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코야마 히데오의 작품에는 크게 두 가지 특징이 있다. 첫 번째는, 뛰어난 한 명의 수사관이 아니라 경찰 조직이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사건을 추적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조직은 사람들로 이루어진다. 사람들은 저마다 서로 다른 개성과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런 면들이 잘 어울리면 문제가 없을테지만, 요코야마 히데오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꼭 그런것 만은 아니다.
경찰조직 내에서 고속으로 승진한 엘리트들은 다른 사람들의 시기와 질시의 대상이 된다. 경찰국 내부 또는 외부에서 사건이 터지면 그 불똥이 자신에게 튀지 않게 하려고 일찌감치 숨어버리는 사람도 있다.
반면에 자발적으로 나서서 조직의 비리를 폭로하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물론 이런 사람은 '조직의 쓴 맛'을 보게 될 가능성이 많다. 대부분의 조직은 '조직을 위한다'라는 명목으로 내부의 부정이나 부패를 은폐하기 마련이니까.
작가가 묘사하는 경찰과 기자의 세계
요코야마 히데오 작품의 두 번째 특징은 언론사 기자들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요코야마 히데오 자신이 과거에 10년 넘게 기자로 활동했었다는 점이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작가가 실제로 경찰국 출입기자로 활동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작품 속에서 경찰국에 드나드는 기자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기자들 끼리의 관계도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다. 서로 특종을 따내기 위해서 노력하고, 그것을 위해서는 밤늦게 형사의 집을 찾아가기도 한다. 또는 은밀하게 뒷거래를 하기도 한다. 살인같은 대형사건이 터지면 이들은 함께 사건을 추적한다. 형사는 범인을 쫓고 기자는 특종을 쫓는 것이다.
어찌보면 형사와 기자는 뗄레야 뗄 수가 없는 관계다. 형사라는 직업은 언론보도를 통해서 사회적인 가치를 얻는다. 열심히 노력해서 범인을 검거했는데 언론에 보도가 되지 않는다면 그만큼 허탈한 일도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언론도 경찰의 도움을 받는다. 사건이 발생하면 그에 관한 대부분의 정보는 경찰국이 가지고 있다. 이것을 언론에 공개하지 않으면 경찰국 출입기자들은 특종은커녕 기사도 제대로 완성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런 두 가지 특징이 집대성된 작품이 바로 2012년에 발표한 <64>다. 무려 700페이지에 이르는 긴 여정동안 작가는 형사들 사이의 알력과 갈등, 경찰국과 언론 사이의 팽팽한 줄다리기를 보여주고 있다.
미제로 끝난 소녀 유괴살해사건
그렇다고 <64>에서 범죄소설의 기본인 미스터리를 소홀히 하는 것도 아니다. 작품의 제목인 '64'는 일본연도로 쇼와 64년(1989년)을 의미한다. 작품 속 배경으로부터 14년 전인 그 해에, 아마미야 쇼코라는 이름의 일곱 살 여자아이가 유괴살해되었다. 범인은 교묘한 방법으로 피해자 가족에게 요구한 현금 2천만 엔을 챙기고 대신 여자아이의 시신을 남겨두었다.
이 사건에 막대한 경찰력이 동원되었지만 결국 범인은 검거하지 못했다. 당시 사건의 초동수사를 담당했던 형사 미야미는 아직까지 64사건을 잊지 못하고 있다. 어찌보면 그 사건은 경찰국의 수치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해서 미야미의 고등학생 딸이 가출하는 일이 벌어진다. 오랫동안 자신의 못생긴 외모를 원망하다가 결국 가출한 것이다. 64사건의 공소시효 만료까지 1년이 남았다. 미야미는 딸의 행방을 찾으면서 동시에 64사건의 진상도 함께 추적하기 시작한다.
작품을 읽다보면 경찰국 내부의 갈등, 경찰국과 기자들의 극단적인 마찰을 때로는 안타깝게 바라보게 된다. 14년 전의 미스터리에 대한 호기심도 점점 증폭되어 간다. 그렇더라도 이 작품에서 중요한 요소는 역시 인간이다.
형사와 기자는 본질적으로 물과 기름이다. 좀처럼 마음을 터놓고 함께 어울리기 힘들지만, 양쪽을 섞어서 잘 휘저으면 그동안은 둘로 나뉘지 않는다. 서로에 대한 신뢰를 위해서는 그런 순간들을 쌓아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범죄소설도 마찬가지다. 등장하는 인물들의 내면, 조직이라는 유기체를 묘사하는 것과 의문 투성이의 미스터리를 한데 뒤섞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요코야마 히데오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것 처럼, 작품 속에서 이 모든 것들을 보여주고 있다. 요코야마 히데오가 앞으로 <64>를 능가하는 작품을 발표할 수 있을지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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