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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죽음이다. 인천에서 일가족 3명이 또 생을 버렸다. 12살 아이의 엄마는 살아서 발견되더라도 응급처치를 하지 말고 그냥 떠나게 해달라고 썼다. 죽음의 순간을 앞둔 아이는 엄마와, 가족과 영원히 함께 할 것이기에 슬프지 않다고 적었다. 모녀의 죽음을 발견한 아빠는 곧 아내와 딸을 따라 떠났다.
'송파 세모녀 자살사건'의 충격이 여전히 남아 있는 지금이다. 정치권은 긴급복지지원법이나 기초생활보장법, 사회보장수급권자 발굴·지원법 제·개정안 등을 마련해 비극적인 사건의 반복을 막겠다고 했지만 아직도 말다툼만 하고 있고, 자살은 반복됐다.
자살을 택한 인천 세 가족은 사실 '극빈층'은 아니었다. 이 사건에서 확인할 수 있듯 죽음 이외의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있는 이들은 비단 극빈층만이 아니다. 국민 대다수가 극빈층에 속하지 않더라도 어느 한순간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는 위태위태한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형국이다. 이 순간에도 목숨보다 사랑하는 자식의 생을 빼앗을 정도로 절망의 늪에 빠져 있는 이들이 얼마나 많을지, 상상해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 먹먹한 일이다.
자살의 구조적 원인은 사회적 안전망의 부재자살과 같은 극단적 선택은 다양한 개인적 동기 때문이 아니냐고 물을 수도 있다. 그러나 OECD 1위를 자랑하는, 세계 최고 수준의 자살률은 철저히 사회 구조 문제로 인한 것이다. 놀랄 만한 통계가 있다. 통계청의 '사망원인통계'(2012)와 WHO의 'Mortality Database'(
www.who.int. 2014.07)에 따르면 한국의 자살률은 극적으로 높아지는 추세다. 주요 국가들의 자살률이 큰 변화 없이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것에 비해 한국의 오름세는 확연하다.
이런 변화는 1997년 말 외환위기 이후 사회적 양극화가 점차 심화되고 있는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2012년 통계청에서 자살 충동을 느낀 13세 이상의 인구에게 이유를 물은 조사결과도 이런 현실을 뒷받침한다. 조사 응답자의 39.5%가 자살 충동의 이유로 '경제적 어려움'을 꼽았다. 다른 자살 충동 동기에 비해 월등히 높은 수치다.
이런 결과는 단순히 가계소득의 절대치가 낮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 아니다. 대다수 국민에게 제공될 사회적 안전망 자체가 부재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동시에 정치가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할 의지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도 말해 주고 있다.
내년 예산안... 복지 전면 후퇴 조짐당장 내년 예산안을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논란들은 사회적 안전망의 확대가 아니라 축소로 나아갈 듯 보인다. 이명박 정부에서 촛불시위와 야권의 약진에 밀려 도입한 여러 복지 정책들이 예산안 편성을 앞두고 전면 후퇴를 예고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무상보육 정책의 후퇴다. 알려졌다시피 박근혜 정부는 당장 내년부터 3세에서 5세 아동의 보육료를 지원하는 누리과정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누리과정 사업이 지방사무이기 때문에 국고지원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각 시도교육청은 중앙정부의 예산 떠넘기기라며 누리과정 예산편성을 거부할 것임을 밝혔다. 경기도교육청은 5일 누리과정 일부 예산을 삭감한 상태의 예산안을 발표했다.
당장 내년부터 127만 명이나 되는 아이들의 부모들은 월 22만 원의 추가부담을 져야할 위기에 처했다. 직접적인 피해는 가뜩이나 생활고에 처해 있는 저소득층을 향한다. 담뱃세와 주민세, 교통비 인상안이 줄줄이 예고되어 있는 상황에서 위태로운 생존의 줄타기를 이어나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문제를 단지 예산 부족 때문만으로 이해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다. 지난 6월 13일 교육부가 기획재정부에 제출한 교육예산안에는 누리과정 어린이집 지원예산으로 2조1545억원이 이미 편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교육부 스스로 "내년 지방재정상 3~5세 누리과정 어린이집 보육료, 초등돌봄교실 운영비에 국고 지원이 없을 경우 시·도교육청이 관련 예산을 편성하지 못하는 등의 사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국고 지원이 필요하다"고까지 명시되어 있었다. 누리과정 예산을 교육청에 떠넘긴다면, 지금처럼 시도교육청이 관련 예산을 편성할 수 없다고 강변할 수밖에 없는 사태를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다는 의미다.
그런데도 예산안 전액삭감을 밀어 붙인 것은 '정치적 의도' 때문이라는 의심을 갖게 한다. 시도 교육청이 '국민과 어린이를 볼모로 정부를 위협'하고 있다고 비판한 정부가, 사실은 '국민과 어린이를 볼모'로 대거 당선된 진보 교육감을 '손봐주기' 하고 있다는 반응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다.
게다가 누리과정은 박근혜 대통령의 핵심공약이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 후보는 '국민행복 10대 공약' 중 두 번째 약속으로 '확실한 국가책임 보육'을 제시하면서 '만5세까지 국가 무상보육 및 무상유아교육'을 내세웠다.
공약집에는 누리과정 지원비용을 증액해 0~5세 보육과 교육의 '국가완전책임'을 강조하고 있다. 누리과정 예산만이 아니라 초등돌봄교육 예산 6천여 억 원까지 전액 삭감한 정부의 태도 변화가 정치적인 의미로 읽히는 이유다.
누리과정에 이어 무상급식도 제동...예산보다 의지의 부재
불똥은 엉뚱한 곳으로도 튀고 있다. 예산부족을 이유로 황우여 교육부 장관이 '무상급식 재고'를 언급한데 이어 지난 3일 홍준표 경남지사도 무상급식에 대한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나섰다. 표면적인 이유는 경남교육청과의 갈등이지만 무상급식에 대한 거부감을 갖는 보수층의 결집을 노린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물론 이런 일들이 순전히 정치 문제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이면에는 고질적인 세수부족이나 지방재정난의 문제가 분명히 있다. 그러나 정말 없어 보이는 것은 예산이라기보다 의지다. 과연 이 정부가, 이 정치세력이 자살률 세계 1위의 나라에서 조난신호를 보내고 있는 이들을 구조할 의지를 가지고 있는가?
의심스럽다. 당장 예산안을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논쟁이 그렇다. 멀쩡한 강을 뒤집어 놓은데 천문학적 금액을 쏟고, 그로인해 빚어진 처참한 결과에 대해 사과하거나 책임지는 여당 정치인은 한 명도 없다. 이명박 정부에서 추진된 '세금을 깎아주면 기업의 투자가 늘고, 투자가 늘면 고용이 창출되어서 서민경제가 좋아 진다'는 논리가 얼마나 허황된 것이었는지가 빤히 드러났는데도, 서민에게 가해지는 각종 직·간접세 부담과 견줄 정도의 부자증세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4500억 원에 이르는 대주주들의 배당소득 감면조치와 할아버지의 손자 교육비 면세조치, 기업상속 공제한도를 1천억 원까지 확대하는 조치 등 고소득층에게 추가적인 감세 혜택을 돌리는 개정안이 추진되고 있다. 세수의 부족으로 보육료는 물론 무상급식에도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정부가, 서민들에게 나라를 위해 담뱃세와 주민세, 자동차세 인상을 감내해 달라는 정부가 보내는 메시지로는 결코 어울리지 않는다.
도대체, 국가는 어디에 있는가? 지난 2일, 한국 상위계층의 소득점유율 관련 통계가 프랑스 파리경제대학의 세계 상위소득 데이터베이스(The World Top Incomes Database)에 실리게 되었다는 기사가 났다. 이 통계에 따르면 2012년 말 현재 우리나라 소득 상위 1%는 전체 소득의 12.23%를 차지하고 있으며, 상위 10%는 전체 소득의 44.87%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이는 OECD국가의 2~3위에 해당하는 불평등 수치다.
최근 보건복지부가 18살 미만 자녀를 둔 4000여 가구를 조사한 결과, 역시 10대들이 느끼는 삶의 만족도는 OECD 국가들 가운데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됐다. 눈여겨 봐야할 대목은 성장에 필요한 물질적, 사회적 기본 조건도 OECD국가 중 최하위라는 것이다. 10대들의 8%는 먹을 것을 살 돈이 없는 '식품 빈곤' 상태를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인천 일가족 자살의 원인이, 송파 세 모녀 자살의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다. 사회적 재분배의 목적을 갖고 있는 세금이니, 그 우선순위를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는 자명하다. 예산규모가 아니라 의지의 문제다.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것이 제일의 책무라는 국가가 그럴 의지가 없다면, 부모가 자식과 함께 생존보다 자살을 선택하는 이 잔인한 세상에서 우리는 누구의 구조를 기다려야 하는가?
그냥 그랬듯이 '가만히 있어야'하는가? 도대체, '제대로 된 국가'는 어디에 있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