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풍경, 일상과 사람들 속에서 반짝이는 감동의 순간들을 포착해 나름의 사유와 함께 풀어간 기분 좋은 책이다. 저자 송정림씨는 보고 느끼고 읽고 경험한 일상 속 순간들을 자기만의 언어로 변주하여 의미 깊게 되새기고 있는데 다분히 인상적인 부분이 많다.
그 중에서 제법 많은 부분이 공감되었고 그보다 더 많은 부분들에서 감동을 받았는데 개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소설가 폴 오스터의 조언대로 뉴욕에서의 삶을 꾸려간 소피 칼의 이야기였다.
폴 오스터는 미국 출신의 세계적인 소설가이고 소피 칼은 파리태생의 사진작가이자 개념미술가인데, 어느날 뉴욕에서 활동하던 소피 칼이 폴 오스터에게 물었다.
"뉴욕에서의 삶을 아름답게 하는 방법은 무엇인가요?"그 질문에 폴 오스터는 몇 가지 지침을 내렸다고 한다.
'미소 짓기, 낯선 이들에게 말 걸기, 걸인과 노숙자들에게 샌드위치나 담배 건네기, 뉴욕에서 한 장소를 골라 애착을 가지고 관리하기.'
소피 칼은 이 조언을 충실하게 따르며 그 과정을 자기 나름의 방식대로 기록해나갔고 그렇게 만들어진 책이 바로 <뉴욕 이야기>다.
하지만 모르는 사람에게 먼저 미소 짓고 말을 거는 일은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아무에게나 말을 걸고 샌드위치를 건네며 공중전화 박스를 한껏 꾸미는 등 폴 오스터의 네 가지 지침을 따르는 동안 소피 칼이 어떤 어려움을 겪었을지 떠올리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결국 전화국 직원에 의해 전화부스가 손상을 입자, 소피 칼은 자신의 임무에 종지부를 찍었다. 이 네 가지 원칙들을 지키며 버텨낸 일주일의 시간을 그는 이렇게 정리했다.
'125번 미소를 보내고, 72번 미소를 받음. 샌드위치 22개가 받아들여지고 10번은 거절됨. 담배 8갑을 제공했고, 거절은 0번. 154분 간의 대화.'
소피 칼이 뉴욕의 시민들에게 건넨 125번의 미소 중 돌아오지 않은 53번의 미소, 건네진 32개의 샌드위치 중 거절된 10개. 돌아오지 않은 미소와 거절된 샌드위치에서 나는 나의 모습을 본다. 삭막한 도시에서 나고 자라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나는 나도 모르게 타인과 나 사이에 보이지 않는 장막을 두텁게 쳐놓은 건 아니었던가.
낯선 이에게 미소를 보낸 적도 없고 먼저 한 두 마디 말을 건넨 적은 더더욱 없는 나의 재미없는 삶은 내가 나고 자란 도시보다도 얼마나 더 냉랭하고 삭막했던 것인가. 하물며 주변의 가까운 이들에게도 먼저 나서서 따뜻한 미소 한 번, 진심어린 말 한 마디 건네지 않았던 나의 무신경함이 소피 칼의 용감하고 뜨거웠던 1주일을 읽는 동안 너무나도 낯뜨겁게 느껴져 차마 얼굴을 들 수 없었다.
<감동의 습관> 저자인 송정림씨는 며칠 전 아파트에서 마주친 어느 할머니와의 만남과 소피 칼의 이야기를 대치시키며 존재를 의미있게 만드는 순간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날이 좀 풀렸어. 그렇지? 한 결 나다니기 좋구먼." "나는 손자보러 왔는데 여기 사슈?" "황사가 왜 이리 심해? 어디 다니지 마슈." 할머니가 저자에게 건넨 말들엔 사실 그리 특별할 게 없다.
하지만 그 말들이 낯선 타인들을 이웃으로 만들고 회색빛깔 삭막한 가슴을 열게 하는 것이다. 말을 걸고, 대답을 하고, 마주보며 웃고, 그것이 세상에서 가장 실없는 대화일지라도 그 주고받음은 타인과 타인 사이를 조금쯤 의미있는 무엇으로 만들어주는 것이 아닐까?
하물며 나와 가족, 친구, 동료들은 그저 지나가다 하루 이틀 마주친 사이인 것도 아니고 길게는 십수 년을, 짧게는 몇 개월을 동고동락하며 생활하는 가까운 사이인데 그동안 내가 먼저 이런 말 한마디 건네지 않았다는 것이 스스로도 믿기지 않았다. 나는 대체 얼마나 많은 순간들을 낭비했고 또 얼마나 많은 가능성을 닫아버렸던 것인가.
지금부터라도 삭막한 내 가슴을 열고 용기내어 실천하고 시작해야겠다. 비록 실패를 거듭할지라도.
덧붙이는 글 | <감동의 습관>(송정림 지음, 책읽는수요일 펴냄, 2011년 4월, 11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