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
지난 4일 언론들은 하나같이 아시안게임 폐막식에 주목했다. 그곳에 북한의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을 비롯하여 최룡해 당 비서, 김양건 대남 비서 등 북한의 최고위측 인사들이 자리했기 때문이다. 언론들은 특히 현재 북한의 권력 서열 2위인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의 일거수일투족을 집중 조명했는데, 어쨌든 그의 한 마디는 향후 남북관계를 좌우하는 중요 지표이기 때문이었다. 과연 그는 박근혜 대통령을 만날까? 만난다면 무슨 말을 할까?
그러나 개인적으로 북한 실세들의 방한과 관련하여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의 말보다도 더 궁금한 점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최근 전 국민을 상대로 떳떳하게 자신의 존재를 밝힌 '서북청년단 재건준비위원회'(이하 서청재건위)의 움직임이었다.
서북청년단이 어떤 단체인가. 그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한반도 서북을 위시한 북녘에서 공산주의자들을 피해 월남한 청년들이 만든 단체 아니던가. 소위 '빨갱이' 이야기만 해도 몸서리치며, 그들을 없애기 위해서라면 국가가 규정해 놓은 법과 질서도 지킬 수 없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
그런데 어째 이상하다. '북괴'의 실세들이 인천공항을 통해 유유히 걸어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서청재건위에서 아무 말이 없다. 물론 해방정국 당시의 서북청년단처럼 월남한 이들이 주축이 되지는 않았겠으나, 어쨌든 서북청년단을 다시금 호명했으면 그만큼 '빨갱이'에 대한 적개심이 하늘을 찔러야 하는데 잠잠하기만 하다. 도대체 광화문에서 세월호 유가족들을 상대로 의기양양하게 할 말 하던 그 패기는 어디로 갔는지.
서북청년단 지지가 의미하는 것은...
역설적이지만 이는 결국 서청재건위의 정체성이 '반공'에 있지 않음을 유추할 수 있는 단서가 된다. 비록 그들은 좌파척결을 운운하고 있지만 그들에게 북한은 더 이상 좌파가 아니다. 아니, 좌파라고 하더라도 관심 밖이다. 그들에게 진정한 좌파는 자신들과 다른 생각을 하는, 그리고 현 정권에 비판적인 이들을 뭉뚱그려 부르는 명칭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궁금하다. 그들은 왜 하필 뭇 여론의 비판을 감수하면서까지 서북청년단을 불러낸 것일까? 설마 그들은 우리 사회에서 서북청년단이 의미하는 바를 몰랐을까?
처음 그들이 서북청년단의 재건을 외치며 광화문에 나타났을 때, 많은 이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몇몇 극우인사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지식인들에게 서북청년단은 하나의 금기이기 때문이다.
비록 대한민국 건국과 좌파 축출이라는 그들의 취지에는 공감한다 하더라도, 서북청년단을 대놓고 지지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제주 4·3항쟁 등에서 죄 없는 양민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했던 그들의 만행은 우리의 불행한 역사 속에서도 가장 비극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들을 지지한다면 그것은 곧 자기 자신이 반인륜적이고 반문명적임을 자인하는 꼴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서북청년단을 기어이 호명해냈다. 진보는 물론이요 보수진영에서마저도 부담스러워 할 것이 빤한데 스스로를 기꺼이 서북청년단이라 불렀다. 정작 북한 고위대표단이 입국했을 땐 명함도 내밀지 못하면서 서북청년단을 운운하는 그들. 도대체 무엇 때문이었을까?
서북청년단의 패륜, 그들에겐 중요하지 않았다다음은 서청재건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추측되는 서적 <서북청년회가 겪은 건국과 6·25>을 출판한 '건국이념보급회'의 김효선 사무총장이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서청재건위에 대해 한 말이다.
"테러만 난무하지 않을 뿐 혼란상이나 좌우대립은 다르지 않다. 정부가 제 역할을 못하고 법치가 실종되었다. 광화문을 몇 달간 점거하고 농성하는 것을 보면서 일반 국민들은 이상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우익진영도 말없이 침묵하고 있다. 소리를 안 낸다고 생각도 없는 것은 아니다. 소수의 좌파 사람들만 그악스럽게 소리를 지르고 있는데, '우리라도 나서서 뭔가 말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낀 사람들이 모인 것으로 본다."결국 현재 서청재건위가 서북청년단을 다시금 불러낸 것은 작금의 상황을 해방정국과 같은 좌우대립의 혼란한 시절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공산주의에 반대했던 서북청년단의 반공 이념 때문이 아니라, 자신들이 지지하는 국가권력에 맞서는 세력들을 국가를 대신해 무자비하게 처단했던 위상 때문에 서북청년단을 불러내었다.
비록 역사는 서북청년단을 패륜적인 단체로 기록하고 있지만 그들에게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아직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우리 역사는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현실이며,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서북청년단의 만행이 아니라 그들이 등장할 수밖에 없는 시대적 상황이기 때문이다. 해방정국과 같은 혼란기에는 백색테러나 적색테러 모두 나름의 정당성을 주장한다. 서북청년단의 행위가 만행으로 규정된 것은 결국 그 혼란기가 지난 이후의 일일 뿐이다.
따라서 그들은 인천공항으로 입국한 북한의 실세들에게 관심이 없다. 그들에게 더욱 중요한 타도의 대상은 정부에 맞서 세월호 특별법을 주장하는 유족들이며, 그들을 지지하는 시민사회이다. 이들이야말로 국가의 법치주의를 흔드는 '종북좌파', 즉 내부의 적이기 때문이다.
서북청년단이 가지고 있는 '함정'
많은 이들은 이번 서청재건위가 과거의 서북청년단처럼 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주장한다. 해방정국과 달리 현재는 국가의 공권력이 독점되어 있고, 그들을 후원하기에는 적지 않은 정치적 부담이 따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계속해서 서북청년단이라는 명칭이 언론에 오르내리는 경우다. 이는 자칫하면 많은 국민들에게 작금의 상황을 해방정국과 같은 혼란기라고 착각할 수 있는 여지를 줄 수 있다. 비록 해방정국까지는 아니더라도 국가가 제대로 된 법치를 펼 수 없을 만큼 사회가 혼란스럽다는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해방정국 당시 서북청년단이 활개를 펼칠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미군정이나 자유당의 지원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들이 존재할 수 있었던 바탕에는 당시 민중들의 무관심 혹은 어쩔 수 없다는 인식이 깔려있었다. 좌우가 극렬하게 대립되어 적 아니면 아군이라는 이분법이 횡행하는 시대에 민중들에게 중요한 것은 어쨌든 생존이기 때문이다. 이념은 과잉되고 법은 먼 곳에 있는 야만의 시대. 과연 서북청년단의 존재는 우연이었을까?
이와 같은 맥락에서 우리가 주의해서 살펴야 할 것은 이번 서청재건위 움직임과 관련한 정부의 자세다. 앞서 언급했듯이 그들의 계속되는 준동이 현재 집권세력에게 결코 불리하지 않다면 정부는 최소한 그들을 지원하지는 않더라도 방치할 가능성이 높다. 그들의 존재 자체는 민주주의 제도 안에서 보장된 다른 목소리 자체를 내부의 적으로 돌리고, 궁극적으로는 국가의 공권력을 강화하는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한국전쟁 이후 서북청년단은 소멸된다. 전쟁을 계기로 정당성을 획득한 국가가 공권력의 독점을 포기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들은 다시금 우리 안의 레드콤플렉스를 자극하며 자신들의 존재를 세탁하고 있지 않은가.
서북청년단재건위원회가 파시즘의 전조라고까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이 계속해서 언급되는 이상 우리 사회는 계속해서 뒤로 후퇴할 것이며, 이는 결국 민주주의를 심하게 훼손할 것이다. 비극적이지만 아직 우리는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진보와 보수를 떠나서 합리적인 이성을 가진 사람이 서북청년단재건위원회를 경계해야 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