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게 꼬일 때 하는 말 있지? '돈 떨어지면 쌀 떨어지고, 쌀 떨어지면 마누라 도망간다'는... 근데 어쩌지? 우리도 돈 떨어지고 쌀 떨어지기도 하는데, 당신은 도망도 못 가네? 크크."그렇게 나는 아내를 놀리면서 웃었다. 억지로라도 좀 아내를 웃기고 싶었기 때문에, 그런데 안 웃는다. 역시 사람을 웃게 하는 거 참 힘든 일 맞다. 개그맨들이 대단하다는 생각도 든다. 한편으론 그러니 하늘의 신도 땅의 모든 사람들을 웃게 하지는 못 하나 보다 하는 엉뚱한 생각이 다 들었다. 아내는 요 며칠 계속 몸이 안 좋더니 기어코 하루 종일 등짝에 침대를 업고 보냈다. 정말 말 그대로 10분도 침대에서 안 내려오고... 침대가 어디 도망가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속상해 못 견디겠어! 보지도 못 하면서 왜 이렇게 아픈 거야... "아내는 펑펑 통곡을 했다. 다인실 병동이라 사람들이 많아 마음 놓고 울지도 못하는데도 커튼을 치고 입을 틀어막으며 울었다. 실명한 오른쪽 눈이 계속 아프다고 했다. 그래서 며칠 전 충북대학병원 안과를 예약해서 다녀오고도 맘이 편치 않다. 자꾸만 수축되어 함몰되어가는 안구 때문에 생기는 후유증 같다. 눈썹이 계속 찔러 들어가기도 하고 조금만 피곤해도 눈꺼풀이 벌어지지 않아 짓무른다. 아내는 혹시나 안구를 들어내는 '적출' 수술이라도 하게 될까 봐 많이 불안해 한다. 아내도 여자인데... 나도 마음이 아프다.
"특별한 방법이 없네요. 안구를 들어내면 또 다른 불편과 문제가 생겨서... 각막 전문 선생님께 다시 진료를 받아봐요. 예약해 주지요."그렇게 대책이 없다는 망막 전문 선생님의 말, 그래서 또 다른 예약을 하고 약만 타고 돌아왔다. '사실 고장나고 아픈 데가 어디 딱 한 군데도 아닌데 뭐 어쩌랴. 어제 오늘 일도 아니고...' 나는 참 무정하게도 한편으론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란 어쩌면 예상보다 더 잔인한 동물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스스로를 참아내려고 달래는 핑계일 수도 있고,
아내를 웃게 하는 딸아이... 새삼 가족들이 고마웠다"엄마, 아프다며? 내가 힘내라고 좋은 소식 알려줄게!""뭔데?..."오후에 딸아이가 아내에게 전화로 기쁜 소식을 알려 왔다. 학교내 우리말 경시대회에서 또 최고점수 받은 걸 선생님이 알려주셨단다. 아직 시상식은 안 했지만, 아내는 역시 팔불출이다. 입이 커지면서 얼굴이 환해지고 연달아 "잘했다! 잘했다!"고 한다.
곁에서 듣는 나도 기분이 좋다. 상 받은 것도 기분 좋지만 딱 타이밍을 맞추어 침잠한 엄마를 건져내는 힘이 되었다는 게 또 좋았다. 수학경시, 과학경시에 이어 우리말 경시까지 전체 1등을 받았으니 또 죄 없는 닭 한 마리를 제물로 사용해야만 할 것 같다. 매운 양념치킨을 참 좋아하는 딸.
"돈 떨어지고 쌀 떨어져도 당신은 도망 못 가네? 누가 업어다 데려주지 않으면! 히히, 나는 마음 놓는다. 거지가 되어도 마누라는 도망 안 갈테니~"딸 덕분에 기분이 좀 나아진 아내에게 농담 반 우려 반으로 말했다.
"김재식씨 맞나요?""예, 그런데요.""여기 사인해 주세요!"병실로 택배가 하나 왔다. 얼마 전, 6월 29일 방송된 KBS1 <강연100도씨>(
98회 동영상 보기)에 출연했던 영상을 DVD로 보내왔다. 삶의 기념품이 하나 늘었다. 힘든 시간을 잘 견딘 훈장쯤으로 느껴진다. 그 방송이 나오던 시간 나는 아무도 없는 휴게실로 피했다. 내가 한 강연이지만 어쩐지 쑥스럽고 다시 본다는 게 민망했다. 아내가 내게 "무지 긴장하고 떨더라?"라고 놀린 말이 떠올라서 더 그랬다.
조용한 시간, 나 혼자 다시 보았다. 그때는 녹화하고 긴장하느라 잘 몰랐는데 지금 보니 비로소 내용이 집중이 된다. '아, 정말 나만 힘들고 괴로움을 버티며 보낸 줄 알았더니 아내는 말할 것도 없고 온 가족이 합심해서 죽을힘으로 견뎌왔구나!' 새삼 가족들이 고마웠다. 누구 한 명만 삐긋해서 못 살겠다! 하고 일이라도 저질렀다면? 도저히 지금 이만큼이라도 안정된 투병, 간병은 불가능할 것이다.
이번 강연을 계기로 돌아보니 가족이란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을 넘기면서 꽃 피우고 열매 맺는 나무 같다. 누구는 뿌리 역할을 하고, 또 누구는 기둥, 가지 역할을 하고, 그 끝에서 또 누구는 꽃으로 열매로 여물어가는 나무처럼.
[봄] 우리 가족에게 천국과 지옥이 동시에 다가온 계절2008년 5월, 그해 봄은 유난히 찬란했고, 동시에 지독히 우울한 추락이 동시에 일어났다. 막내딸은 그해 열린 제 19회 전국양궁대회 초등부(여자)에서 4개의 금메달 중 3개를 따고 개인전·단체전 우승을 했다. 나머지 하나도 동메달을 따서 학교와 가족들을 놀라게 했다.
그렇게 찬란했던 그 봄, 5월 9일 아이 생일날 아침에 아내는 새로운 먹구름을 끌고 와서 아프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넉 달, 거의 산 송장이 되도록 심각해져 버린 아내는 이후 몇 번이나 더 재발해서 서울 큰 병원의 응급실을 들락거렸다. 최종 진단은 희귀난치병 '다발성경화증'이었다. 충주의 한 한방대학 과장이 제발 다발성경화증만 아니기를 빈다던 그 병이었다.
우리는 그 봄이 오기까지는 아주 평범하고 조용한 가족이었다. 별나게 안 죽고 살아야겠다는 각오같은 것도 필요 없었고, 그저 습관적으로 나날을 보내던 상태였다. 하지만 아내의 발병 이후 우리는 다시는 그렇게 호락호락 봄을 맞이하고 되는 대로 편히 보낼 수 없게 되었다.
그 이후 봄마다 산에 노랗게 물드는 산수유가 참 미웠다. 우리는 여전히 콘크리트 병원에 갇혀 나가지도 못하고 사는데 계속 사람들을 산으로 와보라고 손짓하는 산수유가, 그 봄이...
[여름] 이산가족이 되고 혹독한 폭염을 견디던 계절아내의 병세는 지독히 심한 편이었다. 발병한 지 수년 된 분들도 직장도 다니고 불편한 대로 살림도 살아내는 모습은 우리에겐 꿈같은 상태였다. 3번, 5번, 그렇게 재발이 오면서 소변도 막히고 배변 신경도 마비되었다.
처음으로 하늘을 원망했다. 아내조차 원망스러웠다. 아내 때문에 24시간 붙어있느라 직장도 접어야 했다. 그러니 수입도 없는 우리는 병원비를 감당 못해 집을 팔아치우고, 그리고도 블랙홀처럼 빨려 들어가는 빌린 돈은 갚을 길 없어 신용불량자가 되었다.
악몽도 세상에 그런 악몽이 있을까? 아이들은 뿔뿔이 흩어져 생존을 연명하다시피 지내야 했다. "어떻게 지내니?"라고 묻기가 무섭고 미안해서 아예 말을 꺼낼 수 없었다. 그렇게 우리 가족들은 뜨거운 살인적 계절을 용케도 이기며 지나갔다. 목마를수록 뿌리를 더 깊이 내리고 수분을 줄기와 가지로 공급하는 나무들처럼, 우리 가족들도 그렇게 시련 속에서 뿌리를 깊이 내리며 생존능력을 키우며 자라고 있었다. 때로는 지독한 환경이 지독한 훈련이 되어 강해지기도 하나보다.
[가을] 열매는 밤과 낮, 비바람을 이겨서 여문다스무 곳이 넘는 병원을 유목민처럼 떠돌면서 재활치료와 항암주사로 관리하는 동안 완전 식물인간에 가까웠던 아내는 팔 다리에 조금씩 움직임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하루하루가 절망적인 불변의 상태로만 보였지만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면서 거짓말같이 할 수 있는 것들이 늘어났다.
가을이 오기 시작한 것이다. 나무들이 열매를 맺기 시작하고 여물게 하는 계절처럼 우리 가족이라는 나무에도 열매가 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길고 혹독한 여름을 견딘 대가로... 열매가 여물기 위해서는 낮의 태양만이 아니라 밤의 이슬도 필요하다. 시원한 바람과 푸른 햇빛만이 아니라 차가운 비와 세찬 바람도 이겨내야 한다.
우리 가족도 다를 리 없었다. 마지막 시기를 잘 넘기지 못 하면 풋열매로 버려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도 길어지는 독립생활이 가져오는 위태로움들이 문득 나타나곤 했다.
[겨울] 다시 봄을 볼 수 있을까? 살얼음판을 딛고 걸어가는 계절
언제인가 TV를 보는데 이런 말이 나왔다. 암을 진단 받았을 때 공통적으로 하는 말을 조사했더니 두 가지가 가장 많았단다. 하나는 "왜 하필 나에게..."이고, 또 하나는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하는 말.
돌아보니 나도 여지없이 그 두 가지를 자주 중얼거렸다. 왜 안 그럴까? 누가 함부로 훗날 꿈을 말하고 희망, 극복을 쉽게 권할 수 있을까? 그래도 고마운 것은 이 긴 겨울밤 같은 투병 간병의 삶에 많은 사람들이 함께 힘을 보태주었다는 것이다. 같은 병을 가진 동료들과 환우회의 간사님들, 여러 단체들의 후원 등. 그 모든 분들의 노고와 배려가 마치 미리 온 봄날의 희망 같았다.
나는 그렇게 6년간의 계절을 간병일기로 썼고, 그것을 <그러니 그대 쓰러지지 말아> 라는 책으로 묶어 아내와 아이들에게 주었다. 우리 가족에게 닥쳤던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을 어떻게 견디고 살아냈는지를 잊지 말자고. 그 속에 고마웠던 분들과 기뻤던 날들도 함께 인정하자고.
늦게 오는 장마라더니 정말 7월에 비가 온다. 며칠 뒤에는 새로 추가되는 각막 전문 교수님께 치료를 받으러 충북대학병원 안과로 또 가야 한다. 이달 말에는 일산까지 가서 또 피검사를 받고 '패스'를 할 수 있을지 초조히 기다려야 한다. 그 사이에 도움 받고만 살 수 없다며 아프리카 탄자니아와 우간다로 무료급식센터 설립을 위한 봉사를 하러 떠나는 막내딸을 챙겨줘야 한다. 할 일이 많다. 비가 많이 오면 더 불편해지겠지만...
<비가 와도... 살아야겠다!>바람에 잔뜩 물이 배였다 / 서점과 우체국을 들러 병원으로 돌아와야 하는데 / 환자인 아내는 치료와 치료 사이의 30분의 짧은 시간만 허락한다. 종종 걸음으로 뛰었더니 땀이 흐른다 / 사거리 신호등은 왜 그리 늑장인지 천불이 난다 / 희한하게도 꼭 늦을 때만 그런다.'장마가 오늘부터 올라온다던데...'비는 안 내리고 습기만 철썩 얼굴을 때린다 / 아니, 들러붙어 후후! 더운 입김이라도 불어댄다 / 이게 뭐야? 명색이 바람이라며...잔뜩 찌푸린 서쪽하늘 동쪽 하늘 중천 하늘 / 안 흐린 데가 하나도 없네? / 동서남북 바닥 천정까지 나를 가두려는 내 처지처럼,"어? 어저께 티브이에 나온 아저씨다! 호호~"엘리베이터를 타고 열 식히느라 부채질인데 / 먼저 타신 두 아주머니가 말을 걸어온다."아줌마 좋아져요?" "예, 조금씩 천천히요"뭐가 그리 신날까? 연신 웃으시며 활발하시다 / 대한민국 예비할머니 연배의 아주머니들 / 비가 오던지 말던지, 병이 사람을 죽이던지 살리던지 / 정말 씩씩하게 사신다. 경탄할 정도로!'하긴 우리 엄마도 그러셨지, 질긴 생활력으로...' - 그래! 비가 와도 살아야겠다!시인 폴발레리는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했는데 / 나는 비까지 1+1으로 덤으로 살거다! 덧붙이는 글 | 2014년 6월의 간병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