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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처럼 한심한 정치 상황에서 터져 나오는 한숨 섞인 탄성이 있다. 끝난 줄 알았던 비상식적 정치 상황을 맞닥뜨릴 때 우리는 "지금이 무슨 70~80년대야?"라고 소리친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이 다시 연출되는 데 분노하고 절망한다. 그런데 정치뿐만 아니라, 노동 현장에서도 이렇게 시대에 역행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레이테크 코리아(아래 레이테크) 노동자들 이야기다. 사업주는 전근대적인 노동관을 가지고 노동자를 무시하는 폭언뿐만 아니라, 탈의실 CCTV 설치 등의 인권유린, 호봉과 근속수당, 밥값 모두를 최저임금에 포함시켜 지급하는 불법적 행태 등을 일삼아왔다. 이에 레이테크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결성, 1년이 넘는 싸움(파업은 136일) 끝에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려놓는 성과를 냈다.

레이테크 중년 여성들의 정의를 향한 싸움

ⓒ 진보정책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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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테크는 견출지와 라벨 등을 만드는 기업으로 국내 견출지 업계 1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기업이다. 얼마 전 박근혜 정부로부터 3백만불 수출탑을 받기도 했다. 이런 생산을 대부분 40~50대 여성노동자들이 담당해왔다.

회사는 연 매출이 75억~80억 원에 이르는 데도 노동자들에게는 최저임금만 주고 고강도의 일을 시켜 왔다. 그것도 부족해서 지난해 직원들 모두를 계약직으로 전환하겠다고 통보하며 노동자들에게 동의해 줄 것을 강요했다. 즉, 법정 최저임금으로 쥐꼬리 만한 월급을 주던 정규직에서, 쥐꼬리 만한 월급 받는 비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는 것이다.

정규직이라고 특별히 대단한 노동 조건이 약속되는 것은 아니지만, 비정규직으로의 전환은 현재보다 좋은 상황이 아닌 것만은 분명했다. 싸움은 시작되었다.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결성했고, 자신들의 기본권을 지키는 활동을 시작했다(위 표 내용 참고).

이에 회사는 노동조합을 해산시키기 위해 각종 역사적(?) 노동운동 탄압 사례들을 빌려왔다. 회사를 외곽으로 이전하는가 하면 비조합원과 조합원을 급여로 차별하고, 해고, 직장폐쇄 등으로 노동조합을 압박해왔다. 회사 이전으로 일부 조합원들이 퇴사하는 등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회사의 기대와 달리 정의를 향한 중년 여성들의 싸움은 지속되었다. 결국 지난 24일 사업주는 굴복했다.

70~80년대 노동정책과 신자유주의적 고용정책

레이테크 사업주가 21세기에 이런 어이없는 상황을 연출할 수 있었던 자신감(?)은 어디서 왔을까? 박근혜 정부는 지난 2013년 취임 100일을 맞아 2017년까지 고용률 70% 달성을 위한 로드맵을 발표했다. 그 핵심 방안으로 나온 게 시간제 일자리다. 이 정책의 주요 타깃은 여성이다. 박근혜 정부는 여성고용률을 2017년까지 61.9%로 끌어올리며, 이를 위해 모두 165만개의 여성일자리를 만든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것이 사업주가 레이테크 노동자들에게 '6시간 알바' 계약서에 사인을 강요할 수 있었던 배경이 되지는 않았을까.

레이테크 여성노동자들은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받고 있다. 아니 최저임금 이하의 사업장이다. 호봉과 근속수당, 밥값 모두를 최저임금에 포함시켜 지급했으므로 최저임금 미만 사업장이라고 할 수 있다. 최저임금 문제는 비단 비정규직에게만 해당되는 문제가 아니다. 전체 최저임금노동자 중 여성노동자의 비중이 높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여성일자리 늘리기 홍보는 열심히 하면서도 정작 최저임금에 묶여 있는 여성 노동자들의 생활 보장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고 있다. 여성일자리를 강조하는 박근혜 정부는 여성노동자들의 삶의 질에 대해서는 통 관심이 없는 듯하다. 이는 여성노동력을 가사노동력 그리고 알바 정도로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박근혜 정부의 최첨단 신자유주의적 노동유연화, 고용정책은 여성들이 많이 고용되어 있는 소규모 사업장에서 전근대적인 노무관리정책과 병행하여 일어나고 있다. 특히나 저임금 사업장에서 일하는 40~50대 여성들을 무시하는 노무관행은 아직도 비일비재하다.

레이테크의 사업주는 수시로 사장실에 조합원들을 불러서 자기 엄마뻘인 조합원들한테 온갖 모욕을 줬다. 이런 모욕을 견디다 못해 아예 회사를 그만둔 조합원들도 꽤 된다. 결국 레이테크 사태는 1970년대 박정희 시대의 노동관이 신자유주의를 만나 만든 단적인 사례다.

자비로 통근버스 대절해 노동현장 지킨 노동자들

레이테크 노동자들의 투쟁은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할까? 그것은 바로 연대가 가져다 주는 희망이란 이름이다. 레이테크 노동자들에게 회사가 마련해준 통근용 봉고차는 형편없었다. 그래서 최저임금을 받는 조합원들은 한 사람 당 하루 1만 원씩 걷어 버스를 대절해 출퇴근을 했다. 그렇게 자기 돈 들여 먼 거리 사업장에까지 가 투쟁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나 한 사람만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다. …그런데 우리가 이걸 피해 버리면, 우리 자식들도 곧 취업해야 되는데 우리 아이가 또 힘들어진다. 내 아이를 위해서도 끝까지 싸워서 사장 버르장머리를 고쳐 놓자. 이런 마음이다." - <노동연대> 2014년 9월 14일자 인터뷰 인용

이 인터뷰는 여성노동자들의 싸움이 현재의 노동권을 지키는 것뿐만 아니라, 미래 노동자의 노동권을 지키기 위한 싸움임을 보여준다. 레이테크 노동자의 싸움은 현재의 노동권을 지키기 위한 연대일 뿐만 아니라 미래와 연대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다음으로 레이테크 노동자의 투쟁을 지지해준 '여성인권지킴이'의 연대도 빠트릴 수 없다. 사업주가 레이테크 여자노동자 탈의실 및 휴게실 등에 CCTV를 설치하는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인권지킴이는 노동계, 사회단체, 국회의원, 정당의 여성위원회로 구성되었다.

이들은 각종 정치계에 압력을 행사하는 연대를 조직했다. 여성노동자들에 대한 인권침해를 여성가족부가 책임지고 해결하도록 촉구했고, 레이테크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서 사업주를 국감에서 증인으로 채택할 것을 조직하기도 했다.

레이테크는 작은 규모의 사업장에서 일어난 적은 수의 중년 여성이 만들어낸 싸움이다. 어쩌면 커다란 사건에 파묻혀 간과할 수도 있었던 사건이었다. 하지만 우리에게 레이테크가 던지는 메시지는 바로 가부장적 질서와 합쳐진 신자유주의적 노동정책의 현실을 직시하게 한 것과 작지만 광범위한 연대의 중요성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진보정책연구원입니다.



#레이테크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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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정책연구원은 통합진보당의 싱크탱크입니다. 민주노동당 원내 진출 이래 10년간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정책을 연구하며 진보의 발전을 위해 매진해왔습니다. 오마이뉴스를 통해 매주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는 일을 진보적 시각으로 분석하고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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