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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청소년 특별면 '너아니'에 실렸습니다. '너아니'는 청소년의 글을 가감없이 싣습니다. [편집자말]
<플래시 보이스> <플래시 보이스>(마이클 루이스 지음 / 이제용 옮김 / 곽수종 감수 / 비즈니스북스 / 2014.10 / 1만 6000원)
<플래시 보이스><플래시 보이스>(마이클 루이스 지음 / 이제용 옮김 / 곽수종 감수 / 비즈니스북스 / 2014.10 / 1만 6000원) ⓒ 비즈니스북스
처음 이 책을 집어든 것은 선전 문구에 적힌 '아마존 종합 1위' '파이낸셜타임스 올해의 경영서 최종 후보' 와 같은 화려한 수식들 때문이었다. 책의 두께를 보아도, 자극적인 소개말을 고려해 보아도 사실 의미있는 책일 것이라는 기대는 그다지 없었다. 그저 이미 넘치고 넘치는, 월가의 탐욕에 대한 보고서들 중 하나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기에 입시 과정에서 빽빽해졌던 머리를 잠깐 식히기를 원해서 집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전혀 아니었다. 책의 내용은 그 표지에서부터 예측 가능하듯 분명 월가의 탐욕에 대한 탐사 보고서였다. 하지만 그 내용의 스케일은 나의 상상을 저만치 초월하는 것이었다. '초단타매매(High Frequency Trading)'. 아무도 모르는 사이 심지어 월가의 큰 손으로 파악되는 데이비드 아인혼 같은 인물들이나 골드만 삭스, JP 모건과 같은 대형은행들 조차 그 실체를 정확히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수년 간 자행된 일명 '첨단'의 금융 기법이다.

뛰어난 컴퓨터 기술력(책을 통해 단순히 그것만으로 가능한 것이 절대 아님을 명확히 알 수 있다)을 통해 금융시장에 개입, 연간 수십 억 달러(자료의 비공개로 아무도 그 정확한 액수를 추정할 수는 없다고 한다)를 아무렇지 않게 챙겨온 '초단타매매자'들. 이 책은 그에 대한 보고서이자 이에 맞선 '다윗' 들의 이야기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평범한 일상 속에서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 소중한 투자금과 연금을 고스란히 그들에게 상납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바쳐지는 잔혹한 서사였다.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흥분되는….

눈 한 번 깜빡 거리는 순간, 수백억 원이 출렁

눈 한 번 깜빡이는데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할까? 의미도 없는 질문이라 여겨질 것이고, 실제로 그렇다. 채 1초가 안 되는 순간 동안 무슨 의미 있는 생각을 한단 말인가? 하지만 그 주체가 사람이 아니라 컴퓨터라면? 우리의 뇌가 아니라 기계의 알고리즘이라면? 무엇인가 크게 달라질 것 같은가? 사실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에게 둘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설령 차이가 있다 할지라도 결국 채 1초가 안 되는 차이인데, 그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 수 있을까?

그런데, 만약 누군가 당신에게 "당신 때문에 내가 100 나노세컨드(1나노세컨드는 10억 분의 1초이다) 손해 보는 거 알아요? 일 좀 제대로 해요"라고 말한다면 무슨 생각이 들까? 말도 안 되는 헛소리라고 치부될 것이다. 하지만 분명 존재한다, 0.001초를 절약하는 데, 즉 눈을 깜빡이는 것의 50분의 1정도의 시간을 아끼는 데에 우리 돈으로 기꺼이 매달 수십 억원씩 지불할 용의가 있는 자들이 말이다. 그리고 단 몇 초의 축약을 위해 3천억 원이 넘는 돈을 들여 산을 뚫고 광케이블을 놓는 이들이 있다. 그렇다, 그들이 바로 초단타매매자들이다.

도대체 왜 마이크로세컨드가 그렇게 중요한가? 2013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던 로버트 쉴러는 금융업계에 종사하는 이들은 여전히 밀리세컨드로 생각하지 않는 고객들을 생각하고 있으니, 속도는 생각보다 중요한 것이 아닐 것이라 말했다. 안타깝지만 이 책을 읽고 나는 완전히 틀렸음을 알게 됐다. (a) 초단타매매자들은 밀리세컨드는 고사하고 마이크로, 나노세컨드에 기초해 그들의 사업 전략을 운용하고 있으며 (b) 그러면서도 그들은 고객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을 상대하는 브로커'를 '상대'하거나 '훔쳐 보면서' 가뿐히 수조 원씩을 벌어들여왔기 때문이다.

그렇다. 수십억 달러다. 초단타매매자들이 속도에 목을 매는 이유는 '선행매매'를 위한 알고리즘의 성공을 위해서이다. 그 전반의 과정은 너무나 복잡하고 다층적이라 요약 설명이 쉽지 않다. 하지만 결국 쉽게 말해 평범하게 고객의 요구에 따라 주식을 매수하려는 브로커의 움직임을 교묘히 포착, 추적하여 그들이 사려는 주식 물량을 순식간에 먼저 당긴 뒤, 거기에 알파를 붙여서 매도하는 것이다. 그 모든 것이 1초도 안 되는 사이에 일어나며, 그것 어떤 경쟁자들보다 빠르고 많이 성사시키기 위해 초단타매매자들은 단 1cm의 거리, 0.001초의 시간에도 목을 매며 두려움에 떠는 것이다.

 영화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의 한 장면
영화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의 한 장면 ⓒ 우리네트웍스

'느리게 살기'... 탐욕을 저지하라?

이러한 게임의 규칙을 처음으로 파악하고 공개적으로 반기를 든 이들이 브랜드를 필두한 이단아들이다. 그들은 금융권 출신의 트레이더, 기술자, 거래소 설립자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모두가 초단타매매와 고객들에 대한 기만이 지배하는 금융 시장의 현실을 바로잡고자 의기투합하게 되었다. 그들의 첫번째 시도는 규칙 자체에서 탈피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선행매매가 이루어지는 틈을 봉쇄하기 위해 일부러 주문이 거래소에 당도하는 시간을 느리게 만들어 모든 주문이 동시에 체결되는 프로그램을 개발함으로써 초단타매매자들의 이익창출 방안을 원천봉쇄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해 내었다. 성공적이었고, 실제 초단타매매 그룹 역시 그에 대항해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직접 시인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이미 불공정관행과 초단타매매자들의 압도적 시장 지배력, 그리고 그들과의 협업이 일상화된 대형 은행들 사이의 카르텔을 단순히 몇 명의 플레이어들과 기술 하나가 바꿀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다음 단계로 옮겨갔다.

도전은 그들이 직접 거래서를 설립하자는 것이었다. 투자자를 기만하지 않고 초단타매매자들과의 타협을 거부하는 거래소를 만들어, 이것을 키워 안정화 시킨다면 분명 시장의 규칙을 바로 잡는 데에 큰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임이 분명했다. 그들은 즉각 투자자들을 만나러 다니고 모든 사비를 털어내어 새로운 거래소 IEX를 창립한다.

그리고 바로 그 이야기가 지금 진행되고 있는 이들의 도전이다. 수많은 부침과 중상모략, 그리고 대형 은행들로 부터의 협박(한 직원은 BOA로부터 가족을 마피아가 노리겠다는 말까지 들었다. 그것이 그들의 초기 일상이었다)까지 모든 것이 걸림돌이었고, 지금 역시 그렇다. 하지만 점진적으로 투자자들로 부터 지지를 얻어내고 있고, '정직하게' 움직임으로서 장기적으로 유리해질 수 있다고 판단한 일부 은행들(가령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 IEX를 지원한 골드만 삭스나 정직을 모토로 삼아온 RBC 등)이 일부 물량을 IEX를 통해 거래하기 시작하며 가능성 역시 동시에 보여지고 있다고 한다.

 영화 <마진 콜 : 24시간, 조작된 진실> 중에서
영화 <마진 콜 : 24시간, 조작된 진실> 중에서 ⓒ 팝 파트너스

예측할 수 없는 미래, 금융은 무표정하다

언제나 그러했고, 지금의 초단타매매자들을 둘러싼 논쟁이 그러하듯 시장은 전혀 예측할 수 없다. 어느 순간에 어떤 일이 벌어져, 혹은 어떤 사람이 나타나 갑자기 시장의 규칙을 뒤엎어 버릴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것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흔히 그러한 행위를 지금의 시대는 '혁신' 이라는 이름으로 찬양한다.

문제는 오늘날의 금융 분야에서의 '혁신' 이 더 이상 유의미한 '혁신' 이 아니게 되어버렸다는 데에 있다. 나는 <플래시 보이스>를 덮으며 허탈한 웃음을, 혹은 실소를 참을 수 없었다. 에필로그에 그려진 이야기에서 이미 초단타매매자들은 이제 송전탑을 대여해 초고주파매매를 하는 경지까지 추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 그들을 어떻게 규제할 것인가? 아니, 규제를 할 수 있는 제대로 된 논리는, 방법은 있을까? 설령 그게 가능하다 할지라도 또 무슨 방향으로 그들이 튈지 누구 알겠는가?

이 책 전반에서 느껴진 보편적인 월가의 분위기는 '무표정' 이었다. 모든 진실이 알려졌을 때에도, 그로부터 전해져온 것은 분노도, 그렇다고 무력감도 아니었다. 그저 무표정이었다. '그래서 어쩌라고? 그게 아니면 무슨 방법으로 돈을 벌 테지? 실적이 흔들리면, 당신이 내 인생, 커리어 책임질 수 있나?' 누구도 그들을 웃게, 울게 만들 수 없다. 표정이 있는 자들은 일찌감치 그 회색빛에 못 이겨 나가떨어졌고, 퇴출되었으며, 혹은 그들에게 동화되어 가고 있을 뿐이다.

미국의 금융 시스템은 전 세계로 수출된다. 금융위기가 한 차례 미국을 쓸고 간 이후에도, 분명 그 정도가 주춤했던 경향은 있지만 미국이 금융 산업에서 벌어들이는 엄청난 부와 힘, 그리고 그 표면에서의 화려함이 전 세계를 매혹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미국 금융이 미래 세계 금융의 모습이라 생각하면 그저 두려워질 뿐이다. 더 이상 주식시장은 기업들의 가치평가의 장이 아닌 투기꾼들의 카지노가 되어버렸다. 책에서 '영웅들' 로 칭해진 이들은 과연 그들의 공정한 규칙을 확립해 내는 데 성공할 수 있을까? 구글에서 IEX를 검색하여 입장해 보았다. 그들이 성공하기를, 그러나 변심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플래시 보이스 - 0.001초의 약탈자들, 그들은 어떻게 월스트리트를 조종하는가

마이클 루이스 지음, 이제용 옮김, 곽수종 감수, 비즈니스북스(2014)


#플래시 보이스#마이클 루이스#서평#IEX#월스트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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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시민기자. 서울대 로스쿨 졸업. 다양한 이야기들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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