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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꽃 아침햇살에 오이꽃이 환하게 웃으며 피어났다.
오이꽃아침햇살에 오이꽃이 환하게 웃으며 피어났다. ⓒ 김민수

여름에 우리가 즐겨 먹는 과일이나 채소의 꽃 중에서는 노란색 꽃이 제법 많다. 오이, 참외, 수박, 여주, 수세미, 호박 모두 노란꽃이다. 호박을 제외하면 모두 꽃모양도 크기도 비슷비슷하다.

꽃은 갓 피어날 때 만나는 것이 가장 예쁘고, 아침 나절에 만나는 것이 가장 신선하다. 옥상 텃밭에 꽃들이 피어있으니 꿀벌이 몰려들고, 참새도 뭔가 먹을 것이 있는지 분주하게 오간다.

도심에서 흔하게 만날 수 있는 풍광이 아니지만, 옥상 텃밭에 이것저것 가꾸다보니 덤으로 얻어진 행복인 셈이다.

고추 고추가 주렁주렁, 두어 그루만 있어도 풋고추를 먹기엔 충분하게 열렸다.
고추고추가 주렁주렁, 두어 그루만 있어도 풋고추를 먹기엔 충분하게 열렸다. ⓒ 김민수

밭에서 자랐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고맙게도 화분에서도 실하게 자라주었다. 아침 저녁으로 물을 주고 며칠 전 유박을 주었더니만, 마른 장마 가뭄에도 무성하게 자라서 일곱 식구의 식탁에 풋고추를 풍성하게 제공한다.

조금 매운 것은 밀가루를 묻혀 살짝 쪄내어 간장을 찍어먹고, 덜 매운 것은 막된장에 찍어 풋고추로 먹고, 아주 매운 것은 물에 담갔다가 쪄서 말려둔다. 부각처럼 해 먹으면 일품이다.

태양초? 크기도 전에 붉게 익은 고추, 빨래집게에 물려 정성껏 말리고 있으니 엄연한 태양초가 아니겠는가?
태양초?크기도 전에 붉게 익은 고추, 빨래집게에 물려 정성껏 말리고 있으니 엄연한 태양초가 아니겠는가? ⓒ 김민수

부지런히 따먹다 보니 겨우 손가락 정도밖에 크지 않은 것들이 붉은 고추가 되었다. 익어도 너무 빨리 익었다. 아직 고추 말릴 때가 아닌데… 그래도 어쩌겠는가? 몇 개 되지 않으니 빨래집게에 집어 빨랫줄에 걸었다.

"어이구야, 벌써부터 붉은 고추니 올해 태양초 맛도 보겠구나."
"설마…"
"농담이야. 우리가 고춧가루를 얼마나 많이 먹는데. 농사진 분들 시름 덜어주려면 우리가 태양초라도 사줘야지."

호박순 아직은 호박순을 먹을 때는 안 되었지만, 연하디 연한 호박순을 보면 나도 모르게 군침이 돈다.
호박순아직은 호박순을 먹을 때는 안 되었지만, 연하디 연한 호박순을 보면 나도 모르게 군침이 돈다. ⓒ 김민수

호박덩굴이 옥상 담을 타고 줄기차게 뻗어간다. 너무 많이 뻗어서 고민인데, 새로 뻗는 줄기에서 꽃이 피고 호박이 열리니 어찌할 도리가 없다. 새순을 좀 따서 쪄먹을까 싶다가도 혹시라도 호박이 더 열리지 않을까 싶어 참는다.

반찬이 귀하던 시절, 연한 호박순과 가지를 따서 밥할 적에 쌀 위에 함께 끓인다. 그리고 부추 몇 개 잘라 양념장 만들어 고춧가루 살살 뿌린 후에 찍어 먹으면 '최고의 반찬'이었다.

연한 호박순에 어린 호박이 달렸으면 맛이 더 좋았으니, 호박순을 맛나게 먹을 때는 서리가 오기 직전이었던 것 같다. 서리를 맞으면 가지나 호박은 전부 시들어버리기 때문에 서리가 오기 전에 한 해의 농사를 마무리했던 것이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호박꽃 구경을 해보자

호박꽃 아침나절에나 활짝 핀 모습을 볼 수 있다. 누가 이렇게 예쁜 호박꽃을 못 생겼다고 했는가?
호박꽃아침나절에나 활짝 핀 모습을 볼 수 있다. 누가 이렇게 예쁜 호박꽃을 못 생겼다고 했는가? ⓒ 김민수

호박꽃과 꿀벌 꽃이 있으니 벌이 찾아왔다. 작년까지만 해도 귀하던 꿀벌이 올해는 제법 많이 보인다.
호박꽃과 꿀벌꽃이 있으니 벌이 찾아왔다. 작년까지만 해도 귀하던 꿀벌이 올해는 제법 많이 보인다. ⓒ 김민수

호박꽃 호박꽃을 향해 날아오는 꿀벌, 꿀벌의 날갯짓이 힘차다.
호박꽃호박꽃을 향해 날아오는 꿀벌, 꿀벌의 날갯짓이 힘차다. ⓒ 김민수

호박꽃과 꿀벌 호박꽃에 아예 흠뻑 빠져버린 꿀벌
호박꽃과 꿀벌호박꽃에 아예 흠뻑 빠져버린 꿀벌 ⓒ 김민수

이 예쁜 호박꽃을 누가 못생겼다고 했는가? 호박꽃처럼 당당하고 풍성하게 찾아오는 손님을 대접하는 꽃이 얼마나 되며, 열매 또한 실하여 따고 또 따도 애호박을 끊임없이 내주는 꽃이 얼마나 되는가?

늙은 호박은 또 얼마나 탐스러운가? 범벅의 맛은 또 어떻고? 온통 '물음표'다. 그 이유는, 이렇게 우리에게 풍성한 먹을거리를 제공하는 호박, 이 예쁜 꽃이 왜 못생김의 상징이란 말인가?

올해는 꿀벌이 많다. 몇 해 전부터 작년까지는 꿀벌이 보이질 않아 걱정을 많이 했었다. 그런데 이 도심 어딘가에 살아있다가 이렇게 찾아와 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아마도 이 재미 때문에라도 '올해까지만' 옥상텃밭을 가꾸겠다는 약속을 지키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호박같이 둥글둥글 이 세상 살아갈 수 있다면 좋겠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 호박에 말뚝 박는 놀부의 심보를 가진 이들이 많은 세상이다. 그래서 호박같이 둥글둥글 살아가려는 사람들이 삶이 퍽퍽하다. 그래도 그런 사람이 있어 세상은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오이꽃#꿀벌#호박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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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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