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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2007년 기타 제조업체 콜트-콜텍의 노동자들은 정리해고를 당했습니다. 그 뒤로 계속된 투쟁과 농성. 지금도 그들은 인천에 있는 옛 콜트악기 부평공장 앞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습니다. 해고자 임재춘씨는 오늘도 그곳을 지키며 굵고 거친 손으로 펜을 꾹꾹 눌러 글을 씁니다. 임재춘씨가 농성장 촛불문화제에서 낭독한 '농성일기'를 연출자 최문선씨의 해설과 함께 독자 여러분들께 전합니다. [편집자말]
 임재춘의 농성일기 2014년 5월 18일
임재춘의 농성일기 2014년 5월 18일 ⓒ 임재춘

 임재춘의 농성일기 2014년 5월 18일
임재춘의 농성일기 2014년 5월 18일 ⓒ 임재춘

금요일 대법원 1인시위를 마치고 버스 타고 (인천) 농성장으로 가는데 차가 무척 밀려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것만으로도 많이 지쳤다. 그러나 점심 먹고 버스 타고 서울역에 도착해 다시 열차를 타고 서울을 지날 때 경치를 보니 평온해졌다.

시골 풍경이 참 아름답고 정겨웠다. 농민들 같이 욕심 없는 사람들은 편하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8년 전이나 지금이나 시골 풍경은 모내기 하는 모습이 똑같다. 해마다 모내기 하는 걸 보고 올 가을에는 집에 가서 가족과 함께 지내자고 마음을 먹고 결심을 한다.

대전역에서 내려 시내버스를 타면 시민들이 이야기를 한다. 그들은 세월호 문제와 지방선거 이야기를 하면서도 그 속에 담긴 이 시대의 또 다른 아픔은 이야기하지 않는다.

(대전의) 집에 도착하면 나 역시 일상적인 생활을 한다. 빨래도 하고 반찬도 만들고 바쁘게 지낸다. 그러다 TV에서 세월호 뉴스를 본다. 유병언 일가를 검거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시위하는 노동자들은 빨리 해산시키고 잡아들이면서 유병언 일가는 왜 이렇게 못 잡는가. 대한민국의 경찰, 검찰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토요일에 딸들과 여행을 가려고 하였으나 지키지 못하여 마음이 아프다. 식사를 하면서 딸들에게 "세상 사는 게 어때?" 하고 물어보았다. 딸들은 (엉뚱하게) 삼성 이건희 회장 이야기를 하면서 돈 이야기를 한다. 이건희 회장을 보니 자기들도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고 생각했단다. 왜 그런 말을 하냐고 물어보니 "아니야"라고 말을 피한다. 다시 물어보니 이런 말을 한다.

"이건희는 돈이 많으니까 의사가 죽을병도 살려내는 거잖아."

그리고 한 마디 더 한다.

"아빠는 언제부터 돈 벌어올 거야?"

삼성 이건희 이야기 때문에 또 다시 정리해고의 아픔과 고충이 떠올랐다. 우리 딸들도 노동자들인데 노동자성을 잃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을 한다. 딸들에게 돈은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닌데…. 정리해고 노동자 아빠를 잘못 만나 고생하다 보니 돈에 더 집착하게 됐나보다.

버스에서 만난 시민들도 세월호는 알지만 세월호의 비정규직은 모른다. 딸들은 삼성 이건희가 돈이 많은 건 알지만, 그 돈이 어디서 나오는지는 모른다. 답답하다.

2014년 5월 18일 콜텍 해고자 임재춘

"사실 세월호 이런 거 고민 못했어... 내가 이 글을 쓰면 안 되나봐"

 콜트콜텍 노동자의 대법원 앞 1인시위
콜트콜텍 노동자의 대법원 앞 1인시위 ⓒ 최문선

임재춘의 농성일기 12회는 여러 차례 쓰고 고치다가 버렸다. 임재춘 조합원은 완성 직전에 내게 원고를 주는 대신, "그 글은 버리겠다, 다른 걸로 쓰겠다"라는 문자를 보냈다. 세월호에 관한 이야기를 쓰고 있던 중이었다.

이 글 전에 그가 쓰고 지워버린 글이 있다. 그 글을 쓸 때 그는 두어 문장을 쓰고 머리를 북북 긁고, 다시 두어 문장을 쓰고 글씨 위를 볼펜으로 지지직 그었다. 특히나 "세월호의 선장이나 그 많은 직원들도 모두 비정규직이니 윗선이 강요하는 수지타산에 얽매어 승객의 안전을 뒷전으로 밀어내게 되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할 때는 자칫 그런 이야기가 세월호 직원들을 두둔하는 걸로 읽히진 않을까 걱정하는 듯했다.

"안산의 많은 사람들은 소기업 하청 노동자들이고 그들의 자녀가 이번 참사의 희생양인데, 또 배를 몰았던 사람들 역시 비정규직이니 결국 약한 사람들만 당하고 책임자들은 잡지도 못한다"라고 써가는 대목에서 볼펜은 오래 멈춰 있었다. 끝을 맺지도, 잇지도 못했다.

우리는 글을 쓰는 걸 멈추고 오랜 시간 이야기를 했다. 임재춘 조합원은 자신의 딸들이 가정형편 때문에 수학여행을 한 번도 가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안산의 학생들도 어렵게 수학여행비를 마련했을 텐데…, 해준 것도 없이 그렇게 죽어 돌아온 자식의 모습을 부모들이 봐야 하다니…"라며 한탄을 했다.

또 다른 이야기들이 오고갔다. 콜텍 공장 시절 그곳의 노동자들은 회사의 비용절감 욕심에 안전복장도 갖추지 못한 채 일한 일, 잘릴까봐 부당한 일에 쉬쉬하던 것도 다 세월호와 같은 일이 아닐까…. 그러다 임재춘 조합원은 침묵 후에 일종의 자백 같은 말을 했다.

"나, 사실 세월호 이런 거 고민 별로 못했어. 뉴스 보면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기냐, 저 아이들 부모는 어쩌나 그런 생각은 했지. 그런데 그게 나의 일이고, 내 일(정리해고)도 세월호와 같은 거라는 생각, 이제야 하는 거 같어. 공장에 있을 땐 그냥 먹고살기만 했지. 그게 그렇게 연관되어 있다는 생각을 정말 못했어. 그러니까, 내가 이 글을 쓰면 안 되는 거였나 봐. 생각을 안 하고 살아왔는걸." 

그의 반성은 내게 큰 울림으로 다가왔고, 그런 말을 글로 옮기면 좋겠다고 했지만 결국 그는 원고를 찢어버렸다. 그리고 이런 글이 완성되었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온갖 비극은 서로 나비효과처럼 얽혀 있는데, 정작 새로운 비극이 발생하면 어제의 비극, 일상의 비극, 임재춘 조합원이 겪었던 비극들은 이슈의 자리에서 밀려나곤 한다. 그리고 세상은 역설적으로 돌아간다.

세월호 시국에 뭔 1인시위냐고 따지는 사람을 만나거나, 해고자들 스스로가 할 말을 자제하는 상황들. 안전을 비용으로 여기는 경제논리나 미래의 경영상 위기가 현재의 수많은 해고자 고통보다 더 중요하다고 여기는 법원의 판결은 결국 같은 이야기인데. 해고자들이 낸 해고 무효 확인 등 소송에서 법원은 사측의 정리해고가 정당하다고 판결했고, 그들은 다시 대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콜트-콜텍 해고자들은 19일(월)부터 대법원 앞에서 무기한 노숙 1인시위를 하고 있다. 법에서 명시한 정리해고의 요건이 사실상 백지화되는 사태가 법의 판결로 나타날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며, 대법원의 신중한 심리를 촉구하는 행동이다. 그 상황에서 임재춘 조합원은 '콜트-콜텍이라는 작은 공장의 이야기 속에 세월호가 있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콜트콜텍#농성일기#정리해고#위장폐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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