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마광수라는 우리 시대의 유명인이자 많은 문제작을 낳은 작가, 그리고 한 명의 교수이자 선배이자 인간으로서 그가 지금껏 지나쳐온 삶의 궤적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서전 격의 작품이다. 이는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자신의 논의와 이력을 정리해 1925년 자서전격으로 발표한 <나의 이력서>(Die Medizin der Gegenwart in Selbstdarstellung, 1925)와 같은 제목을 달고 있다는 점에서도 드러난다.
이미 피터 드러커도 자신이 존경하는 프로이트의 자서전 제목을 따서 같은 이름의 자서전을 발표한 바 있거니와 저자 역시 책의 본문에서 에리히 프롬의 <환상의 사슬을 넘어서>를 인용하며 창조적 불복종의 예를 보여준 인물로 프로이트를 언급했다는 점을 생각할 때 이 책의 제목은 프로이트의 자서전으로부터 따온 것이 아닌가 한다.
책에 따르면 마광수 교수는 프로이트와 마르크스 등이 그랬던 것처럼 '창조적 불복종', 나아가 '금지된 것들에 대한 도전'을 곧 문학의 본질로 여기고 창작활동을 해온 작가다. 문학이란 결국 자신의 경험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고 마광수 교수 본인이 거침없는 사고와 야(野)함을 지닌 사람이기에 그의 소설 역시 자연스레 그런 모습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인데 그가 살아간 시대는 안타깝게도 그런 모습을 포용하지 못할 만큼 경직되고 편협하며 위선적이었다.
마광수 교수가 겪은 일련의 사건들은 곧 우리 사회의 미성숙과 존중의 부족을 보여주는 하나의 징표와도 같았다. 책에는 마광수 교수가 겪었던 '<즐거운 사라> 필화사건'과 '동료 교수들에 의한 왕따 사건'의 대략적인 정황과 당시 그가 느꼈던 심경 등이 적혀 있는데 이 사건들을 빼놓고는 마광수 교수의 삶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을 만큼 그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친 것으로 판단된다.
마광수 교수는 음란문서 유포죄로 1992년 10월 연세대학교에서 강의 도중 검찰에 연행된 후 구속조치 되었는데 소설 <즐거운 사라>가 한 여성의 자유분방한 성생활을 적나라하게 묘사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후 그는 1995년 6월 대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았고 1998년 3월에 사면되기까지 감옥에서 지내야했다.
한 명의 작가가 예술의 영역에서 한 표현에 대해 우리사회가 이토록 폭력적으로 반응했다는 것이, 그리고 그것이 지금으로부터 불과 20년도 지나지 않은 일이라는 것이 새삼 놀랍고 충격적으로 여겨진다. 이 모든 사건이 군부독재시절도 아니고 문민정부 아래에서의 일이었다는 점을 떠올려보면 그 경직된 사고와 폭력적인 경과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이와 관련해서는 존 스튜어트 밀이 저 유명한 저서 <자유론>에서 의미심장한 원칙을 이야기한 바 있다. 그는 하나의 사회가 최상의 상태까지 발전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다양한 방식으로 인간과 사회의 발전을 추구할 수 있어야 하며 이를 위해 직접적 혹은 암묵적으로 타인에게 주류의 생각과 문화를 강요하는 존재들로부터 개인의 개별성을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 보호의 근거를 인간자유의 절대성에 두어야 한다고 했는데 바로 이것이 그의 '제1원칙'이다.
그는 여기서 나아가 사람과 사람이 함께 생활을 영위해 나가는 사회 속에서 개인의 절대적 자유란 어디까지나 이상에 불과하며 국가가 개입하여 자유에 제한을 가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여기서 국가가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근거는 마찬가지로 사회의 구성원인 다른 개인의 '피해'에서 찾을 수 있고 이것이 그의 '제2원칙'이다.
존 스튜어트 밀이 말한 위 두 가지 원칙은 현대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개념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며 사회제도적 측면에서 개인의 다양성을 보호하고 때로 그 자유를 제한하는 근거로써 작용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이 원칙들이 마광수 교수가 겪었던 일련의 고난이 얼마나 부당한 것이며 사회적으로 무의미한 것이었는지를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는 잣대라고 생각한다.
비단 <즐거운 사라>뿐 아니라 만화가 이현세의 <천국의 신화>나 소설가 장정일의 <내게 거짓말을 해봐>가 일으킨 파문을 통해 볼 때 서울에 봄이 찾아온 1990년대 이후에도 성적인 문제에 관해서는 여전히 완고한 보수주의가 지배하고 있었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의 소설이 어디까지나 한 여자의 욕망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있을 뿐 공동체를 해하거나 타인을 모욕하려는 의도를 갖지 않았기에 존 스튜어트 밀의 제2원칙에 의해 제한되어야 할 대상이라고는 보기 어려웠다. 오히려 그의 소설은 제1원칙에 따라 다양성과 개별성 보장의 측면에서 보호되어야 마땅했으며 그를 통해 사회가 더 나은 상태로 발전할 수 있었다고 보는 편이 보다 합당할 것이었다.
이는 마광수 교수가 전남대학교 학생의 편지에 답하는 '나도 싸우고 있다'는 글에서도 잘 표현되어 있다. 그는 이 글에서 '에로티시즘을 중심으로 한 인간심리를 집중적으로 파고드는 이유는 부르주아 예술가로서 안주하기 위해서가 아니며 고루한 의식과 비민주적 고정관념에 대항하여 싸우고 있는 것이다'라고 적고 있다.
이어 그는 '빵의 평등 못지않게 사랑의 평등 역시 중요한 문제이고 외형상의 민주화만이 아니라 진짜 의식의 민주화를 이룩하지 않고서는 진정한 개혁은 어렵다'라고 했는데 이 대목은 존 스튜어트 밀이 말한 '다양성을 통해 사회의 발전을 이룩할 수 있다'라는 명제는 물론이고 중심을 깨고 끊임없이 주변으로 나아감으로써 다양성이 보장되는 사회를 이룩할 수 있다는 이정영 박사의 주변성 철학(Marginalism)과도 닿아 있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이다.
나는 <즐거운 사라> 사건에 대한 기록을 접했을 때 불현듯 저 유명한 드레퓌스 사건을 떠올릴 수 있었다. 영국작가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를 법정까지 끌고 간 <채털리 부인의 사랑>에 대한 외설논쟁 등이 보다 직접적이고 유사한 사례이겠으나 드레퓌스 사건이 그보다 먼저 떠오른 것은 <즐거운 사라>사건과 마찬가지로 이 사건 역시 당대 사회가 지니고 있던 모순이 사회전면에 드러나고 그로써 전 사회적인 논쟁과 반성이 이루어졌으며 궁극적으로 사회가 진일보하는데 일조한 역사적인 사건이기 때문이다.
유대인에 대한 전사회적인 차별적 인식과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권력을 사용하던 사회지도층의 이기적인 태도 등으로 촉발된 드레퓌스 사건은 조르쥬 피카르 중령과 에밀 졸라를 비롯한 용감하고 진실한 사람들의 노력을 통해 긍정적인 결과를 맞이할 수 있었다. <즐거운 사라>사건 역시 우리 사회의 성에 대한 보수적인 인식과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편협한 태도 등으로부터 비롯되었고 여러 동료 문인은 물론 학자, 언론인 등 여러 분야의 지식인들이 발 벗고 뛰어들었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유사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오늘날 우리는 인터넷과 잡지, 연극, 영화, 온갖 TV프로그램에서까지 야한 이야기는 물론 여러 종류의 페티쉬, SM 같은 소재가 거리낌 없이 다뤄지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물론 여전히 몇몇 제한들이 남아있고 진정한 의미에서의 성의 자유가 이룩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지만 마광수 교수가 맞이했던 고난과 같은 정도의 문제는 우리사회에서 다시금 발생하지 않아야만 한다.
나는 지금 이 사회가 진실로 더 나은 모습이 되기를 갈망한다. 그리고 그 발전의 길이 나 스스로와 타인을 보다 존중하며 살아가는 길과 같은 방향으로 나 있다고 믿는다. 앞으로도 지금까지와 같이 역사는 진보할 것이며 인간성은 고양될 것이다. 그리고 그 빛나는 길 위에서 우리가 지금껏 행해왔고 또 앞으로 행해야 할 수많은 존중의 순간들이 있을 것임을 확신한다.
마광수 교수 역시도 '창조적 불복종'이란 글에서 밝혔듯 '나이 값을 하지 않고 야(野)한 정신을 유지하여 새로운 모색과 실험과 창조를 계속하겠다는 각오'를 유지할 수 있다면 그는 지금까지와 같이 역사의 진보와 인간성의 고양에 작으나마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인간으로 기억될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나의 이력서>(마광수 지음, 책읽는귀족 펴냄, 2013년 3월, 296쪽, 1만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