 이 천연 요새도시를 두고 잉카인들은 돌연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훗날 유적지에서 발견된 유골은 모두 여자와 노인들 뿐으로, 그들이 마추픽추를 버린 이유와 어디로 갔는지는 영원한 수수께끼로 남았다.
100년 왕조와 문명을 송두리째 파괴당한 슬픔을 지고 살아가는 것이 힘겨웠던 것일까. 혹은 찬란한 문명의 마지막 모습만은 온전한 채로 남겨두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대로 살 수도, 그렇게 죽을 수도 없었던 그들은 절박함마저 벗어 던져버리고 방향도 없이 떠밀리듯 사라졌을 것이다.
때마침 비가 부슬부슬 내려 슬픈 생각을 씻어 내린다. 어쩐지 왈칵 눈물이 쏟아져 내릴 것만 같은 공중도시의 마지막 모습을 간직하기 위해 오두막 전망대에 올랐다. 드문드문 파랗게 고개를 내밀던 하늘 문이 다시 닫히고 어느새 도시를 집어 삼킬 듯 낮게 깔린 구름이 바짝 자리를 잡았다.
누군가가 마추픽추 뒤로 자리잡은 와이나픽추 봉우리의 능선을 가리켜 누워있는 잉카인의 초상이라고 했다는데 오늘처럼 파란 하늘 대신 낮은 구름이 깔릴 때면 더더욱 그렇다. 우똑 솟은 와이나픽추는 콧대를 나타내고, 오른쪽으로 길게 자리잡은 완만한 봉우리는 너른 이마와도 같다. 한 맺힌 생애를 살아야 했던 그들의 넋을 위로해 줄 것은 적당한 햇살과 가끔씩 찾아오는 알파카, 그리고 산들거리는 바람뿐이다.
간략 여행 정보 |
쿠스코에서 마추픽추까지는 시간대에 따라 기차로 3~4시간 정도 소요되고 기차역에서 버스로 굽이진 산길을 40분 정도 간 다음 걸어서 다시 30분 정도 올라가야 하는 힘겨운 여정이다. 힘든 여정보다 더 여행자를 괴롭히는 것은 만만치 않은 교통비와 입장료. 마추픽추로 가는 가장 저렴한 방법은 쿠스코에서 오얀타이 탐보까지 봉고차 또는 택시를 이용하고, 오얀타이 탐보에서 아구아스 칼리엔테(Aguas Caliente)까지 기차로 가는 것이다. 아구아스 칼리엔테에서 마추픽추까지는 거의 매시 정각 셔틀버스가 출발하며 각각의 요금은 아래와 같으며 성수기에는 기차표 예약을 빨리 해야 한다.
마추픽추 입장료 : 152USD(학생은 50%할인) 와이나픽추 + 마추픽추 입장료 : 182USD(학생은 50%할인) 쿠스코 아구아스 칼리엔테 행 왕복기차 : 80USD 오얀타이탐보 아구아스 칼리엔테 행 왕복기차 : 40USD (모든 요금은 2012년 10월 기준)
한편, 마추픽추를 높은 곳에서 볼 수 있는 와이나픽추 전망대에 오르기 위해서는 별도의 티켓을 사야 하는데 그마저도 하루에 오를 수 있는 시간과 인원수가 하루 세 번, 총 500명으로 제한되어 있으니 미리미리 준비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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