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아빤 젊어서 여자 뒤꽁무니 쫓아다니는 데 선수였지." 50대 중반의 주부 A씨는 성년인 두 자녀 앞에서 가끔씩 남편의 20대 시절 행태를 들먹이며, 장난삼아 흉을 보곤 한다. A씨가 아니더라도 예전에는 '여자 뒤꽁무니를 쫓는다'는 식의 표현을 심심치 않게 썼다. 요즘 언론 등을 통해 자주 거론되는 '스토킹'과는 비슷하면서도 살짝 낭만이 가미된, 좀 다른 뉘앙스를 가진 말이었다.
헌데 여자를 졸졸 따라다니는 행위를 일컬을 때 왜 '뒤꽁무니'라는 단어를 동원했을까? 그냥 '여자를 따라 다닌다' 혹은 '여자를 쫓아다닌다'라 표현하지 않고. 국어학자를 여럿 동원해도 똑 부러지게 그 이유를 찾아내는 건 쉽지 않을 듯하다. 어쩌면 답을 찾을 수 있는 힌트는 좀 엉뚱해 보이지만, '개의 행동 과학'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개들이 모르는 개를 만났을 때 '뒷조사'를 하는 모습은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다. 서로의 꽁무니 쪽에 코를 대고 킁킁 냄새를 맡는 것이다. 사람은 누군가를 대하면 보통은 시각을 통해, 그것도 정면에서 상대를 확인한다. 여자인지 남자인지, 키가 작은지 큰지 등의 물리적 정보는 물론 호감이 가는지 그렇지 않은지 등 인상까지 읽어낸다.
하지만 개들은 상대방에 대한 보다 상세하고 깊숙한 정보를 꽁무니에서 얻어낸다. 암컷인지 수컷인지는 물론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까지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 나아가 상대가 암컷이라면 배란기 여부도 간파해 낸다.
개들의 인식표 구실을 하는 '항문샘'
사람들은 남장 혹은 여장을 함으로써 어느 정도 눈속임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개들 사이에서는 실체적 진실을 감추기가 쉽지 않다. 뒤꽁무니를 통해 '정체'가 밝혀질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개들의 인식표 구실을 하는 건 뒤꽁무니에 있는 '항문샘'이란 기관이다. 항문샘에는 개들마다 저 나름의 분비물질이 저장돼 있다. 항문샘은 개 항문을 중심으로 할 때, 보통 짝을 이뤄 4시와 8시 방향에 위치한다. 관찰력이 좋은 사람이라면 육안으로 찾아낼 수 있다.
변을 볼 때 괄약근이 움직이면, 항문샘이 수축돼 분비물이 뿜어져 나온다. 개가 자신의 영역을 분변으로 표시할 수 있는 건 항문샘에서 나온 분비물이 분변에 묻기 때문이다. 요컨대, 개의 항문샘은 개똥을 밖으로 밀어내는 항문과는 별도로 존재한다. 그렇다면 사람에게도 항문샘이 있을까? 항문샘은 포유류라면 거의 예외 없이 달고 있다. 사람에게도 있는 기관이라는 뜻이다.
사람의 항문샘은 소화관의 가장 끝부분이라 할 수 있는 항문관의 벽에 자리해 있다. 항문관은 길이가 대략 4센티미터쯤 되는데 괄약근 움직임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부위다.
사람도 대변을 보거나 하면, 항문샘에서 나온 분비물이 같이 섞여 나올 수밖에 없다.
사람 또한 대변 냄새는 어떤 음식물을 먹고 어떻게 소화 시켰느냐에 주로 달려 있겠지만, 개개인의 분비물 냄새도 그 속에 끼어들어 있다고 봐야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아쉽게도' 변에 섞인 분비물의 냄새를 맡고 상대를 '동정'해내는 능력을 잃었다. 반대로 대다수 포유류 동물들은 거의 한결같이 그 같은 능력을 갖고 있다.
사람도 항문샘 주변에 염증이 생기면 '개고생'개와 함께 대표적인 반려동물인 고양이 또한 예외가 아니다. 고양이는 분변과 함께 분비물을 배설하기도 하지만, 스트레스를 받을 때도 항문샘에서 분비물을 분사한다. 고양이가 스트레스를 받을 때 싸는 오줌은 특히 악취가 심한 게 특징이라고 동물학자들은 말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스컹크의 방귀가 고약한 건, 항문을 통해서 나오는 기체 그 자체라기보다는 항문샘 분비물의 냄새가 역한 탓이다. 스컹크는 남다른 방식으로 항문샘을 발달시켜, 자신을 방어하는 데 사용하는 동물인 셈이다.
개나 고양이의 항문샘은 감염이나 분변에 의해 막힐 수도 있다. 중요한 역할을 하는 항문샘이 막혀 버리면 개는 엉덩이를 바닥에 대고 끌고 다니거나 항문 주변을 핥는 행위를 한다. 사람도 항문샘 주변에 염증이 생기면 '개고생'할 수 있다.
동물이든 사람이든 뒤꽁무니, 특히 항문샘의 관리는 두말할 것 없이 보통 중요한 게 아니다. 더구나 항문샘이 자리한 뒤꽁무니는 생식 기관이 밀집돼 있는 부위이기도 하다.
동물의 세계에서 수컷이 암컷 뒤꽁무니를 쫓아 구애하는 행태는 아주 흔하다. 얼핏 사람은 예외인 것처럼 보이지만, 인류의 조상까지도 예외였다고 단언하기는 힘들지 않을까? 사람도 동물의 하나라는 관점에서 따지면, '여자 뒤꽁무니를 쫓는다'는 표현이 제법 과학적인 것만큼은 확실한 듯하다.
덧붙이는 글 | 위클리 공감(korea.kr/gonggam)에도 실렸습니다. 위클리 공감은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행하는 정책주간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