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궁에 빠졌다."
어떤 범죄사건을 수사하면서, 아무런 단서도 없고 목격자도 없고 현장에 쓸만한 증거도 없을 때 이런 표현을 사용하곤 한다.
이런 표현은 꼭 사건 수사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다. 인생을 살면서 하고 있는 일이 잘 안풀리거나 인간관계에서 문제가 생겼거나, 아니면 가정생활이 파탄날 지경에 이를 때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미궁에 들어가면 수많은 길이 있지만 어디로 가야 자기가 원하는 곳에 도착하는지 알 수 없다. 그곳이 꼭 출구가 아니더라도 마찬가지다. 눈 앞에 많은 길이 있다.
하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다. 어찌보면 그건 길이 없는 것과 다르지 않다. 글자 그대로 미궁에 빠진 것. 어떻게 이 미궁을 벗어날까?
자택에서 살해당한 일가족나카무라 후미노리의 2012년 작품 <미궁>에서는 '미궁'이라고 이름이 붙여진 살인사건이 등장한다. 잔인함과 엽기, 밀실이 모두 결합된 사건이다. 1988년 도쿄의 한 민가에서 한 남성과 그의 아내, 아들이 칼로 난자당한 채 사체로 발견됐다. 12살이었던 딸은 수면제에 취해 잠들어 있었기에 살아남았다. 대신 아무것도 목격하지 못했다.
당시 이 민가는 밀실 상태였다. 현관, 창 등 모든 곳이 안쪽에서 잠겨 있었다. 다만 한 군데, 화장실 창이 열려 있었지만 작은 환기용 창이라서 몸집이 작은 어린아이가 아니면 드나들 수 없었다. 당연히 이 사건은 해결되지 못하고 미제 상태로 남게된다.
작품의 시작은 사건 발생 22년 후. 주인공은 변호사 사무실에 근무하는 34살의 '신견'이라는 이름의 남성이다. 그는 일종의 정신분열 증상을 보이고 있는 인물로 정신과 치료를 받은 이력을 가지고 있다.
신견은 우연히 한 여성을 만나고 그녀와 잠자리를 함께하게 되지만 그녀에 대해서 별로 아는 것은 없다. 그때 탐정이 나타나 미궁 사건에 관한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그녀와 함께 살다가 실종된 남자를 찾고 있으니 도움을 달라고 요청한다. 그리고 그녀가 미궁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라는 사실을 언급한다. 신견은 이 사실에 대해 호기심을 느끼면서 동시에 미심쩍은 부분들을 발견하고, 조금씩 사건의 진상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살인사건을 추적하는 주인공엽기적인 살인을 저지르는 사람의 내부에 광기가 있다면, 그 살인사건을 강박적으로 추적하는 수사관의 내면에도 광기가 있다. 그 광기의 시선이 그 사건의 깊은 곳에서, 그 수수께끼의 깊은 곳에서, 자기 자신을 보고 있다.
자신 속의 정체를 알 수 없는 부분이 기묘하게도 그 사건에 반응한다. 사건의 진상에 다가가면 자신 속의 정체 모를 부분이, 언젠가는 자신을 망가지게 할 그 내면이 해명될 수 있는 것처럼. 살인사건 현장은 그런 광기가 폭발하는 곳이다.
그 현장을 보고 있자면 내면을 모조리 토해낸 듯한 기묘한 성취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미궁>의 살인범은 밀실이라는 은밀한 공간에서 자신의 뒤틀린 욕망을 성취시킨 뒤에 기막히게 도망쳐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등장인물 중 한 명이 이를 가리켜서 '멋지다'라고 표현할 정도다.
신화 속에서, 테세우스는 미노타우루스와 대결하기 위해 아리아드네의 실타래를 풀어가며 크레타 섬의 미궁으로 들어간다. 미노타우루스까지는 아니더라도,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괴물을 가지고 있다. 자기만의 미궁도 가지고 있다. 그 미궁에서 빠져나오려면, 우선 그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덧붙이는 글 | <미궁>(나카무라 후미노리 지음 / 양윤옥 옮김 / 자음과모음 / 1만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