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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대한민국의 혁신을 완성시키는 것은 바로 국민 여러분입니다. 혁신의 과정에서는 기득권을 버리고 익숙한 것과 결별해야 하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이번 기회에 잘못을 바로잡지 못하면 우리 후손들의 미래가 암울해질 것입니다."언젠가부터, 박근혜 대통령의 연설을 접할 때 '대통령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는 있는 걸까'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지난 15일 오전 연설한 제69주년 광복절 경축사도 마찬가지였다. 국민들이 혁신을 완성해야 한단다. 국민들이 기득권을 버리는 결단도 필요하단다. 그렇지 않으면 후손들의 미래가 암울해질 거라 겁박한다. 전형적인 책임 떠넘기기다.
그런데 말이다. 우리는 지난 8일 한국관광공사 감사에 선임된 자니 윤(본명 윤종승)씨와 관련된 논란을 기억한다. 그것이 전형적인 '낙하산 인사'요, 그야말로 대통령이 언제부터인가 강조하고 또 강조하는 '적폐'라는 것을. 그 적폐에 대해 이제는 대통령만큼이나 국민들도 잘 알고 또 감시하는 중이다. 그런데 광복절 경축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건망증이 또 도졌다.
광복절 경축사에서 또 도진 박 대통령의 건망증
"정부는 올해 초 절박한 심정으로 우리 경제의 혁신과 재도약을 위한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공공부문의 방만 경영과 비효율 등 우리 경제의 비정상적인 적폐들을 바로잡아서 기초가 튼튼한 경제를 만들고, 창조경제를 통해 우리 경제를 역동적인 혁신경제로 탈바꿈시키고, 규제개혁을 통해 투자를 활성화하고, 내수와 수출이 함께 성장해서 국가발전의 과실이 국민의 삶 속에 골고루 퍼지도록 한다는 것이 핵심목표입니다."박 대통령은 "공공부문의 방만 경영과 비효율 등 우리 경제의 비정상적인 적폐들"을 바로잡겠다고 했다. '창조경제', '혁신경제', '투자 활성화', '국가발전' 등 온갖 듣기 좋(아라 하는 사람은 따로 있)을 단어들을 늘어놓으면 뭐하나. 대통령이 스스로 그 비정상적인 적폐를 격퇴시키기는커녕 낙하산 인사를 아무렇지 않게 내려보내는 것을. 읊어봐야 공염불이다.
그런 점에서, 14일 방송된 JTBC <썰전>은 꽤나 유익하고 시의적절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신임 한국관광공사 상임감사 임명! 자니 윤, 보은인사 논란!'이란 꼭지가 그러했다. 임명부터 논란까지, 청와대의 인사 청탁설부터 유진룡 문광부 장관 면직까지, 공기업 상임감사 자리의 막강한 지위와 대우까지 조목조목 짚어냈다.
자니 윤은 2012년 박근혜 대선캠프 재외선거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을 지냈고, 애초 한국관광공사 사정으로 거론됐던 인물. 그 와중에, 역시 박근혜 캠프 선대위 홍보위원장 출신인 변추석 사장이 한국관광공사 사장으로 임명됐다. 이후 박근혜 대통령이 '감사'의 차원에서 자니 윤을 상임감사 자리에 임명한 것이 아니냐는 것이 <썰전>이 정리한 그간의 논란 내용이었다.
관광분야 경력 없는 자니 윤, '29대 1' 경쟁률 뚫었다?
그 중 백미는 항간에 나돌던 박근혜 대통령과 자니 윤의 오래된 관계 부분이었다. 출연자인 강용석은 "과거 <자니윤쇼>의 PD였으나 박근혜 대통령과 큰 인연이 없던 이남기 전 청와대 홍보수석을 그 자리에 밀어준 것도 자니 윤이 아니냐는 말이 있을 정도"라고 정리했다. 실제 자니 윤은 2007년 박근혜 대통령의 해외동포 후원회장을 맡으면서 인연이 시작됐고, 이를 바탕으로 대선 당시 재외선거대책위 공동위원장을 역임했다고 스스로 밝힌 바 있다.
"내가 꼭 가야겠다고 한 것은 아닌데, 이것도 대통령을 돕는 일이라고 생각했다."이는 자니 윤이 관광공사 노조와 만나 한 발언이라고 한다. 본인 역시 자기 자리라 생각하지 않는 자리에 '감사'의 차원에서 내리 꽂는 이 낙하산 인사야말로 적폐가 아니고 무엇인가. 낙마한 정성근 문화관광체육부 장관 지명자가 논란의 중심에 서기 전에 이미 면직된 유진룡 장관 역시 자니 윤 임명에 반발해서 면직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설득력을 얻어 가는 중이다. 대통령은 퍼즐이 짜 맞춰진 이 명백한 적폐를 두고도 '실무자들의 책임' 운운하며 발뺌할 셈인가.
관광공사 상임감사 최초 응모자가 무려 29명이었다고 한다. 자니 윤씨는 무려 29대 1의 경쟁률을 뚫은 것이다. 과거 미국에서 활동한 코미디언인 자니 윤씨의 전문성이 그리 도드라지는가. 관광분야 경력이 전무한 그가? 사장과 다를 바 없는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동등한 대우를 받는 상임감사 자리에 내려보낸 이유는 박근혜 대통령과의 인연을 제외하곤 도저히 설명할 길이 없어 보인다.
"광복 69주년이자 분단 69주년"이라는 대통령, 믿어야 하나14일 새정치민주연합 조정식 의원은 보도자료를 통해 "한국관광공사 임원추천위원회의 1차 서류심사에서 전문성이 없는 자니 윤씨에게 93.85점을 줘서 최고점을 부여했다"고 밝혔다. 서류심사에 참여한 임원추천위원 7명 중 6명이 90점 이상 몰아줬다는 것이다. 2차 면접심사 역시 추천위원 5명 전원이 자니 윤씨에게 90점 이상의 고득점을 부여했다고 한다.
조 의원 측은 "감사 업무에 대한 전문성이 없는 자니 윤씨가 1천억 원 이상 적자를 내고 있는 관광공사 감사직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박근혜 정부는 노골적인 보은인사를 즉각 중단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 말 그대로다. 감사인사, 보은인사라는 적폐를 쌓아가는 박근혜 대통령이야말로 '비정상정인 적폐'의 수뇌로 보이지 않는가 말이다.
<썰전>의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은 "낙하산 인사가 대통령이 흔히 하는 말로 적폐다. 적폐를 청산하겠다고 반복해서 말하며 이런 적폐를 유지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에 대해 평소 여당과 대통령에 호의적이었던 반대편 패널 강용석 또한 "이렇게 옳은 말을 하는데…"라며 말을 흐릴 정도였다. 유구무언은 이럴 때 쓰는 표현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자니 윤씨는 자리에서 내려올 생각이 없는 듯 보인다. 이미 관광공사 홈페이지에는 '감사 윤종승(자니 윤의 본명)'의 이름이 당당히 올라와 있다. 종편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인연을 강조하고, 심지어 지난해 KBS에서 자니 윤의 이름을 내건 프로그램 런칭설이 나돌았던 자니 윤. 그렇게 또 하나 '적폐'의 아이콘이 늘었다.
그나저나, 자신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모르는 것 같은 박근혜 대통령의 실언은 오늘도 계속됐다. 광복절 경축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올해는 광복 69주년이자 동시에 분단 69주년이기도 합니다. 분단된 상태로 지속되어온 69년의 비정상적 역사를 이제는 바로잡아야 합니다"라고 발언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진정, 1945년 광복 직후부터 분단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1945년 해방 이후 남한은 1948년 8월 15일, 북한은 9월 9일 각각 정부 수립을 선포, 공식적인 분단을 맞는다. 따라서 1948년까지는 공식적인 분단 상황으로 보기 어렵다는 의견이 있다). 제69주년 광복절, 그 누구의 얘기도 귀 기울이지 않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는 대통령을 보며, '우이독경'이란 사자성어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