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자신에게 거액의 돈이 떨어진다고 생각해보자. 로또 복권 1등을 독식하거나,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는 등 갑자기 돈이 생겼다고 가정해보자. 예를 들면 우연히 들어간 지하철역 화장실에서 5만 원권 1만 장이 들어있는 가방을 발견하는 경우다. 살면서 이런 일이 생길 가능성은 거의 0%에 가깝지만 아무튼 한번 상상해보자.
대부분의 사람은 아무리 돈이 궁하더라도 그 가방을 통째로 자신이 가져갈 생각은 하지 못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돈이기도 하고, 그런 돈을 챙겼다가 후에 어떤 봉변을 당할지 모른다.
어쩌면 소심하게 가방 안에서 몇 장의 지폐만 꺼내 갈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돈을 몽땅 챙겨가더라도 절대로 발각되거나 추적당하지 않는다는 확신이 선다면 한 번쯤 시도해 볼만 하지 않을까.
새 인생을 찾아서 길을 떠나는 남녀
존 렉터의 2013년 작품 <콜드 키스>에서 이런 상황이 발생한다. 주인공은 네이트와 사라라는 이름을 가진 젊은 남녀 커플이다. 이들은 떳떳하지 못했던 과거를 청산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해서 길을 떠난다.
그 길 위에서 한 남성을 만난다. 어딘가 몸이 불편해 보이는 그 남성은 자신의 승용차가 망가졌다면서 네이트의 차에 동승 시켜달라고 요구한다. 멀지 않은 거리를 가는 대가로 500달러를 주겠다면서.
그 남성이 미치광이 사이코 킬러가 아니라면 크게 어려울 것도 없는 부탁이다. 그런데 날씨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다. 폭설이 쏟아지기 시작하면서 승용차로는 더 이상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 생긴다. 할 수 없이 도로변의 모텔에 차를 세웠다. 이번에는 그 남성이 네이트의 차 안에서 마치 죽은 것처럼 움직이지도 숨을 쉬지 않는다.
네이트와 사라는 할 수 없이 모텔방으로 모든 짐을 옮기고, 그 과정에서 그 남성의 가방에 현금 200만 달러가 들어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모텔은 폭설로 인해 전기와 전화도 끊긴 상태. 이 200만 달러에 대한 욕심 때문에 새 인생을 시작하겠다던 네이트와 사라의 계획도 조금씩 꼬여가기 시작한다.
돈을 놓고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이런 일이 실제로 발생하면 과연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200만 달러라면 감당하기 어려운 액수이지만, 동시에 포기하기에도 힘든 금액이다. 아무리 정체불명의 돈이라지만 이만한 돈이 생긴다면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하고 깔끔하게 새 시작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은 돈의 유혹 앞에서 약해진다. 동시에 거금 앞에서는 두려움을 느끼기도 한다. 돈은 사람을 변하게 한다. 좋은 쪽 보다는 나쁜 쪽으로 변할 가능성도 많다. 돈은 또한 희망을 주기도 한다. 충분히 많은 돈이 있다면 더 이상 생계를 위한 의무적 노동을 하지 않아도 될 테니까.
대신에 어딘가로 떠나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다. 텅 빈 해변과 따뜻한 밤 공기를 만끽하며, 축 늘어진 야자나무 아래에 누워서 쏟아지는 수천만 개의 별을 바라보며 살 수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복권을 사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물론 현실은 그런 상상과는 거리가 있다. <콜드 키스>의 주인공들도 마찬가지다. 돈은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해 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문제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하긴 어디에서 무얼 하건 간에 그놈의 돈이 문제다.
<콜드 키스> (저자 존 렉터 / 옮긴이 최필원 / 은행나무 / 2014.08.27 / 31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