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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구 반갑심더. 여기서 또 보네예."

27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회관에서 열린 북콘서트 <밀양을 살다> 참석차 올라온 단장면 동화전마을의 박은숙씨가 어깨를 툭 치며 인사를 건넸다. 지난주 농활(한평 프로젝트)을 다녀온 여운이 아직 남아있어서인지 더 반가웠다. 여전히 동 트는 새벽에 할매들과 함께 밭일을 하고 있다며 또 올거냐는 물음에 "그렇다"고 답했다.

76만5000볼트의 송전탑이 확정된 2000년 이후, 주민들이 송전탑의 실체를 알기까지는 5년의 시간이 더 흐른 뒤였다. 송전탑 설치작업이 시작될 즈음에서야 형식만을 갖춘 주민설명회를 통해서 그 실체를 알게 된 것이다. 조상대대로 살아온 마을과 억척스럽게 고생하며 마련한 논밭을 빙 둘러쳐서 포위하듯이 쇠말뚝 같은 송전탑이 들어선다고 했을 때만 해도,주민들은 국가에서 하는 일이라면 양보할 수도 있는 동의를 구하는 협상을 기다렸지만 '합의냐 반대냐'의 선택만 강요하는 것에 주민들은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정동 프란치스코회관에서 열린 밀양을 살다 북 콘서트
 정동 프란치스코회관에서 열린 밀양을 살다 북 콘서트
ⓒ 오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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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를 맡은 유해정(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씨는 밀양소식을 들을때 마다 마음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며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은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고 지켜만 보던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책을 만들기 위해 할매들의 이야기를 기록하러 밀양으로 내려가는 길이 가볍기도 하고 설레이기도 했다며 구술사를 시작하게 된 당시의 심정을 말했다.

"여든여덟살의 조계순 할머니를 한 번 만나고 두 번 세 번, 만남이 잦아지면서 자신이 살아온 삶을 이야기 하고 들으면서 서로 눈물을 흘렸다. 김사례 할머니는 돈이 없어서 보일러를 안 켜고 산다. 냉골같은 방에서 밥이랑 된장국이랑 시어버린 김치를 내놓으며 '미안하다, 미안하다' 했다. 이제 밀양은 어느새 나에게는 투쟁의 공간이 아니라 밀양을 생각하면 사람이 떠오르고 할매도 어렴품이 떠오르고 마음이 더욱더 무거워지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외면한다고 사라질 수 있는 현실도 아니고 지금 이시간에도 싸움이 계속되고 있기에 밀양의 이야기에 마음의 귀를 더 귀울이고 무엇인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봐야 할 것 같다."

가족들이 서울로 모두 올라와 남편과 15일간 단식을 했던 김은숙씨는 동화전마을에 철탑이 세워졌지만 철탑을 뽑아내는 날까지 포기할 수 없다며 한평프로젝트 운동을 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큰 사건은 새벽에 경찰 10여명이 들이닥쳐서 신랑에게 수갑을 채우고 잡아갔던 때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는데 할매들이 밀양경찰서 앞에서 김정회 석방하라며 밤이슬 맞아가며 삼일동안 노숙농성을 했었다. 그 덕분이기도 하고 죄도 없으니까 남편은 풀려났다. 그 후로 남편이 단식하러 서울 간다고 해서 농사도 포기하고 가족이 다 올라갔다. 혼자 보내면 무슨일이 생길지 몰라 불안하고 안되겠더라. 애들한테는 송전탑싸움에 대해 조곤조곤 설명은 안했지만 애들은 다 알고 있다."

 북콘서트에 참여한 주민들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북콘서트에 참여한 주민들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 오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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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송전탑 반대대책위 공동대표인 김준한 신부는 밀양시에서 6월2일까지 농성장을 자진철거하라는 행정대집행 계고장을 최후통첩으로 이날 보내왔다면서 6.4 지방선거가 끝난후에 4개의 농성장에서의 싸움이 있을것 같다고 했다.

"어른들은 설문조사와 검사를 통해 우울증과 스트레스등의 정신과 진료를 받고 있다. 증상은 다른것이 아닌 홧병이다. 치료를 할 수 있는것들을 준비하고 있지만, 혼자 있을때는 심리적인 압박 때문에 예민해지는것에 걱정이다. 지금까지도 상상하지 못했던 연대를 해준것에 감사하다. 실질적으로 필요한것은 내려와서 같이 있어주는것이다. 갔더니 아무일도 없어서 잠자고 쉬었다가 왔다는 말을 들었다. 그것은 그곳에 당신이 있었기 때문에 평화가 온 것이다. 지켜보는 눈이 많아서 경찰이 한전이 함부로 하지 못하는것이다. 실질적으로 필요한것은 용기를 내서 밀양을 찾아주는것이다."

 밀양을 살다
 밀양을 살다
ⓒ 오월의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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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매들은 열심히 살아왔는데 송전탑으로 인해 겪어야 하는 고통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주고 책을 만들어준 것에 대해 너무 감사하고 기쁘다고 한다. 글을 모르는 할매들은 농성장에서 연대자들이 첫 페이지부터 읽어주는 이야기에 서로 부등켜 안고 많이 울었다고 한다.

밀양 송전탑 반대 투쟁기금마련을 위한 책과 셔츠를 구입하고 집으로 오는 전철안에서 첫 장부터 천천히 읽었다. 상동면 도곡마을 김말해 할매(87세)가 들려주는 가족사는 국가의 폭력에 힘 없는 민초들이 어떻게 짓밟혔는지 생생하게 구술하고 있다.

해방후, 남편은 보도연맹(관련없음에도)으로 끌려간 후 돌아오지 못한다. 큰 아들은 월남전에 파병되었다가 부상을 입고 의가사 제대를 한 후 부상당한 몸 때문에 안정된 일을 갖지 못한채 생활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 할매는 평생을 바쳐서 일궈논 삶터를 지키고자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 지금 밀양에 필요한 실질적인 도움은 할매들과 함께 하룻밤이라도 곁에서 있어주는 것이다.


#밀양송전탑#밀양을 살다#송전탑#북콘서트#밀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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