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여 전쯤 김부겸 새정치민주연합 전 국회의원의 하루를 동행취재했다. 2012년 4·11 총선을 앞둔 때였다.
김 전 의원은 당시 4선이 무난할 것이라던 지역구 경기도 군포를 떠나 대구로 갔다. 그의 선택을 두고 지지자들은 '정치적 자살'이라고 걱정했다. 보수적인 대구 유권자들은 '떨어지면 떠날 거면서 쇼 한다'는 냉소를 보냈다.
당시만 해도 그는 거리에서 만나는 대구 시민들에게 "명함 한 장 드려도 되겠습니까"라고 먼저 물었다. 그만큼 조심스럽게 대구 민심에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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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의 강남'이라는 수성갑에서 바닥부터 시작해 40.4%라는 지지율을 얻었지만 이한구 새누리당 의원에게 졌다. 하지만 대구를 떠나지 않았다. 대구 시민들을 직접 만나 직접 삼겹살을 굽고 소주잔을 나눴다.
그리고 2년 후 이번에는 대구시장에, 역시 기호 2번을 달고 도전장을 냈다. 이번에는 40.3%를 얻었다. 선거에 참여한 대구 시민 10명 중 4명의 지지를 받았지만 결과는 역시 2등이었다.
"인생은 삼세판".... 다시 출발선에 선 김부겸두 번 실패했지만 김 전 의원은 "인생은 삼세판"이라며 다시 출발선에 섰다. 2016년 총선에서도 그는 대구에 도전장을 내겠다고 했다. 낙선 인사를 하고 있는 그는 요즘 하루 100통 넘게 전화 통화를 한다. 선거가 끝난 후에도 여전히 바쁜 그가 지난 16일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이 주최한 '김부겸과 함께 하는 지방선거 속풀이 토크'에 참석해 10만인클럽 회원들을 만났다.
김 전 의원은 이번 선거 결과에 대해 못내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과분한 격려를 받았다며 몸을 낮췄다.
"그동안 대구에서 새누리당은 '공천이 곧 당선'이었다. 그러다 보니 얼마나 교만했는가 하면, 지난 총선에서 대구 12개 선거구 중 6곳에 대한 공천을 선거 20일 전에서야 했다. 그것도 다른 곳에서 공천 탈락한 사람을 보내는 일도 있었다. 그런데 공천이 늦을수록 득표율이 높다. 후보에 대해 모르면 더 표가 많이 나오고 많이 알수록 표가 떨어지는 선거였다. 이런 상황에 대한 답답함이 폭발했으면 선거혁명이 일어날 수 있었는데 폭발을 가로막는 눈물이 있었다. 그럼에도 과분한 격려를 받았다."그러면서 김 전 의원은 "(대구시민들에게) 죄송해서 전화를 하고 있는데 시민들은 '이 친구 혹시 좌절하지 않을까'하고 오히려 격려해 준다. 그래서 저는 다음에도 뽑아주지 않으면 쫓겨난다, 아니면 자살하든지 큰 일 날 것이라고 큰 소리 좀 치고 있다"며 웃었다.
또 다시 2등... 졌지만 희망을 봤다
김 전 의원은 이번 6·4 지방선거에서 자신의 지역구인 대구 수성갑에서는 50.1%를 얻었다. 2년 전 총선 득표율보다 9.7%p가 더 나왔다. 수성갑 득표율로만 따진다면 권영진 대구시장 당선인(46.7%)을 눌렀다. 세 번째 도전이 될 2016년 총선에서는 당선을 기대해볼 만해졌다. 하지만 김 전 의원은 지방선거와 총선은 구도 자체가 다르다며 조심스러워 했다.
"지방자치단체장에게 기대하는 건 살림살이다. 이 사람이 다른 생각 안하고 지역민들 살림살이를 좀 챙겨 줄 수 있을 건가다. 그래서 이번 선거를 정권과의 싸움으로 몰고 가지 않고 낮은 자세를 유지했다. 하지만 총선의 구도는 다르다. 박근혜 정부 지난 4년을 심판하자, 심판하지 말자를 놓고 크게 싸워야 하기 때문에 장담할 수 없다. 지난 번 총선에서도 여론조사에서 막판에 제가 치고 올라가니 여당이 모든 전력을 수성갑에 쏟아 부었다. 다른 지역보다 투표율이 5~7%p가 높았는데 그게 다 여당 표였다."그래도 희망을 걸어 볼 수 있는 건 일당 독점 구도가 바뀌기를 바라는 대구의 민심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또 변화를 바라는 젊은 층의 투표 참여에 기대를 걸고 있다.
"지역의 정치적 독점이 위험하다는 점, 정치적 다양성이 없으면 반대 목소리를 내줄 사람이 없다는 점, 대구에 야당 의원 두세 명 만드는 게 지역발전에 필요하다는 점을 설득해 나아가야 한다. 또 야당도 된다는 확신을 줘야 한다. 안 된다고 하면 야당 지지자들은 투표장에 가지 않는다. 이번 선거에서도 여론조사에서 젊은 층은 60% 지지하는 것으로 나오는데 막상 투표장에 가보니 안 보이더라. 다음 선거에서는 이번 분위기를 살려보겠다." "무소속은 편법"... 2016년에도 '기호 2번'김 전 의원은 2016년 총선에서도 '기호 2번'을 달고 출마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당선을 위해 대구에서 인기 없는 야당 당적을 버리는 건 '편법'이라고 했다. 그는 지난 2012년 총선에서도 "지역주의 극복을 위해서는 아무리 어려워도 무소속이 아니라 기호 2번으로 당선돼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차라리 무소속으로 나와 정당 부담이 없었으면 어땠을까라고 이야기하는 분들이 있다. 부산의 오거돈, 대구의 김부겸 이렇게 무소속 바람이 불었으면 이번에 한 번 뒤집었을 것 아니냐고 하신다. 그런데 정치하는 저마저 편법을 쓰면 대구 시민들이 표를 주든 안 주든 결국 야당 하는 꼴이 늘 저렇지, 약삭빠르다는 인식에 도장 하나 더 찍는 꼴밖에 안 된다고 생각한다. 지더라도 야당도 우직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게 제가 해야 할 역할이다."김 전 의원은 새정치민주연합에도 쓴소리를 던졌다. 보수 유권자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작은 것부터 약속을 지키는 정치를 보여 줘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대구 사람들은 자기가 뱉어 놓은 말은 꼭 지켜야 하는 그런 분위기가 있다. 그래서 우리 당이 정치 행태에 있어서 진중해져야 한다. 쉽게 약속하지 말고 약속했으면 반드시 지켜야한다. 작은 예지만 종합편성채널 출연 문제도 안한다고 했다가 지금은 하고. 그래서 대구에서는 야당이 '말은 반지르르 하지만 절대로 자기 손해 볼 일은 안하는 집단'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필요하다면 자기를 던져야 하는데 우리가 세월호 이준석 선장과 같은 존재로 비춰진 것이다. 이런 것을 털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 김부겸의 '하로동선' 정치... "대권 도전? 신뢰 받는 게 우선"
이날 속풀이 토크에 참여한 10만인클럽 회원들 사이에서는 "대통령의 꿈을 가지고 있느냐"는 질문이 나왔다. 김 전 의원은 신중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대권 도전 가능성에 완전히 선을 긋지도 않았다.
"다음에도 떨어지면 쪽박 찰 텐데.(웃음) 지금은 대구 시민의 신뢰를 받는 게 우선이다. 자기 동네에서도 인정 받지 못하는 놈이 '나 챔피언 먹을 거야'라고 하면 '돌아이'라고 하지 않겠나. 지역주의 깨자고 대구로 갔는데 두 번 실패했다. 다음에도 떨어지면 관둬야 하는데 다음에 된다면, 그리고 저만 그런 게 아니라 이정현(전 청와대 홍보) 수석도 다시 호남에서 돌파를 한다고 하니 대구에서 (새정치연합) 몇 사람, 호남에서 (새누리당) 몇 사람 당선돼서 지역주의라는 암 덩어리를 걷어내면 그 다음에 다른 임무가 주어지지 않겠나 싶다."김 전 의원은 '하로동선(夏爐冬扇)'의 정치를 강조했다. 여름 난로, 겨울 부채처럼 당장은 쓸모가 없을 지라도 난로와 부채가 필요한 때를 기다리며 준비하는 정치를 하겠다는 것이다.
"20년 전에 김원기 전 국회의장, 노무현 전 대통령, 제정구 전 의원, 새정치연합의 유인태·원혜영 의원 등과 함께 국민통합추진위원회(통추)를 만들었다. 그때 내건 구호가 남진·나훈아가 영호남이 낸 가수인데 전 국민의 사랑을 받지 않느냐, 그런데 정치 지도자는 출신 지역 때문에 인정받지 못하는 이런 정치를 해서야 되겠느냐였다. 그 당시에는 '돌아이' 취급을 받았지만 결국 거기서 대통령도 나오고 국회의장도 나왔다. 제가 통추의 막내다. 난로와 겨울 부채를 잘 닦고 준비해야 한다. 기다리면 국민이 받아들이는 때가 올 때가 온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