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병은 쉽게 공포의 대상이 된다. 그 병이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한다면 그 효과는 더욱 커진다. 최근 '에볼라 바이러스'의 예가 그렇다. 아직 뚜렷한 치료제가 없다는 사실과, 감염된 숙주 대부분을 죽음으로 몰아갈 정도로 높은 치사율은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갖게 했다. 오죽하면 국적을 불문하고 아프리카 대륙에서 온 사람이면 누구든 입국을 막아야 한다는 반응까지 나왔겠는가.
정유정의 소설 <28>에서도 마찬가지다. 소설은 서울 인근 '화양시'라는 가상의 도시를 무대로 삼는다. 인구 29만 명의 수도권 지역 어느 도시에서 정체불명의 전염병이 창궐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전염병 퍼진 가상도시 '화양시'
이야기는 흰 눈이 온 세상을 가득 뒤덮은 어느 겨울,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가 병에 걸린 개에 물린 119 구조대원이 심한 발열 증상을 보이는 것으로 시작된다. '충혈된 눈'과 몸살처럼 몸이 뜨거워지는 것을 공통 징후로, 끝내 감염자가 온몸의 각 기관으로 피를 쏟으며 사망한다.
소설 <28>은 한 명이 아닌 다양한 인물을 통해 입체적으로 이야기를 쌓아간다. 동물 보호소 수의사인 재형, 그의 사연을 취재하는 기자 김윤주, 전염병 최초 발견자인 소방대원 한기준, 정신병을 앓으며 동물을 학대하는 공익 요원 박동해, 병동 간호사 노수진, 떠돌이 늑대개 '링고'까지. 각각의 사연이 있는 주인공들은 우연처럼 만나 서로 얽힌다.
이야기의 설정은 인간 내면의 원초적인 공포심을 자극하기에 가장 알맞은 요소를 모두 택했다.
'정체불명의 전염병'은 치료법이 없어 언제 나를 죽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극 중 배경인 '화양시'는 폭설로 외부와 고립된 상황으로 독자에게 이런 막막함을 안겨준다. 반려동물인 개가 인간에게 병을 옮기는 매개체가 된 상황도 가까운 사이에서 정을 나누던 존재가 순식간에 '공공의 적'으로 전락할 수 있음을 아찔하게 보여준다.
정부의 방관 속에서 아수라장이 되어가는 화양시. 등장인물들이 보여주는 각각의 모습도 눈에 띈다. 환자를 구하려는 간호사, 생존을 위해 발버둥 치는 인간과 개, 보도 통제로 무기력한 현실을 마주한 기자, 복수에 눈이 멀어 살생도 서슴지 않는 인물 등 다른 목적을 추구하는 와중에 충돌하는 군상들을 냉정한 시선으로 응시한다.
담담하면서도 사실적인 묘사가 이야기의 내용과 어울려 잔인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지옥 같은 이야기 속에서 천천히 드러나는 인류애와 생명의 가치를 마주할 때면, 마치 한 주먹 가득 퍼올린 진흙 속에서 밝게 빛나는 진주를 발견한 느낌이다.
소설 속의 모습, 2014 한국 현실과 닮았다두려움을 접한 인간의 모습도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본문에서 전염병의 숙주로 '개과(科) 동물'이 의심되자 무작정 지역의 모든 개를 살처분해서 생매장하는 장면은, 2010년 '구제역 파동'을 겪던 한국의 현실과 겹친다. 치사율이 높은 전염병으로 극도의 공포를 겪는 소설 속의 모습은 최근 에볼라 바이러스와 관련 아프리카에서 입국하는 사람을 강하게 통제해야 한다는 누리꾼들의 논란과도 흡사하다.
화양시에서 누구든 바깥으로 나오지 못하게 하려는 타 지역인의 태도는, 감염 여부와 별개로 아프리카 국적의 사람이라면 무조건 입국을 막아야 한다는 한국 누리꾼의 자세와 거울을 비춘 듯이 닮았다.
결국, 정부는 화양시에 계엄령을 내리기에 이른다. 바이러스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한 당국은 화양시를 포기하기로 하고, 인터넷을 차단하고 보도 통제를 실시한다. 화양시를 제외한 한국의 모든 국민에게 "정부는 사태를 완벽히 통제하고 있다"고 발표한 뒤 현장에 군 병력을 대거 투입한다.
군은 '바깥으로 나갈 수 있게 해달라', '진실을 규명해달라'는 화양 시민들의 평화적 시위행진을 무차별 총격으로 진압한다. 탱크와 압도적인 화력을 동원해 시민을 짓밟는 장면은 1980년의 광주를 묘사한 것처럼 잔혹하다.
'피해자 배제'를 통해 한국의 어느 한 지점을 사회로부터 떼어내고, 화양시를 공동체에서 동떨어진 외부세력으로 몰아가는 <28> 속 사회는 잔인의 극도를 보여준다. '인위적이고도 어색한 평화'를 이어가려는 본문 속 정부의 태도가, '세월호 참사'를 대하는 2014년 한국 사회와 소름 끼칠 정도로 비슷해 보인다.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발전하려는 노력보다, 사고를 접하는 대중의 프레임 전환을 시도하는 한국의 모습 말이다.
소설 <28>은 독자에게 묻는다. '대규모 살처분'으로 얻어낸 안정과 평화가 진정 사회를 유지할 수 있는 바탕으로 충분한 것인지, 그 사이에 드러난 잔인함과 비인간적 태도를 고스란히 응시할 수 있는지를.
동시에 소설이 출간된 지 1년이 넘게 지난 오늘, 같은 방식으로 세월호 참사를 이슈에서 의도적으로 배제하려는 모습도, 같은 잣대로 되물어야 할 것만 같다. 사고를 접한 사회가 드러낸 잔인성을 먼 훗날 슬프게 돌아보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덧붙이는 글 | <28> (정유정 / 은행나무 / 2013. 06. 16 / 1만 45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