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2013년, <오마이뉴스>는 '마을의 귀환' 특별기획을 통해 대한민국이라는 '위험사회' 속에서 살아가기 위한 대안으로 마을공동체를 제시한 바 있습니다. 마을의 귀환 시즌2는 '1인가구 공동체'에 주목합니다. 독립적인 삶을 살아가는 1인가구와 마을공동체, 언뜻 잘 어울리지 않는 조합인데요. '1인가구'와 '공동체', 나아가 '마을'의 만남은 가능할까요. '탈고립', '탈가족주의', '탈자본주의', '탈도시'... 1인가구를 위한 마을사용설명서, 지금 공개합니다. [편집자말] |
1월의 마지막 날, 성북동 골목 어귀 공유공간인 '동네공간'에서는 김기민(35)씨의 '환송회'가 열렸다. 이틀 후인 2월 2일, 4개월간의 세계여행을 앞두고서다. 오후 5시가 되자 하나 둘 동네공간의 문을 열고 들어온다. 누군가는 아내가 만든 잡채와 막걸리를, 누군가는 자신의 가게에서 파는 전복구이를, 누군가는 유기농 빵을... 저녁식사도 해야 하는데 주전부리가 푸짐하다. 33㎡(10평) 정도 되는 공간에 10여 명이 모여 앉았다.
"기민씨가 일 정말 잘했는데... 기민씨 없는 동안 우리는 어떡해." "가서도 꼭 카톡 해야 해. 연락 끊으면 안 돼." "연락 안 되면 IS에 잡혀갔다고 신고할 거야(웃음)."지난 2년간, 기민씨는 이날 모인 성북동 주민들과 함께 '성북동천'에서 활동했다. 성북 지역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성북동천'은 성북동 주민, 단체, 예술인들이 결성한 마을 공동체 모임이다. 이들은 성북동의 이야기를 담은 마을잡지를 펴내고 마을탐방, 마을학교 프로그램 등을 진행해왔다.
4년 만에 떠나는 '국외' 여행. 성북동천 사람들은 기민씨를 위해 저마다 뭔가 하나씩 준비했다. 복합문화공간 '17717'을 운영하는 김선문씨는 넌지시 현금을 쥐여주었고, 성북동천 대표 김철우씨와 그의 아내 이현숙씨는 예전에 유럽여행 갔을 때 남겨온 동전까지 탈탈 모아 유로화를 건넸다. 동네 식당 '디미방' 사장님 박진하씨는 환송회 뒤풀이를 책임졌다. 뽀글뽀글 끓는 닭볶음탕 위로 술잔이 오고갔다.
2011년, 기민씨가 처음 성북동에 카페를 열었을 때, '동네공간'의 원래 이름은 여행카페 '티티카카'였다. '사장님' 기민씨는 당시 여행블로거로 유명했단다. 기민씨가 나라 밖 여행을 떠나지 못한 지난 4년간, '티티카카'는 더 이상 카페 영업을 하지 않는 '동네공간'이 되었고 규모도 3분의 1로 줄어들었다. 월세를 일부 분담하고 있기는 하지만 임대차 계약자 역시 더 이상 기민씨가 아니다.
지난 반년간, 기민씨의 한 달 수입은 성북구 마을만들기 공모사업 지원활동가로 일하면서 받았던 약 120만 원(이마저도 '세전'이다). 여행경비는 어찌어찌 마련했지만, 한국을 떠나있는 동안 집 월세와 동네공간 유지비는 그의 표현에 따르면 "앵벌이"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를 위해 기민씨는 '노잣돈 후원계좌'를 개설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남자, 참 행복해 보인다.
저소비 생활
'서울 토박이'인 기민씨는 20대 대부분을 목동에서 보냈다. 유난한 교육열로 상징되는 목동에 살면서 그는 "있으면 안 될 곳에 있는 것 같은 이질적인 느낌"을 받았다. 2011년, 기민씨는 성북동에 여행카페 '티티카카'를 열었다.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해 원룸도 얻었다. 사람 없고 조용하고 고층빌딩도 없고. 목동과 전혀 다른 이곳이 그는 좋았다.
"카페 장사도 잘 안 되고, 사람도 없고 심심하니까." '잉여'로웠던 그는 동네에서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여행 관련 모임뿐만 아니라, 성북동에서 기민씨가 좋아하는 장소들을 사람들과 함께 탐방하고,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책읽기 모임도 하고. 그러다 2013년부터 기민씨는 '성북동천'에서 본격적으로 마을활동을 시작했다.
그 해 봄, 기민씨는 '집밥' 모임을 열었다. 이름하여 '저소비 생활자 모임'. 지금까지도 5명 내외의 사람들이 꾸준히 참석하는 공부 모임이다.
"적게 벌면서도 삶의 수준이나 질이 떨어지지 않는 그런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나는 이번 생에서는 돈을 많이 못 벌면서 살 거기 때문에(웃음). 돈의 많고 적음에 좌우되지 않고 내 삶을 지켜나갈 수 있는 방법을 알았으면 좋겠다고. 그런데 마음은 있는데 지식이 없고 체계가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는 작은 충격이나 변화에 흔들리게 된다. 게다가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나밖에 없다고 하면 소외감을 느끼게 되고, 자신감이 결여되기도 한다. '동지'를 만나고 싶은 마음에서 모임을 시작했다. 책 보면서 공부도 하고 실제 사례지에 가서 체험을 해보기도 하고.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나밖에 없는 게 아니다, 라는 것에 대해 동질감, 유대감도 느꼈다."기민씨는 한때 직업군인이었다. 고정적인 수입이 있었던 건 그 때가 살면서 유일했다. 대부분은 "필요할 때 일하고, 필요하지 않을 때 일하지 않을 수 있는" 일을 하며 살았다. 그러다 떠나고 싶으면 훌쩍 떠났다.
자본주의 체제에 잘 적응해 '남들처럼' 평범한 직장인이 되어 돈을 벌고 좋은 집을 사고... 그런 삶에 대한 '욕심'을 억지로 가져보려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30대가 되면서 명확하게 구분하게 되었다.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해야 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 먼저 해야할 것과 나중에 해야할 것을. 기민씨는 자신의 블로그에 '저소비 생활자'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자본주의가 요구/조장하는 물질만능, 소비 지상주의로부터 독립하여 자신의 존재 가치와 이유를 돈과 소비가 아닌 자기 자신으로부터 찾음으로써 좀 더 편안하고 자유로운 삶을 살 것을 꿈꾸고 실행하는 사람들입니다. 저소비 생활자의 제1목표는 자본과 소비에 휘둘리지 않음으로써 '내가 주인이 되는 삶'에 있습니다.'
'토닥'과 '빈고' |
'청년연대은행 토닥' http://cafe.daum.net/ybank1030
'청년연대은행 토닥'은 '청년들이 서로 도우며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청년협동조합'이자, 대안적인 '사회안전망'을 표방한다. 일종의 '계'처럼 조합원들이 매달 조금씩 돈을 모아서 공동체 기금을 조성한 뒤, 일정한 심사를 거쳐서 조합원들이 필요할 때 저렴한 이자로 돈을 빌려준다. 청년들이 스스로 만든 상호부조 시스템인 셈. 만 15세에서 39세까지 청년 누구나 매달 5000원 이상의 출자금을 내면 조합원 자격을 얻을 수 있다. 소액 대출과 청년 재무상담 같은 '금융협동'과 조합원들의 커뮤니티 활동인 '토닥협동', 두 축으로 활동이 진행된다.
'공동체은행 빈고' https://www.facebook.com/bingobank?ref=ts&fref=ts
'공동체은행 빈고'는 해방촌 청년 주거공동체 '빈집'에서 시작되었다. 조합원들이 일정한 금액을 출자해 공동 기금을 조성하면, '공동체 기금'은 빈고 내부 조합원들의 상호 부조를 위해, '지구분담금'은 빈고의 외부, 지구 곳곳에서 삶과 생명을 위해 투쟁하고 있는 공동체들을 위해 쓰인다. 모든 조합원은 출자금액과 무관하게 1인 1표의 권리를 행사하며 빈고의 살림을 함께 꾸려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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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소비 생활 공부는 단순히 기민씨 개인 삶의 문제만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자본주의가 갖고 있는 문제를 넘어설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진다. 2013년 가을, 기민씨는 '청년연대은행 토닥'과 함께 '사회적 금융 스터디' 모임을 시작했다. 지난해 중순부터는 '공동체은행 빈고'와도 함께 스터디를 진행하고 있다. 저소비 생활자 공부 모임 멤버들과 함께 '토닥' 청년지갑 트레이닝 센터 세미나에 참석하기도 했다.
기민씨는 "살다보면 자신의 삶의 목표나 꿈, 지향점과 관련 없는 소비를 하게 된다, 대부분 그렇다"면서 이 같은 공부를 통해 "얼마 안 되는 작은 돈이지만 내 삶의 지향점이나 공동체에 어떻게 하면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쓸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기민씨는 여행 경비 일부를 '토닥'과 '빈고'에서 소액 대출 받았다. 정기적인 소득이 없어 기존 금융권을 이용하기 어려운 기민씨 같은 청년들에게, 이러한 대안금융은 큰 힘이 된다.
공유
기민씨의 '저소비 생활'은 그의 '공유 생활'과도 맞닿는다. 저소비 생활자 모임을 시작할 때쯤, 기민씨는 또 하나의 집밥 모임을 열었다. 바로 '비혼 모임'. 성북구 성소수자 연대와 LGBT 영화제 프로그램팀에서도 활동하고 있는 그는 비혼 1인 가구다.
"저는 결혼이라는 제도와 부합할 수 없는 삶을 살고 있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 것이고 그렇게 살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이라는 공동체가 갖고 있는 안정성이 있다. 정서적인 부분이든 경제적인 부분이든. 그래서 결혼하고 싶지는 않고 혈연가족에게 의지하고 싶지는 않지만 내가 의지하고 살 수 있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공동체를 만들어감에 있어서 가장 접근하기 쉬운 첫 단계가 한 집에서 사는 것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집에서 살아야 되니까. 그런데 무작정 집을 임차하거나 살 수는 없으니까 이런 부분에 관심 있는 사람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스터디 모임을 열었다." 비혼 가구들이 모이자, 자연스레 공동체와 주거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비혼 모임은 '주거 공간을 기반으로 주류 사회 질서의 압박으로부터 조금은 자유롭게 숨 쉴 수 있는 생활공동체 형성 가능성을 모색해보는' 대안주거 공부 모임으로, 2013년 10월에는 '따로 또 같이 협동조합 준비 모임'으로 전환되었다. 그 해 말에는 공동주택으로 적당한 집도 소개받았다.
그러나 이듬해인 2014년 2월, '따로 또 같이' 입주자 가운데 정작 기민씨와 공부 모임을 함께 했던 이들은 없었다. 기민씨는 "시작 단계부터 저는 셰어하우스를 염두에 두고 있었고, 그 분들은 셰어하우스보다는 하나의 마을을 생각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기민씨는 함께 현관문을 쓰는 관계를, 다른 참가자들은 현관문은 따로 쓰면서 인근에 함께 사는 관계를 원했던 것. 현재 '따로 또 같이'에는 기민씨를 비롯한 비혼 남성 3명이 살고 있다.
공동주택 보증금은 이전에 살던 원룸 전세금을 빼서 충당했다. 월세는 각 방 면적별로 낸다. 관리비까지 포함해서 한 사람 당 월 35만 원~50만 원 정도. 기민씨는 "원룸에 살다가 공동주택에 사니까,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 3~4배 늘어났다"면서 "거실에 누워서 텔레비전도 보고, 손님 초대해서 음식도 대접하고... 호사를 누리고 있다"고 만족스러워했다.
다른 이와 함께 살다보니 '내 것이 분명하지만 누가 쓰건 상관없는' 것들이 차츰 늘어났다. 기민씨는 "소유는 나와 너의 것이 나뉘어져 있지만, 공유하게 되면 소유하지 않게 된다"고 말했다.
기민씨는 자신이 운영하던 카페 '티티카카'도 나눠 쓰기로 했다. 카페 규모를 축소한 데 이어 지난해 8월 카페 티티카카의 영업을 종료했다. 마을 활동을 하느라 카페를 비우는 날들이 많아지면서 더 이상 카페를 유지하기 쉽지 않았다.
이후 '동네공간'은 공동 사무실 겸, 마을 모임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관리비까지 포함한 동네공간 한 달 유지비는 80만 원 정도. 기민씨와 건축그룹[tam] 그리고 성북동천이 비용을 나눠 내고 있다. 공간을 공유할 사람들이 더 늘어난다면 그만큼 부담은 줄어들 텐데, 아직은 쉽지 않다.
마을
올해 기민씨의 목표는 '덜 바쁘게 사는 것'이다. 크고 작은 모임들을 꾸려가고, 마을활동가 일을 하느라 정작 마을 사람들과의 관계에 집중하지 못했다는 반성 때문이다. 환송의 날, 기민씨에게 '(노잣돈 후원계좌에) 성원이 많이 답지했냐'고 묻자,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후원을 해주셨다"며 "여행을 떠난 동안에도 어느 정도 공간 유지를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기민씨는 공동주택 '따로 또 같이'가 장기적으로는 협동조합 형태의 법인이 되었으면 한다. 입주자 한 명이 집을 나간다고 해서 휘청하지 않도록 안정성을 갖추고 싶기 때문이다. '따로 또 같이' 근처에 있는 집들을 법인의 이름으로 임차해 이를 조합원들에게 빌려주는 방식도 생각하고 있다. 언젠가는 성북동에 공동주택 마을이 생길지도 모른다. 구체적인 방법은? 일단 여행 다녀와서 생각해 보겠단다. 지난 2일, 기민씨는 베를린으로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