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맘때쯤 고등학교는 찾아오는 '손님'들로 북적인다. 지난해 수능을 치른 졸업생의 모교 방문이 줄을 잇기 때문이다. 스승의 날에는 전화나 문자로, 기말고사가 끝난 6월 말이나 7월 초엔 모교 방문이 졸업생에게는 하나의 공식이 됐다. 혼자 오긴 머쓱했는지, 대개 한 반이었거나 같은 동아리 친구끼리 미리 연락해 삼삼오오 학교를 찾는다.
제자이겠거니 인사 받다가 '제 이름 아세요?' 질문하면 당황인사할 때 이름을 말하지 않으면 노랗게 물들인 머리카락과 잔뜩 멋을 부린 옷차림 탓에 순간 몰라보기 일쑤다. 그나마 갓 졸업한 아이들은 나은 편이다. 서너 해만 지나도 이름은커녕 얼굴조차 긴가민가하다. 여하튼 제자이겠거니 싶어 무작정 반갑다며 호들갑 떨다가 "제 이름은 아세요?"라는 질문을 받고 당황스러울 때도 더러 있다.
하긴 졸업하고 두어 해만 지나도 학교를 찾는 발길은 확연히 뜸해진다. 군 입대를 앞두고 인사차 오는 경우를 제외하면, 스승의 날 전화나 문자조차 드물다. 또, 친한 친구들끼리 함께 오기보다는 혼자 찾아오거나 많아야 두세 명이다. 특이하다 싶은 건, 갓 입학했을 때와는 달리 진학한 대학별로 따로 모여 온다는 점이다. 졸업한 지 한두 해가 지나, 고등학교 '동창'보다 대학 '동문'이 더 친근해진 까닭일까.
준환(가명)이도 혼자 왔다. 몇 해 전 대학 새내기 때는 양쪽 귀에 주렁주렁 귀걸이를 한 채로, 고3 때 같은 반 친구들 예닐곱이 떼로 온 걸로 기억한다. 유난히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그가 혼자 학교를 찾았다는 것 자체가 무척 낯설었다. 마음이 심란해 휴학했다는 그의 얼굴에는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이유를 채 묻기도 전에, 군 입대 문제로 휴학한 건 아니라고 했다.
"고등학교 시절 이미 들어 대충 알고는 있었지만, 우리나라 대학이 '간판'을 빼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요즘 들어 뼈저리게 느끼고 있어요. 다시 수능을 볼까, 아니면 편입 시험을 치를까,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가도, '이게 당최 뭐하자는 짓인가' 싶어 괴롭네요. 이건 호사가들이 말하는 '젊은 날의 방황'이라기보다는, 그런 고민 자체가 '시간 낭비'처럼 느껴져요."그는 한 명문대 지방 캠퍼스에 재학 중이다. 나름 지방 국공립 대학의 비인기 학과 정도는 들어갈 성적이었는데도, '인(in)-서울'은 아닐지언정 수도권 언저리의 대학이 더 낫다는 주위의 이야기에 솔깃했다고 한다. 더욱이 교수들의 강의 수준이든, 커리큘럼이든, 명문대의 이름값은 하지 않겠느냐는 '순진한' 생각에, 스스로 대학을 선택하는 데에 주저함이 없었단다.
그런데 입학한 지 채 1년도 지나지 않아 자신의 선택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깨달았다고 했다. 대학 서열은 우리가 흔히 아는 바대로, 명문대와 비명문대, '인(in)-서울'과 지방대, 국공립대와 사립대 등으로만 나뉘는 게 아니었다. 그런 서열 구분을 한 데 모아놓은 게 바로 '명문대 지방 캠퍼스'라고 단언했다. 서울 캠퍼스와 지방 캠퍼스 학생들 사이의 보이지 않는 갈등은 '차별'이라는 한마디 말로는 다 담아낼 수 없다고 했다.
지방 출신으로 그저 서울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가보려는 치기 어린 생각은 되레 그에게 견디기 어려운 좌절감만 안겨주었다. 같은 학교의 이름을 달고 공부하는 서울 캠퍼스 '동문'들의 조롱하고 비하하는 시선이 너무 괴롭다는 거다. '졸업장에 지방 캠퍼스라는 걸 명시하지 않는 건 부당하다'고 말하는 그들이 너무하다 싶다가도, 자신이 한없이 초라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단다.
심지어 또래들로부터 이런 '충고'도 들어야 했단다.
"짧게는 고등학교 3년, 길게는 초·중·고 12년 동안 대학입시만 바라보고 최선을 다해 공부한 노력에 대한 '정신적인 보상'을 요구한 것에 불과하다. 민주주의도 합리적 차별을 근거로 한 제도다." 학벌 구조를 당연시하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주장에도 반론 한 번 제대로 못했단다. 어쨌든 지방 캠퍼스에 다닌다는 자격지심 때문이다.
'정신적인 보상' 운운하는 그들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초등학교, 중학교 때부터 '영재반'에 들어가고, 특목고와 자사고 등 성적순으로 서열화한 고등학교에서 일찌감치 차별에 철저히 '길들여진' 그들이다. 학원도 '시험 치르고' 들어가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지경인데 더 말해서 무엇 할까. '선민'들로 자라난 그들에겐 대학 간 차별을 성토하는 건, '종교논쟁' 만큼이나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일지도 모른다.
대체 왜 지방 캠퍼스를 만들었는지 모르겠다그런 '혜택'을 바라고 진학한 건 아닌데, 또래들로부터 '학적 세탁'을 통해 명문대 간판을 취득하려는 '찌질이'로 낙인 찍히는 걸 더는 못 참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체 대학이 왜 지방 캠퍼스를 만들었는지 모르겠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대학이 학벌 사회에 편승해 명문대의 이름을 앞에 내걸고 '학생 장사'하려는 의도 아니겠냐며 자문자답했다.
기대했던 명문대의 '이름값'은 눈곱만큼도 없고, 지방 캠퍼스라는 '낙인'만 주홍글씨처럼 남았다. 대학 생활 한두 해 만에 그는 일찌감치 철이 들었다. 대개 좌절감은 체념으로 굳어지기 마련이지만, 그는 지금과는 다른 삶을 꿈꾸고 있다. 그의 '일탈'은 '공부하는 대학'은 이미 온데간데없고 '돈 버는 기업'만 남았다는 확신에서 비롯된 것이다.
아빠의 몇 달치 월급보다 비싼 대학 등록금 고지서를 직접 손에 들고 보니 정신이 번쩍 들더란다. 여태껏 남들 다 그러려니 싶어 그 비싼 등록금이 정작 어디에 쓰이는지 별무관심이었다. 그러나 고작 조롱받는 지방 캠퍼스의 '간판 값'이라 생각하니, 변변치 않은 자녀의 대학 뒷바라지를 하는 부모님께 면목도 없고, 등록금이 너무나 아깝더란다.
그는 지금 심각하게 자퇴를 고민 중이다. 주위엔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친구도 많고, 뉴스에 나오지 않아서 그렇지 대학을 중퇴한 경우가 적지 않다며 스스로를 위로하는 눈치다. 천문학적 등록금과 황금 같은 4년이라는 시간을 감안할 때, 그는 서열화한 대학끼리의 차별보다 차라리 대졸과 고졸의 차별이 더 견디기 쉬울 것 같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쭈뼛거리며 지방 캠퍼스 나왔다고 대답하는 것보다, 허울뿐인 대학을 다니자니 돈과 시간이 아까워 중퇴했다고 말하는 게 남들 앞에서 훨씬 당당할 것 같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공무원시험을 준비하고 있단다. 어차피 남들 대학을 졸업하고서도 시작한다는 공무원시험에 일찌감치 '올인'하는 것이 더 낫다는 판단에서고, 필요하다면 그때 대학을 가겠다고 했다.
지금 고3 중에도 수능이 아닌,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이 더러 있다. 대학은 어디까지나 선택사항일 뿐, 나중에 가도 된다는, 그야말로 '애어른'들이다. 줄곧 그의 고민을 듣고만 있다가 이 이야기를 슬쩍 꺼냈더니, 몇 해 전에 누구라도 자신에게 그런 길을 귀띔해줬다면 지금의 이런 방황은 없었을 거라며 씁쓸하게 웃었다.
다음에 또 찾아뵙겠다는 인사말을 건네고는, 그땐 공무원이 돼 있을지도 모른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처음 봤을 때 드리워진 그늘은 사라지고 한층 얼굴이 환해졌고 걸음걸이도 가볍게 느껴졌다. 직접 말해주진 못했지만, 그를 가르친 교사로서, 그의 고민과 철듦에 기쁘고, 그의 선택은 옳다고 믿는다. 미래 삶의 모습이 어떠하든.
고2때 자퇴했던 '범생이' 현중이 소식 알려주고 싶은 이유사실 내심 그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이야기가 있었다. 듣고는 왠지 그가 슬퍼할 것 같아 그만 뒀다. 모르긴 해도, 그와 고등학교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현중(가명)이의 근황이 그도 궁금하긴 했을 거다. 멀쩡하게 학교 잘 다니던 '범생이' 현중이는 2학년 때 자퇴하고 학교를 떠났는데, 이후 몇 년 간 도통 소식을 알 수 없었다.
얼마 전 알고 지낸 시민단체 활동가의 결혼식에 갔다가 현중이를 만났다. 축가를 부르기 위해 초대됐다고 하는데, 그도 신랑과 학교를 떠난 후로 줄곧 도움을 주고받은 사이라고 했다. 학교 다닐 때보다 얼굴빛이 좋았다. 묻기도 전에, 마치 유치원생 재잘거리듯 그의 '학교 밖 생활'을 자세히 들려주었다.
우선 중학교 때부터 관심 많았던 음악 공부와 악기 연주를 계속 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했다. 대안학교에서 교양 과정 공부도 하고, 재능 기부도 할 겸 지역 시민단체에 기웃거리며 시간을 쪼개 바쁘게 살고 있단다. 또, 취미도 같고 뜻이 맞는 사람들과 조만간 음반도 낼 계획이라며 뽐내듯 말했다.
그의 또래들은 군복무 중이거나, 취업을 위해 이런저런 자격증을 따기 위해 여념이 없을 나이다. 환한 얼굴빛으로만 보면 그는 또래들에 비해 족히 5~6년은 더 어려 보인다. 이따금 학교를 찾아오는 대학생 또래들의 모습이 떠올라, 어린 아이처럼 마냥 즐거워하는 그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없는지를.
"미래에 대한 고민이 저라고 왜 없겠어요? 다만, 제가 지금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에 대한 기회비용이라 생각하며, 그마저도 즐기려 노력하고 있는 중이에요. 그런데, 가끔 대학에 다니고 있는 아이들을 만나 이야기 나눠보면, 제 고민과 별반 다르지 않더라고요. 그렇게 보면 제가 더 잘 살고 있는 셈 아닐까요?그나저나, 고졸자로서의 자격지심을 위로하기 위한 거라면 사절입니다. 예전에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그러셨잖아요. '지금 행복하지 않으면 미래에도 결코 행복할 수 없다'고. '행복은 주어지는 게 아니라 스스로 발견하고 키워가는 것'이라고요. 선생님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있으니, 위로보다는 격려를 해 주세요. 하하하."이내 부끄러워졌다. 사실 질문 자체가 천박한 것이었다. 교사랍시고 아이들 앞에선 '공자 왈 맹자 왈' 하며 고상한 척 했지만, 시류에 적절히 타협하며 젖어 살아온 것이 탄로가 난 순간이었다. 과연 이 이야기를 동창생인 준환이에게 해줬더라면 어땠을까. 지금과는 다른 꿈을 꾸는데 도움이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