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행복
오늘날이나 고대나 중세나 인간이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이며, 인간이 살아가는 목적은 도대체 무엇인지 그리고 인간이 어떻게 잘 살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은 누구나 다 해보는 것 같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해서 '자신의 행복추구'를 위한 노력은 인류의 영원한 숙제로 보인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도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이런 질문을 내놓고, 답변을 한다. 먼저 그는 모든 기술과 탐구, 그리고 모든 행위와 선택이 추구하는 목표는 '좋음', 즉 최고선(最高善)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를 연구하는 학문이 바로 정치학이라고 언급하는데, 왜냐하면 이는 인간을 위한 좋음을 추구하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질문을 현실적으로 이끈다. 그렇다면, 실천적인 '좋음'들 가운데 최고선은 무엇인가? 보통 사람들은 행복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행복의 기준도 사람마다 여러가지일터. 어떤 이는 물질적으로 잘 가는 것을 언급할 것이고, 어떤 이는 다른 사람들에게 보편적으로 인정받는 것을 말할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에 대한 논의를 위해 헤시오도스의 <일과 날>을 인용하며 제1원리를 언급한다.
가장 훌륭한 사람은 스스로 모든 것을 깨닫는 사람이오좋은 조언을 따르는 사람 역시 훌륭한 사람이오그러나 스스로 깨닫지도 못하고 남의 말을 듣고도 그것을 마음에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쓸모없는 사람이오 제1원리를 기본으로 한 행복을 추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는 인간의 좋음은 가장 완전한 미덕에 걸맞은 혼의 활동이라고 언급한다. 그리고 미덕에 대해 여러 가지 사례를 들어서 언급한다. 가장 먼저 그는 도덕적인 미덕을 언급한다. 이것은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기본적인 덕목, 예컨대 후함과 절제와 같은 덕목을 말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중용(中庸)을 선택해야 한다고 말한다.
중용은 기계적 중립이 아니라 양 극단에서 보편적이고 도덕적으로 합당하면서 이성적인 선택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사실 각 분야별로 중용을 깨닫는 것은 쉽지 않기에 아리스토텔레스는 재물, 명예, 용기와 같은 여러 가지 사례를 들어서, 중용을 구체화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나아가서 그는 정의(正義)는 어떤 종류의 중용인지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법적인 정의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현할 수 있는가에 대해 논의한다.
두 번째로 그가 언급하는 것은 '지적인 미덕'이다. 이는 철학적 지혜, 이해력, 실천적인 지혜를 말한다. '도덕적인 미덕'이 인간으로서 기본적으로 가져야 할 품성들을 강조한다면, '지적인 미덕'은 인간의 탁월함을 실질적으로 발휘해야 할 지혜를 의미한다고 본다. 지적인 미덕도 역시 올바른 이성의 전제하에 이루어져야 한다. 두 가지 미덕을 위한 두 가지 덕목을 언급하는데, 하나는 무모한 쾌락에 빠지지 않는 자제력과 사람 간의 올바른 우애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이러한 미덕을 실천하고, 고요한 마음으로 사물이나 현상을 관찰하는 자세를 끊임없이 가지는 것(관조)이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행복의 핵심이다. 즉 물질이 많고 적음이 아닌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 행복을 어떻게 공동체에 적용시킬까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는데, 이는 그의 저서인 <정치학>으로 이어진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점에서 오늘날 대한민국은?나의 학교생활을 반추해 보면, 선생님들로부터 공자·맹자와 같은 동양사상가나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 등이 서양사상가들이 말하는 덕목을 배운 것보다는 오히려 명문대학 진학해서 출세하라는 것 혹은 경쟁사회에서 살아남으라고 배운 것이 대다수였던 것 같다. 일부 선생님들은 서울대와 연고대에 몇 명이나 합격했는가 혹은 우리학교 성적이 다른 학교에 비해서 얼마나 좋은가에 신경을 쓴 것 같았다.
이러한 경쟁적 환경에서 내 주위에 자신을 돌아보는 친구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아니 오히려 학교를 다니면서 경쟁적 환경에서 방황한 친구들이 후에 나보다 더 빨리 자신을 깨달았을 수도 있을 것이다. 경쟁적 환경으로 인해 서로 돕는 방법, 즉 아리스토텔레스가 언급한 우애를 배우지 못하고, 성적과 등수에 매달리고 그것으로 인해 고통 받는 이들이 많았던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성장한 이들이 나중에 군대 및 사회로 가서 더 치열하게 경쟁하는 구조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나도 그 동안 이에 치여 살던 사람 중 하나였다.
미덕에 대한 고려나 실천 없이 물질적인 재물과 명예를 추구하는 방법만 학교에서 배우다보니, 요즘 세월호 참사 같은 병폐들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명예와 권력을 보전하기 위해서 사고에 소극적으로 대응할 뿐만 아니라 미디어를 이용해서 여론을 조작한다. 청해진해운과 언딘은 자신의 부를 독점하고 유지하기 위해, 다른 이를 배제하는 행위를 벌였다. 이들에게서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던 중용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자신의 극단적 쾌락을 추구한 이들이었을 뿐이다.
도덕적 미덕뿐만 아니라 해양경찰이 전문성 없이 우왕좌왕 대응한 것을 보면, 해상 구조와 관련된 지적인 미덕도 결여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미덕과 지도층의 탁월성 결여로 사람들은 한국 정치권 및 사회에 대해 회의감을 느끼게 되고, 심지어는 이 나라를 떠나고 싶다는 말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다.
세월호 이후 일어나는 사건들을 보면 이 나라는 행복에서 점점 멀어져만 가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더 이상 없다는 자조적인 자세를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부터라도 '좋음'을 위해 도덕적이고 지적인 미덕을 강조하는 수양과 교육이 우리 자신들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도 행복은 제1원리 가운데서 자신의 본성에 맞게 각자가 미덕을 쌓는 것이라고 했으니까.
위에서 사례로 언급했던 공교육뿐만 아니라 아이들을 돌보는 부모와 부모 세대의 어르신, 그리고 나에게도 해당되는 것이 <니코마코스 윤리학>의 교훈이다. 깊이 읽어보면 상당히 난해한 책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의 아이들에게 그리고 다음 세대들에게 어떻게 미덕을 함양하는 교육을 해야 할지 질문하고 고민하는 분이시라면, 아리스토텔레스가 펼친 생각을 읽어보고 경험하는 것을 권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