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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한복데이 페이스북 페이지
부산 한복데이 페이스북 페이지 ⓒ 페이스북 갈무리

10월 4일 부산 광안리에서는 '한복데이' 행사가 열렸다. 이 행사는 지역 청년들이 자발적으로 기획한 축제로, 365일 중 하루쯤은 국민들이 한복을 입고 즐길 수 있는 장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2012년 전주 한옥마을에서 처음 시작했다. 올해는 전주, 울산, 대구, 대전, 부산까지 5개 도시에서 각 지역 특색에 맞게 진행되었다.

8월 초 처음 한복데이를 알게 된 후로 나는 부산 한복데이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를 들락날락거리며 10월 4일만을 기다렸다. 부산 지역 대학생들이 모여 기업의 후원 없이 순수하게 주민들의 후원으로만 행사를 꾸려나가는 게 뿌듯했고, 생각보다 규모가 커져 지역축제에 버금갈 정도가 됐다는 것도 반가웠다.

한복데이의 취지가 참 좋았다. 첫째, 젊은 층에게 우리의 옷 한복을 입히면서 관심을 갖게 하는 것. 둘째, 취업과 스펙에 신경 쓰는 20대가 아닌 멋진 아이디어와 추진력을 가진 20대의 최고의 능력을 보여주는 것. 이런 20대들의 생각과 SNS의 파급력 덕일까. 9월 21일, 시민들의 후원금은 목표치인 300만 원을 훌쩍 넘어 514만 원까지 모였다고 했다.

온라인 예약 상황 역시 좋았다. 주최측에서 준비한 한복 1000벌 중 오프라인 분인 400벌을 제외하고는 모두 대여가 완료됐다. 온라인 예약은 장거리 참가자와 원하는 사이즈를 먼저 맡아두려는 사람들을 위해 진행됐다. 나 역시 행사 당일 현장에서 한복을 빌리면 시간이 오래 걸릴 거라 생각해 온라인 예약을 선택했다.

행사 하루 전인 10월 3일, 예약자들에게 문자메시지가 도착했다. 신분증이나 신발 및 대여에 관한 주의사항들을 담은 내용이었다. '이렇게 참가자를 신경써주니 내일 행사 진행이 잘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0월 4일 한복데이 행사 당일, 설레는 마음으로 한복에 잘 어울리게 머리를 땋은 뒤 집을 나섰다. 한복 대여가 시작되는 낮 12시쯤 광안리에 도착했는데,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그때는 몰랐다. "곧 한복대여를 시작합니다♡ 오늘 문의는 받지 못하오니 현장에서 관계자들을 찾아주시기 바랍니다"라는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의 마지막 게시물이 얼마나 무책임한 얘기였는지.

 부산 한복데이 기획단이 행사 하루 전에 보낸 문자
부산 한복데이 기획단이 행사 하루 전에 보낸 문자 ⓒ 하선정

'대학생들이 준비한 행사'라 이해하고 참기엔 너무...

주최측이 온라인 예약자와 오프라인 대여를 구분해 행사를 진행할 것이란 내 예상과 달리, 줄은 모두 섞여 있었다. 줄은 한참 돌아 돌아 이어져 있었다. '저쯤이면 줄의 끝이겠지'라고 생각했던 곳은 중간쯤밖에 되지 않았다. 한복을 입은 사람이 주위에 몇 명 보였지만 참가자인지 스태프인지 구분이 되지 않아 물어보지도 못하고 그저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멀리 한복데이 공식 티셔츠를 입은 스태프도 보였지만 다른 준비에 바쁜지 줄 쪽으로는 오지 않았다.

해수욕장의 모래 바람은 점점 거세졌다. 내 뒤로도 많은 사람들이 와서 줄을 서 있었다. 내 뒷 사람은 "여기 서 있는 사람 반은 지금 욕하고 있을 걸"이란 말로 함께 줄을 선 자신의 친구를 달랬고, 나도 '그래도 곧 줄어들겠지'라며 위안했다. 그렇게 2시간쯤 조용히 기다렸다. 그때 줄이 짧아지는 속도가 좀 빨라졌다. 기쁜 마음에 열심히 앞으로 갔는데 도착한 곳은 행사가 열리는 무대 앞이었다. 줄이 짧아진 게 아니라 무대 앞으로 세 줄이나 겹겹이 서도록 정리된 것이었다.

오후 2시가 되어 기획단장과 진행자가 나와 행사 진행을 시작했고, 동영상 카메라로 우리를 촬영하기 시작했다. 행사에 참가하려고 두 달 가까이 기다렸는데, 나는 아직 한복은 구경도 못했고 행사는 시작됐다. 들러리가 된 기분이 들었다. 진행자는 우리를 위로해준답시고 "(먼저 온 참가자들이) 안에서 한복을 고르고 계셔서 오래 걸린다"며 "이제 온라인 예약과 오프라인 대여를 나누어 대여하게 해준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 자리에 서서 기다려라"고 말했다.

온라인 예약자들한테 우선권이 있을 거라 생각한 내가 잘못된 것이었을까. 오프라인 대여는 모두 끝났고 온라인 예약자 대여만 남았다는 말도 이어졌다. "그래도 열심히 준비했으니 너무 미워하지는 말라"는 진행자의 변명도 이어졌다. 위로가 될 턱이 없다. 이미 모래바람이 부는 해변에 줄을 서서 기다린 지 2시간을 훌쩍 넘었다. 허리는 아파오고 눈에는 모래가 들어가 눈물까지 나왔다.

무작정 기다리기를 계속했다. 그동안 무대 위에서는 사물놀이, 마술쇼 등 행사들이 차례대로 진행되고 있었다. 한복 대여와는 다르게 차질 없이 진행되는 공연들을 보니 한복 대여를 포기하고 차라리 공연이나 구경할까 하는 마음도 생겼다.

 부산 한복데이 기획단의 미숙한 운영에 페이스북 댓글로 항의하는 참가자들
부산 한복데이 기획단의 미숙한 운영에 페이스북 댓글로 항의하는 참가자들 ⓒ 하선정

얼마나 지났을까? 또 다른 줄이 생겼다. 일부 사람들은 그 줄을 향해 뛰어갔다. 어떤 줄인지 그 누구도 설명해주지 않았다. 혹시나 페이스북 페이지에 행사 진행에 관련된 글이 올라와 있지 않나 해서 스마트폰으로 들어가 보니 이미 '환불하고 집에 간다', '진행이 엉망진창'이라는 항의글뿐이었다. 그제야 한복을 입은 스태프가 다가와 "온라인 (예약)이세요?"라고 묻는다. 이 줄이 온라인 예약자 줄이란다. 공연팀 사람들까지 도와준다고 와서 오프라인 대여 줄 장부를 작성하고 있었다. 기획단 40명은 다 어디로 갔나 싶었다.

결국 기다린 지 3시간 반 만에 한복 대여하는 곳(그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알고 있었다) 앞에 도착했다. 드디어 한복을 입어볼 수 있나 했더니, 여태껏 기다린 줄은 예약만 확인하는 줄이라고 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예약을 하라고 했는지 화가 났다. 예약 확인 이후에 한복을 대여해주는 곳의 줄을 보니 적어도 2시간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았다. 결국 내 입에서도 "환불해주세요"라는 말이 나왔다.

 부산 한복데이 참가자들의 항의글
부산 한복데이 참가자들의 항의글 ⓒ 페이스북 갈무리

"숨고 싶었다" 한 발 늦은 사과... 이번에 받은 비판 잊지 않기를

낮 12시부터 오후 3시가 넘도록 기다린 것에 대한 보답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래 투성이가 된 것과, 환불받은 내 돈 만 원뿐이었다. 함께 참여하려 했던 친구와 "3시간 동안 서 있던 시급 받았다"고 허탈하게 웃었다. 집으로 돌아와 한복데이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오늘 행사에 대한 기획단 측의 얘기를 찾아보려 했다. 대부분의 댓글들은 기획단 측을 비판하고 있었고, 거기에 대한 답은 전혀 달려 있지 않은 상태였다.

하루가 지나 5일이 돼도 성난 참가자들의 댓글만 계속 올라올 뿐 기획단 측의 해명글은 올라오지 않았다. 나는 기획단 측에 전화로 연락을 했다. 참가자들의 항의에 왜 어떤 답변도 하지 않느냐는 물음에 "행사에 대해 미숙한 부분은 있었다. 하지만 (행사에 쓴) 한복 1000벌을 6일부터 돌려드리기로 해 모든 기획단이 동원된 상태다. 한복 처리작업 때문에 지금 (항의에 답변)할 수가 없다. 한복 처리작업을 완전히 끝내고 참가자들과 얘기를 할 것"이라고 했다.

'한복데이의 주인공은 참가자들이 아니었나'라는 물음에는 "앞으로 한복데이 행사가 이어지려면 (한복을 대여해준) 한복집 사장님들과의 관계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우선적으로 한복 (처리작업)에만 집중할 수밖에 없다"라는 답을 들었다.

 부산 한복데이 기획단이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린 사과문
부산 한복데이 기획단이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린 사과문 ⓒ 페이스북 갈무리

그리고 하루 뒤인 6일,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에 사과문이 올라왔다. "한복 수량 확보에 중점을 두다 보니 막상 축제 당일에 미흡한 점이 너무나도 많았습니다"라며 "강한 햇볕과 모래 바람까지 맞으며 오랜 시간 기다리신 분들께 (줄임) 너무나도 죄송합니다"라고 사과했다. 그리고 사과가 늦어진 것에 대해서도 "한복 정리와 수량 파악을 끝낸 후 (줄임) 문제점을 찾아 정리하는 부분에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라고 해명했다.

이에 참가자들은 '사과가 아닌 가식으로 보인다'며 여전히 비판하는 댓글을 남기기도 했지만, 기획단 측에 호의적인 댓글을 남기는 사람들도 있었다. 물론 나도 20대 대학생들이 이렇게 큰 행사를 기업 후원 없이 이뤄낸 것에 대해서는 칭찬해주고 싶다. 하지만 축제 당일과 그 다음 날까지 아쉬운 점이 많았다는 걸 여러 참가자들의 글이 말해주고 있다. 내년에도 한복데이 행사가 열린다면 반드시 이번에 받은 비판을 토대로 "20대 최고의 능력치"를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 하선정 기자는 오마이뉴스 대학통신원입니다.



#한복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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