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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무렵 한 아이가 고민 가득한 얼굴로 찾아왔다. 올해 고3으로, 작년에 가르쳐 이름은 알고 있지만, 담임을 한 적은 없어 조금은 데면데면한 사이다. 자기 이름은 아는지, 시간 뺏어 죄송하다느니, 날이 벌써 여름 같다느니 시답잖은 말을 건네며 한참을 쭈뼛거리다 대뜸 어려운 부탁이 있어 용기 내어 찾아왔다고 말했다.

"선생님, 제 부모님을 설득해주세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선생님 말씀이라면 귀 기울이실 거예요."

뭘 설득해 달라는 걸까. 신발을 갈아 신다말고 자초지종을 물었다. 내가 아는 한 그는, 그리 활달하지는 않지만, 배려심 많고, 학과 성적도 그리 나쁘지 않은 착실한 아이다. 부모님과 갈등을 벌일만한 꺼리가 전혀 없을 것 같은데, 그의 고민 가득한 표정이 당최 이해가 가질 않았다. 주변의 친구들조차 그에게 '범생이'라는 별명을 지어줄 정도였으니 말이다.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 부모님과 약속한 게 있어요. 명문대 진학. 중학교 졸업할 때만 해도 호기롭게 '그쯤이야' 했지만, 고등학교 들어와 모의고사 몇 번 치러본 뒤에야 비로소 깨닫게 된 거죠. 명문대는커녕 서울로 대학 가는 것조차 결코 만만한 게 아니라는 것을. 부모님도 짐짓 태연한 척하셨지만, 중학교 때와는 사뭇 다른 성적표를 받아보시곤 깜짝 놀란 눈치셨어요.

정말 열심히 공부했어요. 성적을 올리기 위해 주말 과외도 받았고, 부모님과 함께 내로라는 입시 전문가들을 찾아가 입시 컨설팅도 받았지만, 그다지 효과는 없었어요. 시간이 흐를수록 책상 앞에 붙여놓은 'SKY'라는 글자가 '목표'가 아니라 '부담'으로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급기야 성적이 주춤하는 게 '불효'로 여겨져, 점점 부모님 앞에서 주눅이 들더라고요."

그에게 명문대 진학이 '효'의 기준이 된 건, 부모님의 '소원' 때문이었다. 지금껏 그는 부모님이 욕망하는 것을 욕망하도록 훈련받아온 셈이다. 거칠게 말해서, 우리 나이로 열아홉 살인 그가 여태껏 열심히 공부를 한 이유는 오로지 맏아들로서 부모님을 즐겁게 해드리기 위해서다. 그렇게 '착실하게만' 살아온 그에게 때 아닌 '위기'가 닥친 것이다.

스스로 '제2의 사춘기'가 온 것 같다고 했다. 느닷없이 이딴 공부를 해서 뭐하나 싶은 철없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더없이 잘 난' 부모님이 갑자기 미워지더라고 했다. 맏아들인 게 싫어지고, 어쭙잖은 시험 점수보다 차라리 운동이라도 잘해 체육 특기생이었으면 좋겠다는 황당한 이야기까지 쏟아냈다. 요즘 부쩍 진로에 대해 깊이 고민된다면서.

대화를 나누다 말고 잠깐 그의 성적과 추이를 살펴보았다. 대학입시 전형이 워낙 다양해 확언할 수는 없지만, 그의 성적만으로 보면 명문대 진학은 사실상 힘들다. 더욱이 그는 '고3이 되고 나서 처음 치른 지난 3월 모의고사 성적이 수능까지 그대로 간다'는 속설에 크게 낙담하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지금껏 치른 시험 성적 중 최악이었단다.

"정말 열심히 공부했는데 결과가 좋지 않다보니, 최근 부모님의 표정이 늘 어두워요. 지난해까지는 단 한 번도 듣질 못했는데, 요즘엔 이런 '엄포'까지 놓으세요. 어디 이름도 없는 '삼류대'나 지방대에 진학할 생각은 꿈에도 하지 말라고.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지는 그 꼴 못 본다고. 그만큼 저 못지않게 스트레스를 받고 계시다는 거겠죠."

그의 고민은 분명 생각만큼 나오지 않는 성적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지만, 부모님이 안겨준 짙은 그림자가 역력하다. 부모님의 기대에 어떻든 부응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성적에 대한 스트레스를 더욱 가중시키고 있는 것이다. 며칠 전 그는 명문대 진학이라는 허황된 꿈을 접고 지방대에 진학할지언정 고3 시절을 행복하게 보내고 싶다며, 부모님께 '폭탄선언' 해버렸단다.

교사들끼리 흔히 하는 이야기로 이런 말이 있다. 고1 아이들에게는 공부 잘 해 시험 성적 올리는 법을 가르치지만, 고3이 되면 대신 포기하고 만족하는 법을 가르친다는. 아이들도 고3 정도 되면 자신이 갈 수 있는 대학과, 아무리 해도 갈 수 없는 대학의 범주를 구분할 줄 안다. 그러면서, 몇몇 아이들은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 않는다고 넉살좋게 말하곤 한다.

고3 자녀의 대학진학에 기대거는 학부모들

그렇지만 고3 자녀를 둔 학부모들의 기대는 쉬이 꺾이지 않는 것 같다. 자녀의 '성공'에 부모는 자신들의 모든 걸 건 까닭일까. 그의 부모님은 "남들 다 겪는 고3, 너만 힘든 것 아니라며, 대학에 가서 행복하게 지내라"고 말씀하시며, 자녀의 '고백'을 단숨에 무질러버렸다고 한다. 그렇게 고3은 '행복'이라는 말을 입에 올려선 안 되는 나이였다.

행복해지고 싶다는 그가 건넨 '어려운 부탁'이란, 그저 '사실' 그대로를 대신 전해달라는 것뿐이었다. 그가 어느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하고 충실히 학교생활 하고 있다고. 또, 명문대가 아니어도 좋은 대학 많다고, 지방대를 가더라도 열심히 공부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대학 이름보다 학과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그의 부모님께 강조해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도 알 것이다. 우리나라에선 그게 '거짓말'이라는 것을. 뿌리 깊은 학벌의식 속에서 어느 대학을 나왔는가가 당신이 누구인가를 말해주고, 지방대 출신은 취업도 어려울뿐더러 사람들로부터 무시당하기 일쑤라는 것쯤은 중학생만 돼도 다 알고 있다. 아니 우리나라에선 대학이 공부가 아닌, 과시의 목적으로 가는 곳이라는 건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 아닌가.

그의 부탁을 어떻게 들어줘야 하나. 부모님께 전화를 걸어 무슨 말을 건네야 하나. 아니 당장 바로 앞에 앉아 있는 그에게 어떤 답변을 들려주어야 하나. 교사로서 난감하기 이를 데 없었다. 고3으로서 그의 고민은 합당하고, 어렵사리 부탁하려는 마음도 십분 이해가 가지만, 정작 그와 그의 부모님께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어 연신 머리만 긁적였다.

이럴 땐 교사는 늘 부모의 편에 서야 '안전'하다. 자칫 아이의 고민에 맞장구를 쳤다간, 철없는 아이에게 '바람을 넣는다'며 학부모들로부터 만만치 않은 항의를 감수해야할지도 모른다. 현실을 무시하는 이상주의자로 낙인찍혀 두고두고 입길에 오를 수도 있다. 결국,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란 고작 이런 것이다.

"힘들겠지만, 조금만 더 참고 견디자."

기실 그의 부탁은 '부모님을 설득해달라'는 게 아니라, 그저 '그의 고민을 들어 달라'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퇴근이 한 시간 정도 늦어졌지만, 대신 그의 얼굴은 꼭 그만큼 밝아졌음을 느낀다. 행복하게 지내고 싶다는 바람조차 저당 잡힌 고3, 그 아이의 돌아서는 모습을 보노라니, 교사이기 이전에 기성세대로서 참으로 미안하다는 생각이 든다.

바로 그때, 호주머니 속 휴대전화에 문자 도착 신호음이 울렸다. 선거를 앞두고 한 교육감 출마자가 보낸 것이다. '학력 붕괴'라는 선정적인 슬로건을 내걸고, 무너진 교육을 살리겠다는 공약을 첫머리에 담았다. 서울대 합격자 수가 4년 만에 143명에서 103명으로 40명이나 급감했다는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하면서.

서울대 합격자 수가 줄어든 것을 교육이 무너졌다는 증거로 내세운 것이다. 알고 보니, 그는 출마한 지역의 어느 대학 총장 출신이었다. 지역 인재의 서울로의 유출을 막기 위해 대학교육의 질을 높여야 할 책임이 있는 현직 총장이, 지역 대학의 붕괴가 현실화되는 상황에서 서울대 합격자 수가 줄었다고 '학력 붕괴' 운운하는 모습이 참으로 볼썽사납다.

혀를 끌끌 차고 있으려니, 또 다른 교육감 후보의 문자 메시지가 뜬다. '떨어진 학력을 확 끌어 올리겠다'는 글귀와 후보자 이름 석 자가 전부다. '실적'과 '학력'만 운운할 뿐, 대학입시의 질곡에서 아이들을 벗어나게 해주고 싶다는 공약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들의 인식 속에서 고3은 절대 행복을 꿈꿔서는 안 될 존재다.

차마 그 아이에게 보여주진 못했다. 교육감이 되겠다고 설레발치는 후보자들이 이런 '철학'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얼마나 큰 상처를 받을까 싶어서다. 어른들의 잘못으로 세월호 참사를 겪었고, 수백 명의 아이들이 어처구니없이 희생됐는데도, 결코 달라지지 않는 건 어른들의 아이들에 대한 '교육관'이다. 교사라는 게 참으로 괴로운 요즘이다.


#대학입시#교육감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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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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