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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멈퍼드 건축비평선 책 표지
루이스 멈퍼드 건축비평선책 표지 ⓒ 한길사

루이스 멈퍼드는 1931년부터 1963년까지 뉴욕의 교양주간잡지 <뉴요커>(The New Yorker)지에 '스카이라인(The Sky Line)' 칼럼의 단독 고정필자로 총 150여 편의 건축평론을 연재하며 대중적 인지도를 쌓은 유명 건축평론가다. 이 책 <루이스 멈퍼드 건축비평선>은 그의 칼럼 가운데 1947년부터 1956년까지의 내용을 모은 것으로 현대의 독자들에게 적어도 두 가지의 영감을 줄 것이다. 하나는 '좋은 건축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좋은 비평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것이다. 우선 전자부터 살펴보자.

루이스 멈퍼드가 생각한 좋은 건축

루이스 멈퍼드는 건축에 있어 상징과 기능의 적절한 조화를 중시했다. 그는 자신의 모든 글에 걸쳐 빈곤한 상상력으로 편협하고 기계적인 미학을 추구하거나 현대적인 느낌만을 흉내내는 당대 건축의 풍토를 경계하였다. 그에 따르면 예술과 기술은 본래 밀접한 관계인데 기계중심의 기능주의가 현대 건축의 표현과 상상력을 빈곤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는 인간개성과 예술적 상징이라는 건축적 가치가 기술과 조화를 이뤄야 하며 이로부터 건축기술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와 같은 그의 비평은 '자유의 여신상 만큼 사랑받는 상징이 되어야 하고 로마의 성 베드로 성당만큼 강렬한 장관을 연출해내야 했던' UN(국제연합) 본부 건물군에 대한 비평에서 절정을 이룬다. 그는 새 시대의 상징을 이룩하지도, 기능적 완결성을 구축하지도 못한 UN 사무국 빌딩을 '피상적인 미적 성과이고 건축적으로는 실패작'이라 규정짓고 이런 식의 건축을 일삼는 현대 디자인 집단들에 파산을 선고한다.

'이런 건물은, 인간적 기능과 인간적 필요에 깊이 관심을 기울여서 건물 자체가 그 위대한 목적을 상징하게 해야 한다. 인간적 고려가 지고한 것이 되고 우리 모든 조직과 제도의 기반이 될 새로운 세상을 앞당겨서 조금이나마 보여주기는 해야 한다. 그 건물은 시각적, 기능적 상징이 되어야 하고, 인간적 중요성에 따라 등급 매겨지는 제반 기능을 제대로 충족시키는 것으로부터 그 건물의 아름다움이 떠올라야 한다. 바로 이것이 새 국제연합 사무국 빌딩에서 가장 찾아보기 어려운 덕목이다.'(104p)

'이 건물을 멀리서 볼 때나 그 안으로 들어갈 때에는, 누구나 그 디자인 덕분에 상상력이 눈 뜨고 의식이 자각되고 평화에 대한 의지가 솟아나고 강해져야 한다. 국제연합이 성공적인 세계정부조직으로 성숙하고 전 세계 사람의 애정 어린 충정을 얻어낸다면, 그것은 그 첫 번째 본부의 건축 덕분이 아니라 그 건축에도 불구하고 얻어낸 것이 될 것이다.'(113p)

반 세기가 지나도 여전히 유효한 멈퍼드의 비평

비록 반 세기도 더 전에 지구 반대편 뉴욕의 건축물을 대상으로 쓰여진 비평임에도 여전히 유효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는 점이 이 책의 특장점이다. 저자는 뉴욕의 개별건물을 그 구체적 양상을 하나하나 다룸으로써 비평했지만 그가 천착한 문제는 시공간을 초월해 유효성을 가질 만큼 보편적이라는 점이 특징적이다. 비평은 대개 시사적인 관심과 당면과제를 반영하게 마련이지만 루이스 멈퍼드의 비평은 그 너머의 보편적인 문제까지 확장해 나아감으로써 오늘날에도 유효한 의문을 던진다는 점에서 현대적 의의가 있다.

만약 <루이스 멈퍼드 건축비평선>에 다른 이름을 붙이는 것이 허용된다면 나는 '비평이란 무엇인가'라 명명하고 싶다. 기본적으로 이 책이 훌륭한 비평선일 뿐 아니라 비평의 본질과 좋은 비평의 덕목을 아우르는 보기 드문 책이기 때문이다. 대개 비평이란 개별 사안과 관련해 그 의미와 역할을 비판하고 평가하는 것으로 이를 살펴보면 글쓴이의 미적 교양, 인간적 직관, 사회적 가치, 윤리적 기준 까지를 판단할 수 있다.

그런데 이를 루이스 멈퍼드의 건축비평에 적용해보면 그는 교양이 풍부하고 직관이 살아있는 비평가로서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가치를 건축분야에 녹여내 강조하는 인물이다. 그는 장기적인 관심의 도시개발계획의 필요를 역설하고 사람과 자연에 녹아드는 건축을 옹호한다. 건축의 의미가 형식을 통해 표현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동시에 그 표현이 지나치게 기술지향적으로 흘러가며 인간과 자연 등 본래의 목적을 소외시켜선 안된다고 주장한다. 그가 제기하고 있는 문제들은 상상력이 없고 효율만을 우선시하며 표현력이 궁핍하거나 첨단을 흉내내고 주변과 어울리지 못하는 오늘날 우리 건축실태에도 해당되는 문제들이기에 여전히 유효하다.

루이스 멈퍼드가 서울시 신 청사를 본다면 뭐라고 말할까?

한 편으로 루이스 멈퍼드의 건축비평이 널리 읽히고 사회적 담론으로까지 확장된 1950년대 미국사회의 문화적 토양이 놀랍다. 우리사회에선 여전히 건축물과 그에 대한 비평이 건축관계자들만의 영역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새로 지어진 서울시 청사나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DDP) 등 사회적 관심을 모은 유명 건축물조차 그 논의가 지속적으로 깊이 있게 이뤄지지는 못했다. 그리고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거시적 관점의 도시계획은 물론 개별 건축물에 대한 관심이 부재한 탓에 건축물 사이의 조화가 이뤄지지 않거나 수준미달의 건축물이 세워져 도시경관을 해치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 2012년 9월 완공된 서울시청 신청사가 대표적인 경우다.

서울시 신 청사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구 청사를 덮치는 형세로 신 청사가 서 있다
서울시 신 청사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구 청사를 덮치는 형세로 신 청사가 서 있다 ⓒ 서울시

세계적인 대도시로 거듭나고 있는 서울시가 야심찬 기획 끝에 건립한 신청사는 건축계는 물론 시민들의 입방아까지 오르내린 문제작이다. 일재잔재인 구청사를 뒤엎기 위해선지 쓰나미 모양을 형상화하고 있으나 구청사 뒤편에 제한적인 크기로 건립된 탓에 답답한 인상이 더욱 크다. 곤충의 눈을 떠올리게 하는 측면의 이미지와 구 청사와의 부조화, 거울을 주 재료로 사용한 탓에 과도하게 지출되는 냉난방비 등의 문제도 제기되었다. 주변과 조화되지 않는 이 거대한 유리건물을 루이스 멈퍼드가 어떻게 비평할지는 명확하다.

'현대 디자이너는 유리를 현대적인 재료로 믿고 유리를 많이 쓸수록 더 현대적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인간이 상주하는 주택으로는 가장 견디기 힘든 온실과 차가운 골조를 만들어냈다.' (256p)

'현대미술관 정원과 일본 정원 이 두 가지가 주는 최종적 교훈은 그 어떤 건물도 미적으로 완성되려면 사람들이 그 건물을 볼 수 있도록 건물의 주변공간이 충분히 트여 있어야 할뿐더러 내부의 질서와 즐거움을 외부로 옮기고 또다시 그것을 관찰자의 떠도는 시선에 가져갈 정도로까지 예술로써 변형시켜야 한다는 점이다.'(259p)

이 책을 통해 루이스 멈퍼드는 일관된 목소리로 현대건축의 본질이 현대적 재료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문명과 사람을 제대로 반영하는 상징을 세우는 것에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기준을 통해 보면 서울시의 신 청사는 청사 바로 앞 자리를 차지해 시야를 가로막고 있는 구 청사의 존재, 구 청사와 신 청사의 어울리지 않는 외양, 유리를 주 재료로 사용해 실용성을 떨어뜨린 점, 무엇보다 도시를 대표하는 랜드마크임에도 제대로 된 상징을 구현하지 못한 점에서 문제를 찾아볼 수 있다. 우리는 어째서 지난 세기를 살아간 건축평론가의 비평으로부터 살아남지 못할 건축물을 수도 서울의 시청으로 갖게 된 것일까?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우리에게 이 책 <루이스 멈퍼드 건축비평선>이 유효할 수밖에 없는 이유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루이스 멈퍼드 건축비평선> (루이스 멈퍼드 지음 / 서정일 옮김 / 한길사 / 2014.6. / 2만2천원)



루이스 멈퍼드 건축비평선 - 『뉴요커』 스카이라인 칼럼 1947-1956

루이스 멈퍼드 지음, 서정일 옮김, 한길사(2014)


#루이스 멈퍼드#뉴요커#스카이라인#서정일#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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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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