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믿어다오, 난 미치지 않았다."
엄마가 아들에게 이런 말을 한다면 그건 과연 어떤 상황일까. 세상 사람들 대부분이 자신을 가리켜서 미쳤다고 말한다.
하지만 자신은 제 정신이라고 아무리 호소해도 믿지 않는다. 그렇기에 자신을 무조건적으로 믿어줄 자식에게, 아들에게 하소연하는 것이다. 자신은 미치지 않았으니까 내가 하는 말을 들어달라고.
반면에 이런 말을 들으면 아들의 심정 또한 복잡할 것이다. 평생동안 믿고 살아온 엄마가 이런 말을 할 정도면, 엄마의 신변에 뭔가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 아들로서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혼란스러울 수도 있을 것이다.
어느날 정신병원에 들어간 엄마톰 롭 스미스의 2014년 작품 <얼음 속의 소녀들>에서 주인공은 이런 상황에 직면한다. 주인공은 부모와 떨어져 런던에서 살고있는 29살의 다니엘. 그의 부모는 은퇴 후의 삶을 즐기기 위해서 스웨덴 교외에 있는 한적한 농장을 구입해 그곳에서 생활하고 있다.
다니엘은 어느날 아버지에게 전화를 받는다. 휴대폰 속의 아버지는 울면서 말한다. 너희 엄마가 망상에 빠져서 지금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것이다. 얼마 전에 엄마는 이성을 잃고 자기 핸드폰도 박살냈다고 한다. 다니엘은 당연히 충격을 받는다. 엄마가 완전히 낯선 사람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다니엘은 부모를 만나기 위해서 스웨덴으로 날아갈 준비를 한다. 이때 엄마가 다니엘에게 전화한다. 지금 런던으로 가고 있으니 몇 시간 후에 만나자는 것이다. 그러면서 강조한다. 아버지가 하는 말은 모두 거짓말이니까 믿지 말라고. 엄마는 미치지 않았다고. 지금 엄마에게 필요한 것은 정신병원 의사가 아니라 경찰이라고.
다니엘은 살아오면서 부모님이 싸우거나 언성을 높이는 모습을 본적이 한번도 없다. 그런데 지금은 부모님이 완전히 분열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다니엘은 충격과 혼란속에서 엄마를 만나 긴 시간동안 엄마의 이야기를 듣는다.
엄마의 말에 의하면 아버지가 무슨 심각한 범죄에 가담한 것 같다. 그리고 아버지는 그것을 은폐하기 위해서 엄마를 정신병자로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무엇이 진실일까. 다니엘은 결국 자신이 직접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서 스웨덴으로 떠난다.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부서지던 날한 개인이 아니라 가족 전체가 등장하는 범죄소설들도 많다. 그런 소설 속에서 가족의 구성원들은, 살인이나 유괴같은 범죄로부터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 똘똘 뭉친다. 그들은 모두 '세상에 가족만큼 소중한 것은 없다'고 말한다.
<얼음 속의 소녀들>은 그런 점에서 약간 예외다. 엄마와 아버지는 완전히 갈라져서 서로를 비방하고 헐뜯는다. 아들은 그 가운데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그동안 부모에 대해서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많은 가정이 그럴지도 모른다. 부모는 행복한 가정을 만들기 위해서 무진 애를 쓰고 희생한다. 그리고 자식들에게 충격적인 일이 일어나지 않는 든든한 안식처를 제공하겠다고 다짐한다. 하지만 그런 노력은 어느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될 수 있다. 그 원인이 부모 사이의 갈등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자식들은 그때서야 깨닫는다. 자신이 부모에 대해서, 가정형편에 대해서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지만, 어긋난 생활을 바로 잡기위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을. <얼음 속의 소녀들>은 범죄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가족에 대한 이야기다. 단단하게만 여겨왔던 가족이 어떻게 조금씩 무너지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덧붙이는 글 | <얼음 속의 소녀들> 톰 롭 스미스 지음 / 박산호 옮김. 노블마인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