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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백설공주'에서 주인공인 공주는 여러 차례 생사의 고비를 넘는다. 독이 든 사과를 먹고 깊은 잠에 빠져드는 것도 그 가운데 하나다.

동화는 사과에 어떤 경로로 독이 들어갔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독극물 용액에 사과를 담갔다든지, 혹은 사과에 독소를 주입했다든지 하는 묘사가 없다.

백설공주는 옛날 유럽지역에서 널리 알려진 구전을 바탕으로 쓰여진 동화다. 세계인들에게 가장 익숙한 그림형제 버전 외에도 조금씩 줄거리가 다른 비슷한 얘기들이 전해져 내려온다.

이들 구전 혹은 동화 속에 '독 사과' 아이디어가 어떻게 녹아 들었는지 자세히 알 길은 없다. 하지만 추정은 가능하다. 사과는 가장 친숙한 과일인 동시에, 숨겨진 독성이 있는 먹을거리인 탓이다.

사과 씨에는 시안화물(청산가리) 계통의 독소가 들어있다. 가능한 사과 씨를 씹어먹어서 좋을 게 없는 이유다. 물론 사과 한두 알에 들어있는 씨를 먹는 정도로는 특별한 독성을 느낄 수 없다.

사과 씨 속의 시안화물이 생명을 위협하려면 최소 반 컵 분량은 섭취해야 한다. 그것도 씨를 꼭꼭 씹어서 먹을 때다.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얘기다.

사과 씨에 독소가 들어있다는 사실은 현대 과학에 의해 입증됐다. 하지만 옛날 사람들도 경험적으로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주요 식물의 씨앗 중에는 독소를 품은 것들이 많다. 요즘 한참 효소 담그기에 이용되는 매실이 대표적인 예다. 매실은 살구와 함께 시안화물의 함량이 높은 열매로 유명하다.

시안화물은 씨앗에 주로 농축돼 있는데, 매실은 과육에도 시안화물이 있을 수 있다. 특히 잘 익지 않은 풋매실이 그렇다.

매실을 담근 뒤 석 달쯤 지나 매실 알갱이들을 건져내라고 권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매실 속의 시안화물은 소금이나 설탕, 알코올 등에 노출된 상태에서 석 달 이상이 지나면 상당 부분 분해된다.

다시 말해, 담은 지 2~3개월 이내의 매실 효소 액 섭취만 피하면 된다. 살구나 매실은 모두 장미과에 속하는 식물들이다. 장미과 식물은 특히 핵과에 시안화물이 들어 있는 예가 많은 편이다.

식물의 씨앗에 시안화물 계통 등의 독소물질이 존재하는 건, 일종의 자기방어 시스템으로 이해할 수 있다. 과일 등의 열매는 종종 초식동물의 먹이 감이다. 예를 들면, 원숭이 같은 동물은 사과를 먹기도 하는데, 씨앗은 변을 통해 새로운 발아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씨앗은 보통 그냥 먹어서는 해가 없다. 좀 많은 양이라도 그렇다. 시안화물 계통의 독소가 특히 문제를 일으키는 건, 씹어 먹을 때이다.

시안화물은 씨앗 속에서 당류와 결합해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 이른바 '청산배당체'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위 속에 들어가 소화효소 등에 의해 분해되고, 수소와 만나면 기체 형태의 시안화물이 된다.

동물들에게 유해한 시안화물은 바로 이런 기체 형태의 시안화물이다. 기체 형태의 시안화물은 아주 쉽게 말하면, 연탄가스의 핵심물질인 일산화탄소와 비슷한 원리로 인체에서 부작용을 일으킨다. 적혈구가 산소를 나르는 기능을 저해하는 것이다.

씨앗 속의 시안화물 중독으로 인한 증상이 연탄가스에 노출됐을 때와 흡사한 이유이다. 어지럽고 구토가 나며, 심하면 호흡곤란이 올 수 있다.

수입 견과류로 최근 국내에서도 널리 팔리는 캐슈(cashew)나 아몬드 등도 시안화물 계통의 독성물질이 많은 대표적인 식물들이다. 캐슈나 아몬드는 원칙적으로 볶은 것들만 유통되게 돼 있다.

일부 국가에서는 아예 특정 아몬드의 품종의 유통을 금지할 정도로 판매를 엄격히 제한한다. 또 최근 슈퍼마켓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체리의 씨앗도 씹지 않는 게 좋다. 두말할 것 없이 시안화물 독성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녹음이 우거진 요즘 산속 깊은 곳으로 등산을 하다 보면, 이런 저런 나무에 갖은 열매가 맺어진 것을 볼 수 있다. 잘 모르는 열매라면 아예 입에 대지 않는 게 최상책이다.

열매나 씨앗 외에 일부 식물은 잎사귀에도 시안화물 계통의 물질을 품고 있다. 토끼풀로 흔히 알려진 클로버 같은 게 대표적이다.

토끼풀은 그 종류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데, 이 가운데 상당수가 잎사귀에 시안화물 계통의 물질을 품고 있다. 설치류 같은 동물들이 잎을 씹는 순간, 화학작용을 통해 유해한 기체 시안화물이 뿜어져 나온다.

물론 토끼는 시안화물에 일종의 면역 기능이 있어 큰 문제가 안 된다. 하지만 사람들은 잘 모르는 나뭇잎 혹은 풀잎을 잘근잘근 씹다간 호된 곤욕을 치를 수도 있다.  

덧붙이는 글 | 위클리공감(www.korea.kr/gonggam)에도 실렸습니다. 위클리공감은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행하는 정책주간지입니다.



#청산가리#씨앗#견과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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