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보건복지부는 저소득층에게 일자리를 연결해주는 '희망리본사업'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시범적으로 시작한 희망리본사업은 좋은 결과를 나타냈고, 4년 뒤인 2013년부터 전국적으로 확대됐다.
이 사업은 그간의 '지원 중심' 복지에서 벗어나, 취약계층의 취업을 추진해 자활을 돕자는 취지였다. 지자체에 위탁된 취약계층이 대상이다. 노숙을 했던 기초생활수급자, 번번이 취업에서 낙오되는 장애인, 육아와 생계의 이중고를 겪는 미혼모 등이 대상자인데 이들은 전국적으로 1만 2000여 명에 이른다.
"기본적인 의사소통도 힘들고, 갑자기 집의 전기와 난방이 끊기는 일이 다반사인 분들이죠. 직접 이력서를 쓰고 면접을 보는 것마저 어렵거든요." 희망리본사업 내일로본부 조인희 본부장의 설명이다. 희망리본사업은 이들을 가정방문하고, 차량으로 직접 면접에 동행해 주는 등 적극적으로 그들의 취업을 지원한다. 세상의 벽에 부딪혀 의욕을 잃은 이들에게, 이런 '밀착형 취업관리 서비스'는 희망의 끈이 된다.
그러나 정부는 지난 6월 말, 국회 예산 심의에서 2015년부터 복지부 희망리본사업의 예산을 전액 삭감하고, 고용노동부 산하 '취업성공패키지'와 통합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취업'이라는 목표를 가진 '중복사업'이라는 게 이유다. 공청회와 간담회에 이어 희망리본사업 참여자 1만여 명의 서명까지 동원되었지만 결정은 뒤집히지 않았다. 많은 이들의 성원을 받았음에도 소멸되어가는 이 복지 사업의 수급자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열악한 상황에 놓인 이들을 구한 희망리본사업
희망리본사업 수급자 중엔 그로 인해 목숨을 건졌다고 해도 좋을 만큼 열악한 환경에 놓여 있던 사람들이 있었다. 지난 16일 서울 여의도 한 빌딩의 지하 3층, 구석의 조그만 문을 두드리자 수줍은 미소를 띤 미화노동자 한 분이 나타났다. 희망리본 사업의 수급자인 라선희(53)씨였다. 8년 전 구미의 한 공장에서 일하던 그녀는 프레스 기계에 오른손 검지손가락이 절단되는 사고를 겪었다.
"퇴원할 즈음에야 간신히 치료비만 산재 처리를 받았죠. 하지만 그 후로는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너무 고통스럽게 들려서 공장을 계속 다닐 수가 없었어요. 앞길이 막막했지만 그냥 나왔어요."그렇게 손가락 하나를 잃고 쫓기듯 나온 후, 그녀의 '취업 난민' 생활이 시작됐다. 겨울에는 붕어빵을 팔고 여름에는 냉커피를 팔았지만 수입은 생계를 제대로 꾸려나가지 못할 정도였다. 우울증에 걸리고 인생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다. 취업 알선을 부탁하기 위해 고용노동부에 찾아갔지만, 서류 작성 후 10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상담을 해준 고용부 측에서는 그 후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그러다가 1년 반 전에 서울에 올라왔어요. 영등포에 살고 있거든요. 쪽방 15개 당 세면대가 하나, 화장실은 두 개예요. 엘리베이터도 없고 겨울엔 난방도 안돼요."서울에서도 각종 일자리에서 거절당한 라씨는, 희망리본사업 서울본부에 참여한 후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대인기피증을 보이는 라씨를 끝까지 찾아가고 연락하며 포기하지 않은 희망리본본부의 일자리 매니저 김정숙씨 덕분이었다. 결국 조금씩 마음을 연 라씨는 면접 5번 만에 현재의 미화원 업무에 안착할 수 있었다.
"희망리본 사업이 없어지면 절대 안 돼요. 누가 우리같은 사람들 먹고 살 수 있게 챙겨주겠어요. 그냥 죽는 거예요. 안 돼요." 삶의 벼랑 끝에 서 있던 라씨를 살려낸 건, '고용' 성과가 아니라 '복지'의 정신이었던 셈이다.
"우리 선생님은 부모보다 저를 잘 챙겨줘요"
그런가 하면, 가리봉동 쪽방촌에서 거주하는 강준희(가명·46)씨는 희망을 리본으로 매듭짓기 위한 과정에 있다. 12월 중순 찾은, 모로 누워야 두 다리를 뻗을 수 있는 쪽방에서는, 말을 할 때마다 흰 김이 나왔다. 그는 말을 할 때마다 목검을 꼭 쥐었다. 벌써 이 목검으로 도둑을 여덟 명이나 잡았다. 위험한 쪽방촌을 나와 딸 정아(7)와 함께 사는 것이 강씨의 목표다. 정부에서 제공하는 전세매입주택에 들어가려면 350만 원이 필요하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350만 원을 모으는 일은 소박한 목표일 터다. 그러나 고교 중퇴에 별다른 기술도 없는 강씨에게는 취직조차 높은 벽이다. 강씨에겐 전과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정아를 낳기 전 그는 제왕절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불법오락실 환전소에서 일을 했다. 그러다 적발되어, 벌금 1000만 원을 선고받고 징역을 살았다. 크리스마스 이브 특사로 다시 세상에 나왔을 때 정아는 100일 된 핏덩이었다. 그는 정아를 봐서라도 더 이상 불법적인 일을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제발 얼굴만 보고 판단하지 말라고 기사에 좀 써주세요. 고깃집 장치 일을 하려고 했었는데, 저보고 광대뼈 튀어나온 게 저 XX 완전 범죄자래요." 사회적으로 낙인이 찍힌 강씨는 변변한 일자리를 얻을 수 없었다. 한 번은 불심검문을 당한 적도 있다. 경찰은 길을 가는 강씨를 붙잡고 막무가내로 그를 의심했다. 절망은 곧 사회에 대한 원망으로 이어졌다.
웃음을 잃었던 강씨의 표정이 밝아진 것은 올해 3월, 희망리본사업에 참여하면서부터다. 강씨를 담당한 일자리매니저 이내진씨는 상담이 없는 날에도 강씨에게 자주 문자를 보냈다. 식사와 음주 여부를 묻는 이내진 매니저의 잔소리는 애정이 담겨 있었다.
"우리 선생님은 부모보다 형제보다 저를 잘 챙겨줘요"라고 강씨는 몇 번이나 힘주어 말했다. 선생님에게 꼭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취직하고 싶다는 강씨는 서울본부에서도 인정하는 성실한 수급자다.
'일자리'보다 '삶의 터전' 마련이 목적인 사업
그러나 희망리본사업의 통폐합 선언과 함께 이들의 희망도 날아갈 위기에 놓였다. 통폐합 논의가 진행되던 지난 10월 10일 국회 보건복지위 소속 국회의원들은 영등포 쪽방으로 현장 시찰을 나와 '이 사업은 고용이 아닌 복지에 가깝다. 복지부에 남아야 한다'고 공감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김성주, 송호창 의원, 새누리당의 이명수 의원 등 여야를 불문하고 토론회에서 필요성을 주장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기획재정부는 불통이었다. '청와대에서 유사사업 1순위로 주장하기 때문에 살릴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12월 2일에는 자동으로 예산이 부의되기에, 타협의 여지는 없었다. 구체적인 검토나 뚜렷한 논리적 이유도 없이 귀중한 복지 사업의 소멸이 결정된 셈이다.
희망리본사업의 복지사들은 정부의 판단과 달리 이는 취업성공패키지와는 다르다고 설명한다. 취업성공패키지는 '준비된 미취업자'를 대상으로 하는 성과 중심 사업이다. 정해진 개월 수 내에 주어진 면접 기회를 잡지 못하면 자동으로 탈락되는 시스템이다. 반면 희망리본사업은 대상자들의 근로 의욕과 일할 여건 조성이라는 기초적 토대를 세워주는 복지 사업이다. 대상자에게 '일자리'를 준다는 것보다는 '삶의 터전'을 마련해준다는 목적이 강하다.
실제로 일자리매니저 김정숙씨는 취업성공패키지 사업단에서 일하다 희망리본사업으로 넘어오기도 했다.
"처음에 여기로 넘어왔을 때는 깜짝 놀랐어요. 이렇게 열악한 사람들을 어떻게 취업시키나. 너무 힘든 분들이라 좋은 서비스가 있어도 찾아서 등록할 여력도 안 되시거든요. 하지만 미혼모에게 육아서비스를 연계해주고, 언어장애가 있는 분에게 치료서비스를 도와주면 그들은 금방 혼자서도 일어설 수 있어요." 2014년의 국회는 '무상 복지'에 대한 논쟁으로 들끓었다. '무상' '공짜'의 홍보성 용어에 목매는 여야 정쟁 속에 가난한 이들의 상처는 재생산되었다. 그리고 정작 힘든 이들의 손을 잡아주었던, '무상'의 프레임에서 벗어난 성과율 높은 자활 사업은 폐지의 위기에 놓여있다.
예산삭감 결정 후 10월 27일 열린 희망리본사업 공청회에서 보건복지위가 발언한 "정부의 사업은 예산이 아닌 국민을 위한 것이다"라는 일침이 아프다. 포퓰리즘성 복지 논쟁이 겨울바람보다 매섭게 취약계층을 후려친 2014년, 그들의 마지막 희망도 사그라지는 2015년은 올해보다 더 추울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