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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람을 맞으며 진행된 신구범 지사의 게릴라 유세.  투표 이틀을 앞둔 6월 2일 신구범 제주도지사 후보가 제주대학교 구내 식당 백두관에서 학생들과 담소하며 식사 중.
비바람을 맞으며 진행된 신구범 지사의 게릴라 유세. 투표 이틀을 앞둔 6월 2일 신구범 제주도지사 후보가 제주대학교 구내 식당 백두관에서 학생들과 담소하며 식사 중. ⓒ 조정

제주도 사람들에게 바람은 오래된 이웃이다. 돌과 돌 사이로 난 빈틈이 바람에게 길을 내주고, 부드러운 오름의 능선이 바람의 가슴을 쓸어주며 함께 산다. 바람의 안부를 늘 묻고 지내기 때문에 바람 때문에 낭패를 당하는 일이 줄어든다.    

선거를 이틀 앞둔 6월 2일, 제주도에서는 소소한 웃음을 머금은 소문 하나가 종일 섬 전체를 휘돌았다. 전날 서울에 간 새누리당 원희룡 제주도지사 후보가 강풍주의보 때문에 제주도에 돌아오지 못 했다는 소식이었다. 제주의 지인은 이런 말을 했다.

"진짜 제주의 아들들은 기본적으로 육지에 나가게 되면, 들어올 때 기상정보 꼼꼼히 알아보고, 집안 대소사에 물의를 일으키지 않도록 배우며 자랍니다. 유세 약속 몇 개꽈. 갑자기 나가면 됩니까? 제주 사람을 가볍게 본 증거입주."

선거유세에 준하였다는 문제의 출마 기자회견에서 "어머니, 제주의 아들…" 운운한 원 후보의 발언을 빗대어 하는 말이었다.

원 후보가 참석한 행사는 새누리당의 '국가개조 결의대회'였다. 원 후보가 이 행사를 도민들과 약속을 무시할 만큼 중한 행사로 판단했다고 제주도민들은 받아들인다. 그 책임을 묻는 바람의 세기가 강했다. 말 그대로 '현지 정서'였다.

오랫동안 서울 시민이던 원 후보가 이 정서적 괴리를 극복할 수 있을지 짐짓 걱정이 되었다. 사실 제주도민이 아닌 기자는 '도민 우롱'이라는 생각보다 '물에 빠진 아이들 수백 명을 방치한 정권이 누구를 개조하겠다고 시위야?'라는 생각이 앞섰다.

'원희룡 후보, 강풍주의보로 김포공항에서 발 동동'이라는 기사를 낸 지역 언론들은 이날 하루 종일 새정치민주연합 신구범 제주도지사 후보의 게릴라 유세를 보도했다. 신 후보는 제주시내 동문시장과 제주대학교를 찾아가 유권자들을 만났다. 그 사이 비바람은 점점 거세어져 오후 2시 무렵 바람의 속도는 초속 10미터였다.

기자는 그 시간에 신제주의 원 후보 선거사무실 가까운 길을 지나고 있었다. 건물에 붙은 현수막들이 거세게 흔들리고, 비닐봉지들은 공중을 날고, 나뭇가지들과 함께 새 둥지가 길에 팽개쳐 떨어지고 새 새끼들이 사람들 발에 밟혀 죽어 있었다. 제주 바람의 실체를 처음으로 맛보았는데, 꽤 무서웠다. 

강풍주의보가 잦아들고, 6·4지방선거 투표일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민주진보 성향의 언론조차 '원희룡이면 된다'는 새누리당의 주문에 걸려든 듯 신경을 쓰지 않는 제주도. 제주도 도지사 선거가 마지막 불꽃을 피워 올리는 하루다.

바람이 불면 올 수 없는 섬에서 일어나고 있는 불꽃 속에 두 후보가 있다. 한 사람은 "특별자치도 완전 실현"이라는 강력한 자존 정책을 제시하고, 한 사람은 "중앙과 긴밀히 협력하여" 더 큰 제주도를 만들겠다는 능력을 과시한다. 도민들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두 후보 모두에게 의구심을 갖는 눈치다.

"특별자치도 법은 정해진 지가 언제꽈? 여태 안 된 일이 도지사 손으로 실현될 수 있수꽈? 힘 있는 사람들 맘대로쥬."
"4·3위원회 폐지 법안도 그렇고 뭐든지 당론이면 찬성하는 사람인데, 당론과 제주도 이익이 부딪칠 때 제주도 편 들 수 없을 거우다. 결국 중앙으로 갈 사람 아니꽈?"

언론에 발표된 여론조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원 후보가 압도적이다. 그러나 유선전화로만 이루어진 여론조사는 신뢰할 수 없다는 말의 이면이 흥미롭다.

결국 여론조사는 신뢰하기 어렵고 뚜껑 열어보아야 드러난다는 제주도 표심. 열사흘 불던 바람이 누구의 손을 들어줄지 궁금하다. 내 제주 지인은 "헤심드랑허게 놀당 4년을 후회한다"면서 남은 하루 동안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를 위해 전화기에 불이 나게 뛰겠다고 말한다.


#제주도지사 선거#신구범#원희룡#강풍주의보#국가개조결의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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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한국작가회의. 2000 한국일보로 등단. 시집 <이발소그림처럼> 공동저서 <그대, 강정>.장편동화 <너랑 나랑 평화랑>. 2011 거창평화인권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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