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다. 망각하지 않으면 고통의 기억과 슬픔으로 무너지지 않을 사람은 없다. 하지만 잊지 않는 자들이 있다. 잊지 않고 그 생생한 고통이나 시련을 현재에 되살려야만 존재할 수 있는 이들이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게 만신들이다. 그들은 자신에게 영기를 불어넣는 이들을 만나기 위해 일년에 한 번쯤은 신당을 차리고 그 고통과 아픔의 기억으로 돌아간다. 그래야 그들은 치열하게 세상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만신이 아니라도 잊지 않으려는 자들이 있다. 바로 작가들이다. 작가들은 어떤 역사나 사건을 결코 잊으면 안 된다고, 그 상처의 기억을 더듬고 더듬어서 문장으로 되살린다. 작가 조정래는 일제부터 근대화시기까지를 잊지 않고 대하소설에 담아냈고, 현기영씨도 제주 4·3사건을 담아냈다.
세월호 사건, 빨리 잊고자 노력하는 것처럼 보여사실 당대 우리는 잊지 못해서가 아니라 너무 빨리 잊어서 문제였다. 서해 페리호나 대구 지하철 참사, 삼풍백화점 사건 등 어이없는 사고로 수백 명을 잃었으면서도 너무 빨리 잊었다. 그 망각은 의도된 것도 있고, 의도되지 않은 것도 있지만 어떻든 '세월호 사건' 역시 안팎의 이유로 가능한 빨리 잊고자 노력하는 것들이 보인다. 아직도 찾지 못한 이들이 십수명을 헤어리는 시점에서 사람들은 이제 잊으려는 노력을 한다.
하지만 이런 망각의 강요는 결국 또 다른 사고를 부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가장 큰 원인은 우리가 앞선 이들을 너무 빨리 잊었기 때문에 망각을 거부하는 원혼들이 주는 저주일 수도 있다. 희생자 숫자도 숫자지만 이 사건은 전 국민에게 절망감을 안겨줬다.
그리고 이 즈음 세월호 사건을 표현하면서 대통령 후보를 지낸 문재인 의원은 세월호를 80년 광주에 빗대어 논란이 되기도 했다. 광주민주화운동과 세월호 사건은 발생 원인이나 주체가 다를 수는 있지만, 이 사건이 주는 함의나 무게는 별반 다르지 않다. 이 시대를 살았던 이들은 이제 평생 이 사건을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로 담고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상처에 짙이겨 있을 때 작가 한강이 이제는 대부분 잊었을 5·18민주화운동을 소재로 <소년이 온다>(창비 간)라는 소설을 내놓았다.
"아직도 광주야"라고 외칠 법한 시기에 작가는 왜 다시 광주의 상처를 이야기할까. 소설을 읽고 나서 드는 내 가장 큰 인상은 여전히 아프다는 것이었다. 마치 세월호처럼 우리 안에는 그 상처가 여전하다는 것이었다.
소설은 5·18 당시 상무관에서 들어오는 시신들을 수습하던 세 명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씌여졌다.
서울 노동현장에서 불순분자로 낙인찍혀 미싱사로 일하는 선주와 그날의 일로 모든 삶을 던져야 했던 은숙, 아랫채에 세들어사는 친구 정대를 찾다가 이곳에 온 중학생 동호가 그들이다.
이들과 사건초반기 희생된 동호의 친구 정대와 동호의 어머니를 화자로 한 이 소설은 에필로그 여부를 넘어 작가가 가장 진중하게 찾아낸 광주 속 실제 인물들이다.
소설에서 등장인물들은 물론이고 작가 역시 나라가 위해한 자신들은 누구인가를 놓고 혼돈스러운 질문을 계속한다. 나라는 자신들을 위해하는데, 그들 스스로는 애국가를 제창하고, 태극기로 희생자의 시신을 감싸는 이 모순의 원인이 무엇인지 내내 혼돈스럽다.
그리고 실제로 이 혼돈은 세월호에서도 재현됐다. 나라님 앞에 무릅을 끓는 피해자의 가족, 구조를 위해 물속에 들어가겠다는 민관을 말리는 공권력 등 무엇이 나라이고, 무엇이 가해자인지 혼돈은 계속된다.
처참한 기억의 복구,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그리고 작가의 이 처참한 기억의 복구는 결코 잊지 말아야할 것이 무엇인가를 말한다. 정권 잡기의 수단이 되어버린 공권력의 잔악함과 그 물인정성은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그들을 단죄하고, 잘못된 고리를 끊지 않다다면 광주나 삼풍이나 세월호는 언제 어느 시기에 찾아올 수 없다는 것을 이 소설은 가장 확실하게 말해준다.
당대를 건너오는 우리내 질곡많은 상처받은 영혼들을 그려오던 작가 한승원의 딸인 작가는 에필로그를 통해 80년 그곳에 결코 멀지 않음을 말한다. 그녀는 당시 실존 인물이었던 동호를 시점으로 해 광주와 관련된 현장 속으로 들어갔다.
구원의 손을 내미는 이들에게 몇 선원과 선생님들이 자신을 보지 않고 들어가듯 작가는 사건 속으로 들어가 잔인한 총칼의 희생자가 되어 광주를 되살린다. 작가를 만난 중학생 희생자 동호의 형은 작가에게 이렇게 말한다.
"제대로 써야 합니다. 아무도 내 동생을 더이상 모독할 수 없도록 써주세요."세월호 희생자들 역시 말한다. 제발 구경꾼의 잣대로 우리와 죽은 식구들의 가슴을 난도질하지 마세요. 그런데 지금은 그들 스스로 기레기(기자=쓰레기의 합성어) 자학할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사례를 보면 한번 기레기는 영원한 기레기였다. 그리고 다시 그날이 오면 선박직 직원들처럼 자신의 사명쯤은 헌신짝처럼 던지고, 같은 짓을 되풀이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소년이 온다 | 한강 (지은이) | 창비 | 2014년 5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