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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34일째 단식 중인 '유민아빠' 김영오씨가 지난 16일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났다. 이날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시복식 전 카퍼레이드를 하던 교황은 김영오씨 등 세월호 유족을 보자 일부러 자동차를 멈추고 그들에게 다가갔다. 김씨는 교황에게 "세월호를 잊지말아달라"며 직접 쓴 편지를 건넸다. 교황은 그를 위로한 뒤 김씨의 편지를 자신의 주머니에 넣었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34일째 단식 중인 '유민아빠' 김영오씨가 지난 16일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났다. 이날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시복식 전 카퍼레이드를 하던 교황은 김영오씨 등 세월호 유족을 보자 일부러 자동차를 멈추고 그들에게 다가갔다. 김씨는 교황에게 "세월호를 잊지말아달라"며 직접 쓴 편지를 건넸다. 교황은 그를 위로한 뒤 김씨의 편지를 자신의 주머니에 넣었다. ⓒ 교황방한위원회

국민과 손을 맞잡은 이는 대통령이 아니었다. 34일째 곡기를 끊은 세월호 침몰 사고 유가족의 손을 꼭 맞잡은 이도, 의지할 데 없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의 손을 어루만진 이도 대통령이 아니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었다.

바야흐로 프란치스코 교황 열풍이 불고 있다. 지난 4박 5일간 프란치스코 교황의 낮은 행보는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집단우울증에 빠진 국민에게 큰 감동을 줬다. 교황으로부터 받은 감동의 크기는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를 외면하는 박근혜 대통령과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절망에 정확히 비례한다.

교황 방한 전날인 13일 유가족들은 세월호 사고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기 위해 청와대로 향했다. 하지만 경찰이 가로막더니, 유가족들을 강제로 끌어냈다. 유가족들은 청와대 앞에서 꼬박 밤을 샜지만, 다음 날에도 청와대의 그 누구도 만날 수 없었다. 그날 교황은 한국 땅을 밟은 후 첫 일성으로 세월호 유가족들을 위로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최측근인 이정현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18일 박 대통령이 유가족들을 만나지 않은 이유를 두고, 다른 국정 때문에 바쁜 탓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로마에서 온 일흔 여덟의 교황은 빡빡하게 짜인 일정을 벗어나면서까지 유가족들을 직접 만났다. 박근혜 대통령과 교황의 행보는 180도 달랐다.

대한민국이 절망에 빠진 그때, 교황이 왔다

주저앉은 유가족들 "박 대통령 언제든지 오라더니..." 제대로 된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박근혜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는 세월호참사 유가족들이 13일 오후 청와대 입구에서 경찰에 가로막힌 채 앉아 있다.
주저앉은 유가족들 "박 대통령 언제든지 오라더니..."제대로 된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박근혜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는 세월호참사 유가족들이 13일 오후 청와대 입구에서 경찰에 가로막힌 채 앉아 있다. ⓒ 권우성

교황은 방한 전부터 세월호 사고에 각별한 관심을 나타냈다. 교황은 지난 4월 세월호가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하자 트위터에 "한국의 여객선 사고로 희생된 분들과 가족을 위해 저와 함께 기도해 달라"는 글을 올렸다. 또한 같은 달 바티칸 교황청에서 대전교구장 유흥식 주교를 만나 "한국민들이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윤리적, 영적으로 새롭게 태어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교황의 삶을 돌이켜보면, 세월호 침몰 사고에 대한 교황의 위로는 의례적인 언사가 아님을 알 수 있다. 교황은 지난해 3월 선출된 뒤 그해 7월 로마 밖 첫 방문지로 이탈리아 최남단 람페두사 섬을 찾았다. 이곳 앞바다는 유럽으로 밀항하려는 아프리카 난민들의 배가 침몰해 한 해 수백~수천 명이 죽는 곳이다. 교황은 이곳에서 집전한 미사에서 '무관심의 세계화'를 질타했다.

그해 10월 아프리카 난민 500여 명을 태운 배가 람페두사 앞바다에서 전복돼 36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교황은 "비인간적 지구촌 경제 위기와 인간 경시 풍조가 낳은 부끄러운 비극"이라는 뜻을 밝히면서, 재차 이곳을 찾았다.

교황은 또한 추기경 시절이었던 2004년 12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한 나이트클럽에서 난 화재로 200여 명이 죽었을 때, 가장 먼저 현장을 찾아 구조에 나서기도 했다. 그 뒤에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해 노력했다. 

교황 방한을 앞두고, 교황이 세월호 사고 유가족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할지 관심이 쏠렸다. 정치권은 세월호 특별법 제정에 대한 합의를 이루지 못한 채 시간을 보내고 있던 때였다. 유가족들은 여야 모두에 대한 기대를 접었다. 이들이 하소연할 상대는 한국에 없었다. 그때 교황이 왔다.

교황, 연일 세월호 사고 유가족들을 만나다

세월호참사 유가족 위로하는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이 15일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성모승천대축일미사'에서 세월호참사 유가족들을 위로하고 있다.
세월호참사 유가족 위로하는 교황프란치스코 교황이 15일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성모승천대축일미사'에서 세월호참사 유가족들을 위로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당초 천주교 방한위원회는 교황과 유가족의 만남 일정을 마련하지 않았다가 뒤늦게 일정을 잡았다. 방한위원회가 교황이 소외된 이들을 만나는 일정을 짜는 데 소극적이었다는 지적이 나왔다. 소외된 이들과의 만남을 중시하는 교황이 한국에서는 종교 일정에 갇힌다는 비판도 있었다.

이 같은 우려는 기우였다. 교황은 한국 땅에 내린 직후 세월호 사고 유가족에 대한 위로를 전했다. 교황은 14일 서울공항 환영행사에서 평신도들과 인사를 나누던 중 세월호 침몰 사고 유가족들을 소개받자, 이들의 손을 잡고 "세월호 희생자들을 마음 속 깊이 간직한다,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교황은 방한 이틀째인 15일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세월호 사고 유가족을 만났다. 교황은 유가족들이 건넨 세월호 사고 추모 노란 리본을 제의복에 달고 성모승천대축일 미사를 드려 화제를 모았다. 교황은 16일 오전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한국 순교자 124위 시복식에 앞서 카퍼레이드를 하던 중 갑자기 차에서 내려, 단식농성중인 세월호 사고 유가족 김영오씨를 만났다. 김씨가 편지를 건네자, 교황은 편지를 손수 주머니에 넣었다. 

17일에는 예정에 없던 세월호 사고 유가족 이호진씨의 세례식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씨의 갑작스러운 요청에 교황이 응한 것이다. 교황은 또한 세례식 직후, 실종자 가족들에게 쓴 한글 위로 편지와 묵주를 김건태 신부에게 전달했다. 교황은 "이번 한국 방문 기간 내내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과 실종자들 그리고 그 가족들을 위한 기도를 잊지 않았다"고 썼다.

교황은 세월호 유가족뿐 아니라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직접 위로했다. 교황은 18일 오전 서울 명동성당에서 열린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에 참석해 일일이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손을 맞잡았다. 이들이 건네준 '희망 나비' 브로치도 제의복에 달았다. 이날 미사에 초청받은 새터민, 납북자 가족, 밀양·강정마을 주민, 용산참사 피해자,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도 위로를 받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어떤 깨달음을 얻었을까

의장대 사열하는 프란치스코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이 14일 오전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해 박근혜 대통령과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의장대 사열하는 프란치스코 교황프란치스코 교황이 14일 오전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해 박근혜 대통령과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대통령에게는 소외된 이들을 돌보고 사회통합에 나설 헌법적 책무가 있다. 교황이 4박 5일 동안 소외된 이들을 위로할 때 박 대통령은 주로 청와대를 지키거나 교황 행사에 참석하는 데 그쳤다. 박근혜 대통령의 빈 자리는 교황이 채웠다. 교황은 더 나아가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 인사, 정치권에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교황은 14일 청와대 연설에서 "사회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 열린 마음으로 소통과 대화와 협력을 증진시키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면서 "가난한 사람들과 취약 계층 그리고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각별히 배려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들의 절박한 요구를 해결해 주어야 한다"고 전했다.

교황은 우리 사회에 많은 것을 남기고 떠났다. 박 대통령과 정치권은 어떤 깨달음을 얻었을까. 교황이 떠난 18일 정치권은 세월호 특별법 제정에 합의하는 데 실패했다. 또한 대통령의 위로를 요구하는 세월호 사고 유가족들의 목소리에 청와대는 아직까지 응답을 내놓지 않았다.


#교황과 박 대통령, 대비되는 행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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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연재 '세월호' 침몰사고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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