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리즈키 린타로는 자신의 1995년 작품 <또다시 붉은 악몽>에서, 자신은 미국의 추리작가 엘러리 퀸의 마니아라고 밝히고 있다.
"퀸을 읽지 않은 사람은 사람도 아니다"라고 말을 하고 다닐 정도였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또다시 붉은 악몽>의 인물 설정은 퀸의 작품과 비슷하다. 엘러리 퀸은 작품 속에서 자신과 동명인 젊은 탐정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다.
그 젊은 탐정은 아버지와 함께 살고있는 '백수'이면서 경시청에 근무하는 아버지를 도와서 사건수사에 가담한다. 그리고 뛰어난 추리력으로 사건을 해결하고 그것을 소설로 집필하기도 한다.
노리즈키 린타로의 인물설정도 비슷하다. 작가와 동명인 백수 젊은이가 있고, 그는 경찰청에 근무하는 아버지와 함께 살면서 사건수사에 뛰어든다. 수사가 종결되면 그것을 소설로 쓰려고 한다. 탐정이자 동시에 작가인 셈이다.
악몽에 사로잡힌 17세 아이돌 배우엘러리 퀸의 영향을 받은 추리작가들은 많다. 그렇더라도 이렇게 작품 속에서 인물설정까지 같게 할 정도로 애정을 갖는 사람은 흔하지 않을 것이다. <또다시 붉은 악몽>은 <요리코를 위해>, <1의 비극>을 잇는 삼부작 미스터리의 완결편이다. 그러니 이 시리즈는 엘러리 퀸에게 보내는 '오마주'인 셈이다. 작품 속에서 탐정 노리즈키는 수차례 엘러리 퀸을 인용할 정도다.
<또다시 붉은 악몽>에는 '유리나'라는 이름의 열입곱 살 아이돌 탤런트가 등장한다. 그녀는 방송국 창고에서 칼을 든 남자의 습격을 받고 몸싸움을 벌이다 정신을 잃는다. 얼마 후 유리나는 자신의 옷에 피가 묻어 있는 것을 보고 현장을 빠져나간다.
하지만 그 후에 인근 공원에서 칼에 찔려 죽은 남자의 시체가 발견되자 자신이 죽였을 거라는 공포에 사로잡힌다. 결국 유리나는 노리즈키 탐정에게 도움을 청하고, 은둔하고 있던 탐정은 망설임 끝에 경찰청에 근무하는 아버지와 함께 사건 조사에 나선다.
사건 수사를 시작하자 유리나와 탐정 앞에 나타난 것은 17년 전 한 가족의 비극이다. 유리나만 살아남고 모두 죽어버린 한 가족의 비극. 유리나는 이 비극 때문에 엄청난 충격을 받게되고, 탐정은 17년 전의 사건이 현재의 유리나 습격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알아내기 위한 노력을 시작한다.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 고민하는 탐정인물관계 설정도 그렇지만, 인물의 모습도 엘러리 퀸의 작품과 비슷하다. 퀸의 작품 속에서 탐정은 항상 인간의 본성과 자신의 모습에 대해서 고뇌한다. 노리즈키 린타로도 마찬가지다. <또다시 붉은 악몽>에서 탐정 역시 죽은 사람에 대해서 생각한다. 희생자는 그 생애 동안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았을지.
얼마만큼의 슬픔을 짊어지고 살았을지, 그리고 어떤 생각을 하며 죽었을지 등. 물론 이런 의문들에 대한 정확한 답은 나오지 않는다. 아무리 사건을 깊이 파고든다고 해도, 탐정의 입장에서는 사람들의 내면과 과거, 그것들이 얽혀있는 관계를 상세하게 파악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탐정이자 작가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관계가 엮어낸 것의 일부를 이야기로 만들어내는 것에 불과할지 모른다. 이런 한계가 '탐정'이라는 직업이 가진 태생적인 문제는 아닐 것이다. 탐정 노리즈키의 고민과 의문도 이런 점 때문에 생겨난다.
어차피 인간은 타인에 대해서 깊이있게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데도 왜 계속해서 타인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고 있을까. 왜 우리는 그 그물망에서 떠나지 못할까. 작가 노리즈키 린타로는 반세기 전에 사라진 '고뇌하는 탐정'을 현재에 와서 되살려낸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또다시 붉은 악몽> 노리즈키 린타로 지음 / 민경욱 옮김. 포레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