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등으로 온 국민을 가슴 아프게 했던 2014년이 지나고, 2015년 새해가 밝았다. 지난해 대한민국 언론은 세월호 참사에서 보여준 민낯으로 지상파와 종편, 신문을 막론하고 기자와 쓰레기의 합성어인 '기레기'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이명박 정부부터 시작된 정부의 언론 장악은 시들기는커녕 오히려 견고해지는 듯하다. 특히 공영방송 KBS는 파업 등으로 길환영 사장을 퇴진 시키고 좀 나아지나 싶더니 다시 예전 모습으로 돌아갔다. MBC는 유능한 기자와 PD들을 비제작 부서로 발령내는가 하면, 교양제작국을 폐지해 '교양 없는 방송'이란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한 이때, 지난해 언론 상황을 정리하고 새해 언론을 전망하고자 지난 6일 강성남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을 언론노조 사무실에서 만났다. 다음은 강 위원장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언론계 전반, 높은 점수 줄 수 없다"
- 먼저 새해를 맞아 <오마이뉴스> 독자들에게 새해 인사를 부탁드립니다."<오마이뉴스> 독자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작년엔 세월호 참사 등 슬픈 일이 많았어요. 올해는 대한민국 사회에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좋은 일이 독자 여러분 앞에 많이 전달되면 좋겠어요."
- 지난해 세월호 참사가 있었습니다. 언론계에도 많은 영향을 줬지요. 지난해 언론계를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요?"언론은 이명박 정권 이후 (정치권에) 장악된 언론 상태가 오히려 더 안 좋은 쪽으로 흘러가서 언론계 전반에 대해서는 높은 점수를 줄 수가 없어요. 외부적으로 정치 권력이 언론계에 미치는 영향력이 더 강해졌고, 언론계 내부의 저항하는 힘은 약해졌습니다. 이 두 가지가 서로 영향을 미쳐 지난해 언론계는 최악의 상태였다고 봅니다."
- 어떻게 안 좋아졌다고 보세요?"당연히 언론에 의해 전달돼야 할 사실이 제대로 전달 안 됐고, 사회의 소외받는 약자에 대한 언론의 관심도 줄어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정권에 의해 언론이 많이 이용됐어요. 사회적으로 이슈화되고, 토론을 통해 해결해야 할 정말 중요한 문제들을 언론이 에둘러 피해 (문제들이) 제대로 해결이 안 됐죠.
대표적으로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이후 정치 쟁점화될 이유가 없는데 쟁점화되면서 세월호 국정조사 특위 구성까지 시간이 너무 흘러 유가족과 국민이 많이 힘들었어요. 이런 문제는 그때그때 해결하고, 사회적 토론을 통해 빨리 정리돼야 했는데... 재발 방지를 위한 사회적 활동이 제대로 되려면 언론이 제 역할을 해야 했는데 그 부분에 있어서 잘하지 못 했어요."
- 지난해 언론을 '홍보견'이라 했는데... 1년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인가요?"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아요. 언론이 정권에 대해 제대로 비판 안 하고, 애완견이나 홍보견처럼 하는 짓은 달라지지 않았어요. 많은 부분에 대해 언론계 내부에서 자성과 자아 비판을 통해서 개선돼야 하는데, 그런 부분에 대한 노력이 미흡했다고 봅니다."
- 지난해 신년 인터뷰에서 "올해는 적어도 공영방송의 정상화는 이뤄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하셨지만 KBS는 사장이 교체돼 나아지는가 싶더니 그대로고, MBC는 상황이 더 악화 됐습니다."지난 해 적어도 공영방송의 정상화는 이뤄질 것이라고 본 것은 공영방송에 대한 비판이 점점 높아질 것을 예상했기 때문이에요. 그런 분위기에서 정상적인 정권이라면 (언론 노조가) 공영방송의 독립성을 위해 요구하고 있는 법 제도 개선에 대한 대화가 가능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면 그들은 이미 장악한 공영방송을 독립시킬 의사가 없었어요. 민주주의에 대한 공영방송의 기능은 관심 없고, 그저 정권 홍보에 어떻게 사용할까만 생각해요.
MBC 같은 경우도 방문진을 통해 이사진을 임명했어요. 그 사람들이 하는 경영 행위를 보면, 언론사 경영진이라 보기 어려운 형태를 보여주고 있거든요. 이들은 언론으로서 MBC의 사회적, 정치적 비판 기능은 될 수 있으면 망가뜨리고, 그저 MBC가 돈만 많이 벌면 좋겠다는 천박한 생각을 한다고 봐요. KBS는 사장 교체 이후 내부 구성원의 노력도 일부 있어 일부 개선되고 있는 면도 있어요. 그러나 전체 흐름은 아직까지 많이 미흡하다고 봅니다."
- 정동익 전 동아투위 워원장은 "우리 때는 기사 한 줄이라도 내보내려고 보도 투쟁했는데, 요즘은 그런 모습이 안 보여서 아쉽다"고 하셨던데."선배들 지적이 맞아요. 실제로 현장의 기자들이 옛날처럼 치열함이 떨어지는 건 사실이에요. 그러나 한편으로 (현장의 기자들이) 지금 있는 시스템 안에서는 최대한 노력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옆에서 보기엔 좀 더 치열하길 바라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노력은 하고 있다고 봅니다. 그런 열망 등을 모아서 하나의 힘으로 방향성을 갖고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언론노조의 역할이라고 봐요. 좀 더 그런 역할을 언론노조에서 열심히 해야 할 것이고, 선배들의 좋은 지적을 현장에 반영할 수 있도록 해야죠."
- 최성준 방송통신위원장은 "올해는 KBS 수신료를 인상하겠다"고 했어요. 지난해 강 위원장은 KBS 수신료 인상이 어렵다고 보셨는데 올해도 마찬가지인가요?"네. 수신료는 지금 KBS의 역할이라든지, 국민이 (KBS에 대해) 바라보는 시선을 보면 수신료 인상을 요구하기엔 어렵지 않을까 생각해요. 저희 입장은 수신료를 인상하려면 공영방송을 위한 여러 제도적 시스템을 먼저 완성하라는 거죠. 그리고 시민사회 단체에서 요구하는 조건을 충족하라는 것이에요."
- 세월호 참사 이후 '기레기'라는 표현이 회자됐습니다. 참사 후 8개월이 넘게 흘렀어요. 언론은 달라졌나요?"내부적으로 언론 노동자들의 노력은 있었으나 밖으로 나타나는 노력의 결과는 보이지 않아요. 아직도 저희가 '기레기'라는 얘기를 들을 수밖에 없는 요소가 곳곳에 있어요. 내부적으로 언론 노동자들의 노력을 제가 폄훼하는 건 아니지만, 아직도 많이 모자라요."
- 지난해 문제가 된 것 중 하나가 이른바 '어뷰징 기사(기사 조회 수를 높이기 위해 같은 내용의 기사를 헤드라인 또는 내용만 조금씩 바꿔 반복 송고하는 것)'였어요. 어뷰징 기사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세요?"아주 나쁜 거죠. 이건 얘기할 필요 없이 인터넷 온라인상의 뉴스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역할도 축소해 쓰레기 같은 기자들을 많이 유통하게 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 원인은 뭐라고 보세요?"돈이죠. 클릭 수를 많이 올려서 돈을 벌겠다는 거잖아요. 능력도 안 되는 기자를 앉혀 놓고 기사를 못 쓰니 남의 것 베껴다 제목만 바꿔 올리는 거죠. 아주 못된 짓이고, 도둑질이에요. 이런 게 결국 성실하고 양심적인 기자들 사기를 꺾는 짓이에요. 바꿔 말하면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전형적 사례입니다."
- 지난해 11월 27일 YTN 해직자들의 해고무효 소송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있었어요.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판례로 남아 계속 언론계에 많은 영향을 미칠 것 같은데."이번 대법원의 판결은 사법적 의미는 전혀 없는 정치권 주문에 의한 정치적 판결이었다고 봅니다. 언론 노동자의 노동 가치를 고려하지 않은 판결이기 때문에 사법적 의미가 없다는 거죠. 더 크게는 잘못된 판결이죠. 받아들일 수 없어요. 언론 노동자가 공정한 언론인으로서 활동하는 데 그것을 막는 곳이 있으면 저항하고 싸워야 합니다. 그 권리를 인정 못 받는다는 것은 말이 안 돼요. 그 부분에 있어 사법적인 판단이라고 대법원은 말하겠지만,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 대법원 판결이라 방법이 없지 않나요?"잘못된 판결은 대법원이 아니라 더 상위 기관이라도 바꿔야죠. 판례로 남는다고 해서 앞으로 무조건 계속 인용한다는 건 말이 안 돼요."
- 대안 언론도 짚어봐야 할 것 같아요. 현재의 대안 언론을 어떻게 보세요?"기존의 제도권 언론이 제대로 제 역할을 못하기 때문에 대안 언론이 생기고, 많은 국민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이죠. 훌륭하게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제도권 언론에 있는 사람으로서 대안 언론의 발전과 약진을 보며 한편으로는 즐겁지만 한편으로는 제도권 언론의 처지가 한심하다고 느껴져 슬프기도 해요. 그래서 현재 대안 언론에서 다루는 이슈들이 하루빨리 제도권 언론에서도 다뤄지길 바래요."
"언론 없는 사회 개혁 발전, 상상할 수 없다" - 아쉬운 점도 있을 것 같아요. "아쉬운 건 대안 언론이 국민과 접촉면이 아직 적다는 거예요. 이것을 더 확대할 수 있는 방법을 대안 언론 공동으로 고민할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해요."
- 종편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세요?"이제 종편을 다 싸잡아 뭐라 하긴 좀 안 맞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종편의 특혜는 없어져야 하고, 일부 종편의 '쓰레기' 방송에 대해선 전 사회적으로 고민해야 합니다. 쓰레기 방송의 피해는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클 것이기 때문이죠."
- 언론 노조를 이끄신 지 2년 되셨죠. 지난 2년, 어떻게 평가하세요?"어려운 시기였다고 봐요. 언론 노조의 정책 방향이라든지, 실천 활동 같은 것들에 상당히 한계가 있었어요. 세월호 참사로 언론이 집중적으로 제 역할을 못한 것에 지탄을 받는 것에 대해서 언론계 내부 노동자들의 각성과 반성에 따른 보이는 성과들이 그때그때 없어 마음 고생이 심했던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언론 노조의 역할을 확대하고, 강화하는 바탕을 열심히 마련한 2년이라고 봅니다. 지난 2년 동안 우리가 겪은 어려움을 경험 삼아 언론 노조는 제대로 역할을 하지 않을까 기대해요. 그리고 부조리한 권력의 탄압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저항하고 싸워 나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토마스 제퍼슨은 "신문이 없는 정부와 정부가 없는 신문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나는 정부 없는 신문을 택하겠다"고 했는데 지금 같은 언론 상황에서 정부 없는 신문을 택할 사람이 있을까 의문입니다."민주주의를 지키는 데 언론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입니다. 그런데 지금 언론은 그 역할을 못하고 있고, 더 나아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데 도구로 활용되는 측면이 있어 가질 수 있는 의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언론은 존재해야 합니다. 언론 없는 민주주의를 상상할 수 없듯 언론 없는 사회 개혁 발전도 상상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조만간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민주주의를 사수하는 보루 역할을 할 것입니다."
- 마지막으로 올해 언론계에 대한 전망을 부탁드립니다."올해도 정치 권력의 탄압과 장악은 더 강화되고 지속될 것으로 봐요. 긍정적으로 바뀔 요인은 별로 없어요. 더 어려워질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언론 노동자들이 이제는 조금 더 강건하고 명확하게 부조리한 힘에 대해 저항하고 싸우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바꿔 말해 올해 하나라도 개선되려면 언론 노동자들이 좀 더 강하게 투쟁해야 (변화가) 가능하다고 봐요. 외부 환경은 더 안 좋아질 거예요."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이영광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이영광의 언론, 그리고 방송이야기'(http://blog.daum.net/lightsorikwang)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