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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년간 사회적 경제를 실천하겠다고 정신없이 살았다. 사람을 만나고, 강의도 하고, 프로젝트도 하고, 연구도 하는 등의 여러 역할을 맡아서 수행했다. 지역사회 내에 사회적 경제를 확산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커피가 '나오시는' 세상을 물려줄 수 없다

이제와 돌아보니 쉬운 일은 아니었다. 지금은 오래된 농담처럼 여기지만 "사회적 경제는 사회주의 경제를 말하는 것 아니냐"는 말도 들었다. 그렇지만 사회적 경제라는 개념을 포기하지 않았다. 이제야 결실을 조금씩 맺는 것 같다. 이젠 진보에서부터 보수까지 사회적 경제를 하나의 정책 수단으로 인정하는 것을 보니 격세지감이다.

왜 우리는 그렇게 미친 듯이 이 일을 하려고 했을까? 무엇이 우리의 맘을 뛰게 했을까? 기존의 자본주의 질서만으로는 더 이상 안 되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양극화는 너무 심해지고 청년들은 본인들의 꿈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 사람보다는 자본이 우선되는 이상한 세상에 더 이상 살지 못하겠다는 몸부림이 아니었을까?

오죽하면 최근에 종업원들이 서빙을 하며 "손님, 커피 나오셨습니다"라고 하겠는가. 일하는 사람보다 돈을 주는 고객이 더 중요하다는 논리를 넘어 이제는 일하는 사람보다도 커피가 더 높다. 커피가 '나오시는' 세상, 이제는 좀 바꿔야 하지 않을까.

나에게는 "이런 세상을 자녀에게 물려주면 안 되겠다"는 절박함이 있다. 그래서 이제는 지역을 살리고, 사람이 주인 되고, 경쟁보다는 협동이 먼저인 세상을 꿈꾼다. 그런 바람들을 모아 사회적 경제를 만들어보려 한다.

하지만 좋고 선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사람들이 바로 나를 인정하고 운동에 참여하지는 않는다. 그건 순진한 생각이다. 사람 마음이 내 마음 같지 않다는 이야기가 괜히 나왔겠는가. 왜 내 마음 같지 않게 여전히 사회적 경제는 지역내총생산(GRDP)의 1%도 안 되는 채 머물러 있을까. 이런 점에 대해 생각할 때가 됐다. 이제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무엇을 고민해야 되지 않을까?

사람들은 어떻게 마음을 움직일까? 어떠한 상황에서 마음을 열어 함께 행동할까? 기본적으로 그 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주었을 때 마음이 움직인다. 그것이 꼭 물질적인 보상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조건과 명분을 주면 된다.

다시 말해 그 사람 각자가 필요로 하는 것이 사회적 경제이어야 한다. 강의나 교육을 듣고 생각을 바꾸어 사회적 경제를 실천할 수도 있다. 그런 경우도 많다. 하지만 우리가 이 사회의 근본적인 시스템을 바꾸길 원한다면 보다 구체적인 전략이 필요하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한 구체적 전략

첫째, 다시 마을공동체를 꿈꾸어야 한다. 마을을 기반으로 하지 않는 사회적 경제는 공염불일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사회적 경제의 지역화를 이루지 않으면 안 된다. 마을을 바탕으로 운동을 하려면 그 속에 마을 주민들이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마을 주민들이 사회적 경제를 이해하고 실천해야 한다. 이론이 아니다. 삶 속에 자리 잡아야 한다.

물론 쉬운 일이 아니다. 마을 속에는 복잡한 권력관계가 녹아 있다.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러면 어떤 것부터 해야 할까. 구체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많다. 마을마다, 특히 농촌 마을부터 마을 도서관을 만들어보자. 시내만 오고가는 것이 아니라 마을을 순회하는 마을 버스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얼마 되지도 않는 마을에서 무슨 마을버스와 마을도서관이 필요하냐고 되물을 수도 있다.  하지만 충북 옥천의 '배바우 공동체'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마을에 매년 들어오는 돈으로 도서관을 만들고 마을을 순환하는 버스를 운영했다. 그러니 농촌이 도시에 사람과 자원을 빼앗기지 않고 순환과 공생의 시스템이 갖춰지더라는 거다. 가까이는 홍동 마을의 '밝맑도서관'도 있다. 농촌이나 도시나 플랫폼을 만들 때 사람들이 모인다. 좋은 것은 좀 따라하자.

둘째, 내 생활에 필요한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사회적 경제를 실현하면 삶의 질이 높아진다는 확신이 들어야 많은 이들이 동의하고 따라줄 것이다. 예를 들어 의료민영화의 시대에 의료 생협은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서민들이 말도 안 되는 병원비를 어찌 감당할 수 있겠는가. 금융 빚에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들에게 과도한 이자를 내지 않아도 되게끔 손을 내미는 운동은 어떨까.

마을 만들기를 새로 해봐야 뭐하나. 이미 있는 마을이 계속 사라지고 있는데... 잘못된 정책 때문에 마을이 사라질 지경이라면 그걸 막는 운동을 먼저 해야 한다. 아이들에게 값 싸고 신선한 농산물을 먹이고 도농 상생의 방법을 고민하는 이들에게는 로컬 푸드 매장이 답이 될 수 있다.

최근 군대가 문제가 되니까 교육부터 바꿔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내 아이에게 경쟁이 아닌 협동을 가르치고 싶은 이들에게는 학교 매점부터 협동조합 방식으로 운영해보게끔 할 수 있다. "협동이 안전이다"라고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 이제는 모범사례를 만들고 이를 통해 지역사회 내에 실제 눈에 보이는 사회적 경제를 만들 때가 되었다.

결국 사회적 경제는 사회를 먼저 복원할 때 가능한 일이다. 사회적 경제는 사회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사회가 복원되지 않으면 판로 확보나 우선 구매를 통해 수익을 확보한들, 우리끼리 상호거래를 하자고 주장한들, 해외 사례와 비교하며 비판한들 될 일이 아니다. 이젠 사회를 복원하는 운동을 하자. 우리 이웃을 돌아보고 공동체를 살리자. 순환과 공생의 지역사회를 만들어보자.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 운동은 길을 잃고 말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충남사회경제네트워크> 소식지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사회적경제#지역사회#마을#삶의 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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