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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나없이 우리는 어떤 나라에 태어난다. 우리는 대한민국이란 나라에 태어났다. 태어나면서부터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이다. '나'라는 존재가 생각했든 생각하지 않았든 '대한민국'은 '나'라는 사람의 나라다. 나면서부터 국민의 의무와 권리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세금을 내라면 세금을 낸다. 군대에 가라면 군대에 간다.

혹시라도 국가가 정해놓은 법에 저촉되면 죄를 지었다고 생각한다. 죄를 지은 사람은 응당한 죗값을 치르는 게 정의라고 믿는다. 착한 사람은 국가의 통제에 잘 순응하는 사람이다. 악한 사람은 국가의 통제에 따르지 않는 사람이다. 모든 지식과 법률, 선과 악, 도덕과 교육의 결정은 국가가 한다. 그리고 말한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고...

나라는 국민을 보호하는가?

대통령이 있고, 국무위원들이 있으며, 국민의 손으로 뽑은 국회의원들이 있다. 치안을 위해 군대를 두고, 경찰 제도를 마련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적당한 녹을 주어 충성스럽게 일하게 만든다. 그들이 맡은 일을 잘하지 못할 때, 국민들은 불만을 토로한다. 하지만 여전히 그들의 존재 이유가 국민을 위해서라고 믿는다. 국민은 이들의 배려와 사랑에 감사하며 산다. 당연히 그들이 국민인 '나'를 보호한다고 믿는다.

보통사람들은 나라의 존재에 대하여 별다른 생각을 안 하며 산다. 누가 만들어 놓았느냐고 묻지도 않고, 나라가 없는 사회는 어떤 사회일지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그렇게 당연하다고 생각한 나라가 해야 할 일을 안 해 치명적인 위험에 노출된다면 어떻게 될까? 그래도 나라의 존립자체를 부정하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벌써 20년도 넘은 이야기다. 우리 집에 도둑이 들었다. 많은 것은 아니지만 결혼 패물들과 현금, 그리고 옷가지들을 도둑맞았다. 가까운 파출소에 신고를 했다. 경찰 두 명이 현장을 조사한다고 찾아왔다. 어지러운 방안을 둘러보더니 파출소로 가잖다. 한 시간도 넘게 진술하고 집으로 왔다. 며칠 후에 경찰에게서 전화가 왔다. 도둑을 잡았다는 전화인 줄 알고 받았다.

"파출소예요. 도둑 찾았어요? 주변 사람일 텐데..."

참 황당한 시추에이션 아닌가. 내가 물을 소리를 경찰이 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도둑은 못 잡았다. 여전히 그 경찰은 녹을 받았을 거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정년을 채웠을 거고 퇴직 후 연금을 받았을 거다. 과연 경찰이 필요한가. 그때 그런 생각을 했었다. 물론 이건 내 경우다. 나와는 달리 도움을 받았던 사람도 있을 것이다.

15년 전에는 강도가 들었다. 열린 창문으로 넘어 들어왔다. 귀중한 물건들이 없었던 터라 잃은 것은 많지 않았지만 강도는 혼자 자던 아내를 부엌칼로 위협했다. 아내는 그 이후 한여름에도 문을 열고 자지 못한다. 그때도 경찰은 역시 주변 인물일 거라며 우리더러 강도를 찾았느냐고 물었었다. 경찰이 정말 치안을 담당하는 것이 맞을까.

나라는 서민을 위하는가?

 <국가 없는 사회>(에리코 말라테스타 지음 / 하승우 옮김 / 포도밭출판사 / 2014.08 / 1만 2000원)
<국가 없는 사회>(에리코 말라테스타 지음 / 하승우 옮김 / 포도밭출판사 / 2014.08 / 1만 2000원) ⓒ 포도밭출판사
경찰도 나라도 필요 없다고 말하는 책이 있다. 아나키스트인 에리코 말라테스타의 <국가 없는 사회>가 그것이다. 한 카페에서 부유한 부르주아 프로스페로, 대학생 미켈레, 치안판사 암부로조, 공화주의자 빈센초, 노동자 지노, 사회주의자 루이지 등과 아나키스트 조르조가 대화를 나누는 형식으로 짜여있다.

말라테스타는 이탈리아 산타마리아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14살 때 지역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편지를 국왕에게 보내는 등 사회운동에 뛰어든 인물이다. 19살 때부터 아나키즘 운동을 본격화했으며 무장부대를 이끌고 세금장부를 불태우기도 했다. 23년에 걸친 대화 팸플릿이 그의 사상을 그대로 담고 <국가 없는 사회>로 출판되었다.

의회정치는 국민을 대변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국회의원이 국민을 대변한다는다는 말이 정말 사실일까. 국민의 표로 선출하기는 하지만 그들이 국회의원이 되는 순간 국가의 충실한 대변자가 된다. 그들의 부는 자꾸 늘어난다. IMF 때 서민은 거리로 나앉은 이들이 많았지만 정부요인들과 국회의원들, 그리고 재벌들의 자산은 대부분 늘어났다.

자신들의 부나 권력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나라(지배세력)는 제도를 굳건히 하여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한다. 대부분 국가를 위협하는 이들은 기득권자가 아니다. 못 가진 자, 노동자, 농어민, 서민들이다. 서민의 정부는 이렇게 권력의 마력 속에 빠지고 서민은 더욱 기득권층과 멀어진다.

"정부는 가진 자들에게서 나오고 스스로를 유지하기 위해 가진 자들의 지지를 필요로 해요. 정부의 구성원들이 바로 가진 자들이니까요. 그러니 어떻게 노동자들의 이익을 만족시킬 수 있겠어요?"(본문 28쪽)

"입법부와 행정부 전체는, 법과 군대, 경찰, 판사 등을 갖춘 정부 전체는 민중을 통제하고 착취를 보장하는 쪽으로만 활용됩니다."(본문 91쪽)

얼마나 실감나는 말이냐. 삼평리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는 여러 사람 중 한 할머니의 말을 들으면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실감이 날 것이다. 최계향 할머니의 말이다.

"경찰이 민간인들을 보호해야 되는데 한전 앞잡이처럼 한다. 모두 있는 사람 봐주는 거지. 높은 사람은 살기 좋고, 뭐 없는 사람하고 못한 사람은 살기 어렵지. 우리 눈으로 봐도 많이 뭐 보이지. 국민이 있어야 나라가 있는 거지."(<삼평리에 평화를> 146쪽)

국가, 다시 생각하다

애국심이라는 이름으로 자본가와 지배자가 죽음의 전쟁터로 국민을 내모는 일은 정당한가. 범죄자가 많을수록 경찰이 더 필요해지는 '경찰의 권력과 사회적 중요성'은 무얼 말하는 걸까. 정부가 필요로 하는 군대에 모두가 가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모두가 세금을 내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아나키즘은 국가가 부과하는 모든 것을 거부한다. 정부가 없는 사회가 안전하고 행복하다고 선언한다. 소유제도의 완전한 변화, 생산과 교환체계의 완전한 변화를 꿈꾼다. 정부로부터는 무엇도 원하지 않는다. "가진 자들의 정부는 서민의 복지를 생각하지 않는다"며 가진 자와 정부는 생산을 마음대로 조종하여 값을 더 받으려고만 한다고 여긴다.

법과 정부는 우리가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관계"를 맺을 때만 유효하다며, 평등한 사람들은 경찰을 부르거나 법정으로 문제들을 가지고 갈 이유가 없다고 한다. "지배를 받는 사람들이 의식적이고 적극적이고 공격적으로 지배자에게 저항하지 않는 한, 어떤 사회 상태든 충분한 근거들을 가지기 때문에 영원히 지속될 수 있다"고 말한다.

책은 그러기에 무장이 필요할 수도 있다고 강조한다. 무장봉기, 우리 역사의 동학농민 봉기를 떠올리게 하는 요소다. 이 책에서 말하는 모든 주장들에 다 동의하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은 세월호 참사를 겪으며 희생당한 이들이 겪은 아픔에 대해 국가나 기득권자들이 무얼 했는지, 무얼 할 것인지 묻게 만든다. 실은 한 게 없고, 할 게 없지 않은가 하는 자괴감 때문에 더 슬프다.

서민의 아픔과 상관이 없는 정부, 서민들의 표로 대통령이 혹은 국회의원이 된 이들로 구성된 정부지만 서민이 다가가기에는 너무 높은 나리들, 정부와 정치가 국민을 염려하는 게 아니라 국민이 정부와 정치를 염려해야 하는 국가, 과연 이 국가가 필요한가. 필요하다면 누구를 위해 필요한가. 대통령이 필요한가. 필요하다면 누구를 위해 필요한가. 대통령 자신? 국민?

덧붙이는 글 | <국가 없는 사회>(에리코 말라테스타 지음 / 하승우 옮김 / 포도밭출판사 / 2014.08 / 1만 2000원)



국가 없는 사회 - 카페에서 만난 어느 아나키스트와의 대화

에리코 말라테스타 지음, 하승우 옮김, 포도밭출판사(2014)


#국가 없는 사회#에리코 말라테스타#하승우#나라#아나키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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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행복이라 믿는 하루가 또 찾아왔습니다. 하루하루를 행복으로 엮으며 짓는 삶을 그분과 함께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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