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2013년, <오마이뉴스>는 '마을의 귀환' 특별기획을 통해 대한민국이라는 '위험사회' 속에서 살아가기 위한 대안으로 마을공동체를 제시한 바 있습니다. 마을의 귀환 시즌2는 '1인가구 공동체'에 주목합니다. 독립적인 삶을 살아가는 1인가구와 마을공동체, 언뜻 잘 어울리지 않는 조합인데요. '1인가구'와 '공동체', 나아가 '마을'의 만남은 가능할까요. '탈고립', '탈가족주의', '탈자본주의', '탈도시'... 1인가구를 위한 마을사용설명서, 지금 공개합니다. [편집자말] |
지난해 6월, 직장인 한은혜(33)씨는 조금 특별한 대출을 받았다. 입사 3개월차, 갑자기 반토막이 된 월급 때문에 당장 생활비가 없는 상황. 은혜씨는 "지난 두 달간의 월급은 그동안 밀린 학자금 대출 갚느라, 월세 내느라 이미 '원천징수' 됐다"고 말했다. 가족이나 지인들에게 신세를 지기도 어려웠다. 은혜씨는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해 언니와 함께 살고 있는 1인 가구다.
은혜씨는 자신이 조합원으로 있는 '청년연대은행 토닥(아래 '토닥')'을 떠올렸다. 그리고
은행 카페에 대출신청 글을 올렸다.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드디어, 저도 (토닥) 대출 신청하는 날이 왔어요. ^^"토닥에 가입하기 전인 지난해 1월까지만 하더라도 은혜씨는 기존 금융권에서 받은 대출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대학원 공부까지 마치기 위해 받았던 학자금 대출 2000만 원. 은혜씨는 "이전에 일하던 회사를 그만두고 다른 회사에 들어가기까지 정기 수입이 없던 8개월 동안, 대출상환이 조금만 늦어져도 독촉전화가 걸려왔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런데 토닥의 대출은 달랐다. 다음은 은혜씨가 토닥 카페에 남긴 대출후기다.
"보통 대출을 받으러 시중 은행에 가면 참 그게 마음이 그렇잖아요. 뭔가 잘못 살아 돈을 빌리게 된 거 같아 쭈뼛거리게 되는 마음이요. 그런데 토닥에서 대출상담을 받을 땐 그런 느낌 전혀 없이 너무나 편안했어요. 참 인간적이고 따뜻한 토닥의 진가는 대출을 받을 때 느낄 수 있는 것 같아요." "청년들이 5천원, 만원씩 모은 돈으로 대출... 의미가 다르다"'무담보', '무보증'. 대부업체 광고문구가 아니다. 토닥에서는 정말로 담보와 보증 없이도 대출이 가능하다. 대출이자도 안 정해져있다. 돈을 빌리는 사람이 이자를 스스로 정할 수 있는 '자율이자' 제도다. 상환 기간도 12개월 이내에서 채무자가 자유롭게 정할 수 있다. 사정에 따라 상환 일시 정지가 가능하다.
은혜씨는 대출금 50만 원을 7개월에 걸쳐 상환했다. 채권추심? 그런 건 당연히 없다.
토닥 대출을 받으려면 일단, 협동조합 형태로 운영되는 청년연대은행 토닥의 조합원이 되어야 한다. 만 15세~39세, 매달 5천 원 이상의 출자금을 내면 가입할 수 있다. 가입 후 바로 대출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30만 원을 대출받기 위해서는 출자 개월수 1개월 이상 또는 '토닥씨앗' 5톨 이상의 조건을 채워야 한다. 출자 개월수와 토닥씨앗이 늘어나면 대출가능 액수도 늘어난다. 토닥씨앗은 토닥 조합원 교육, 소모임 등의 활동에 참여할 때마다 쌓이는 활동지수다. 그리고 또 하나, 신입조합원 교육인 '토닥학 개론'을 반드시 이수해야 한다.
지난 2월 14일 토요일 오후, 2015년 첫 토닥학 개론이 열린 마포구 서교동 복지국가청년네트워크를 찾았다. 청년연대은행 토닥 사무실은 망원동에 있지만 참가자 수가 많아서 급히 다른 공간을 빌렸다. 일주일 전 조합원 정기총회에서 제2대 토닥 이사장으로 선출된 김진회(26)씨가 이날 토닥학 개론 진행을 맡았다. 김 이사장은 "보통 신입 조합원 교육 하면 3명 정도 오는데, 오늘은 10명이 왔다"며 "역대 최대 인원"이라고 기뻐했다. 대전에서 기차를 타고 온 신입조합원도 있었다.
신입조합원뿐만 아니라 이미 토닥학개론을 이수한 기존조합원 가운데 참석한 이들도 있었다. 한은혜씨는 친구 배영은씨에게 토닥을 소개하기 위해 함께 왔다. 10명이 두 개의 모둠으로 나눠앉았다. 20대 대학생부터, 30대 직장인까지. 모두가 비혼, 절반은 1인 가구였다.
2013년 2월 창립된 청년연대은행 토닥은 청년들이 협동을 통해 경제적 자립과 꿈을 실현할 수 있도록 하는 청년금융생활네트워크다. 시작은 2011년, 병마와 생활고에 시달리다 방안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된 한 시나리오 작가의 죽음이었다.
고 최고은 작가의 죽음 이후, 청년유니온 페이스북에 쌀이 떨어져서 굶고 있다는 한 조합원의 글이 올라왔다. 그런데 그 글이 올라오자마자 쌀을 주고 생활비를 보태겠다는 다른 조합원들의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모금 운동을 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청년들이 서로 도우면서 공감과 위로를 주고받을 수 있는 상호부조 시스템을 고민하게 된 계기다. 애초에는 청년유니온 내부사업으로 고민했으나, 이를 확장해 청년연대은행 토닥이라는 별도의 단체를 만들었다.
"처음에는 기업으로부터 후원을 받아서 시작하라는 조언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정말 많은 고민 끝에, 그렇게 받은 돈과 청년들이 5천 원, 만 원씩 모은 돈은 의미가 다르다, 우리의 문제를 우리가 스스로 해결하자는 의미에서 깨알같이 출자금을 받아서 시작했다. 삼성에서 10억 지원해준 돈으로 대출사업을 한다고 가정하자. 그 돈을 100만 원 빌렸을 때와 똑같은 처지의 청년들이 아껴서 모은 돈을 100만 원 빌렸을 때와는 그 의미가 전혀 다르다."-김진회 이사장 2013년 2월, 조합원 150명, 출자금 1165만 원으로 출발한 토닥은 2014년 12월 현재, 조합원 352명, 출자금 5778만 원 규모로 빠르게 성장했다. 조합원들이 매달 내는 출자금은 소액대출사업과 사무국 공간보증금으로만 사용된다. 탈퇴 시 전액 환불 가능하다. 일종의 저축인 셈이다. 저축을 강제할 수 없기 때문에 출자 역시 사정에 따라 일시 정지가 가능하다.
"채권추심 없는데도 상환율 91%... 기적같은 일"
청년연대은행 토닥이 다른 은행과 가장 차별화되는 점은 '신용'이 아닌 '신뢰'를 기반으로 운영된다는 것이다. 조합원들이 매달 출자한 돈으로 공동체 기금을 조성하고 이 돈을 최대 100만 원까지 소액대출 해준다. 급한 생활비뿐만 아니라, 교육비, 여행자금 등을 위한 대출도 가능하다. 가장 많은 대출용도는 생활비와 주거비다. 지난해부터는 '결혼격려대출'이 생겨, 결혼 당사자 두 명 모두 조합원일 경우 최대 300만 원까지 대출이 가능해졌다.
출자 개월수 또는 토닷씨앗, 신입조합원 교육 이수라는 대출조건을 충족한다면 대부분의 경우 대면 대출상담을 통해 대출이 승인된다. 대출이 거절되는 경우도 있다. 김진회 이사장은 "30만 원, 50만 원 소액대출을 통해 상황이 해결되기 어려운 경우에는 국가에서 운영하는 다른 제도를 소개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개인·소액 대출을 주로 해왔지만, 조합원들의 동의를 거쳐 지난해 '민달팽이 유니온'에 1500만 원을 대출해주기도 했다. 이 돈을 보태, 현재 민달팽이 유니온은 청년들의 주거안정을 위한 셰어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다. '청년 상부상조'의 정신이 다양하게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2014년 12월 말 기준, 토닥 대출을 이용한 조합원은 99명, 누적대출금은 6527만 원이다.
조합원들 간의 신뢰는 관계를 통해 형성된다. 대출을 위해 신입조합원 교육을 필수적으로 이수하도록 한 것도 그 때문이다. 조합 내 활동에 따라 쌓이는 '토닥씨앗'도 이러한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김진회 이사장은 "일반 은행에서는 이 사람이 돈을 갚을 능력이 있느냐, 재산이 얼마나 있고 얼마나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고 있느냐 등을 평가해서 돈을 빌려준다"면서 "그런데 우리는 조금씩 아껴서 모은 돈으로 기금을 만들고, 얼굴을 아는 사이니까 그 돈을 빌려주는 거다, 옛날 계모임 같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은혜씨는 대출후기에서 "제가 빌려 사용한 돈이 어디에 투자해서 불리는 은행 돈이 아니라 비슷한 마음을 경험한 청년들이 십시일반 모은 출자금이라 생각하면 더 책임 있게 잘 갚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적었다.
김진회 이사장은 "채권추심 등 상환을 강제하는 수단이 없는 상황인데도 지난 2년간 조합과 연락이 두절되는 등 상환을 아예 하지 않은 경우는 거의 없었다, 대부분은 사정이 어려워서 한두 달씩 상환이 늦춰지는 식"이라며 "어떻게 보면 기적 같은 일"이라고 말했다. 2014년 12월 기준, 청년연대은행 토닥의 상환율은 91%에 달한다.
자율이자에 대해서도 김 이사장은 "처음에는 2% 정도 이자를 받다가, 2014년 정기총회에서 어차피 우리가 이자수입으로 돈벌이 하는 조합도 아니고, 사정이 어려운 사람은 이자 없이 원금만 받고 후원금 식으로 이자를 받는 걸로 바꿨다"면서 "오히려 이후 이자수익이 더 늘었다"고 말했다.
급할 때 도움을 받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일상에서의 재무관리 습관이다. 토닥이 청년들의 재무관리 교육에 집중하는 이유다. 대출과정에서도 재무 상담을 함께 진행한다. 최근 토닥에서 인문학강좌 수강비를 대출 받은 취업준비생 장순원(32)씨는 "대출상담을 받는 과정에서 내가 돈을 어떻게 쓰고 있는지 알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 2월 25일 저녁, 신촌의 한 스터디룸에서는 토닥 부설기관인 '청년지갑트레이닝센터' 주최로 <청년인생철학특강 'Money'>가 열렸다. 대학 입학을 앞둔 스무살 신입생부터 직장인까지 10여 명이 자리를 가득 메웠다. 장순원씨도 이날 강좌를 들었다.
지갑트레이너 '피터' 한영섭씨는 "주류사회가 요구하는 기준이 아니라, 내 욕구를 중심으로 내 삶을 어떻게 풍요롭게 만들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면서 "이에 따라 생애설계와 재무관리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청년지갑트레이닝센터에서는
'가계부 워크숍'과 '돈잇수다' 등 청년재무관리 프로그램을 진행할 예정이다.
협동을 글로 배운 청년들, 이웃이 생겼다
'토닥' 운영은 어떻게? |
여느 은행처럼 대출사업을 통해 수익을 낼 수 없는 청년연대은행 토닥. 현재 토닥은 후원회원들이 내는 회비와 지난해부터 신설된 조합비로 운영되고 있다. 조합비는 반 년 이상의 논의 끝에, 사정이 어려운 회원들을 고려해 1000원부터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비슷비슷한 사정의 청년들이 만든 은행이다 보니 운영비는 늘 빠듯하다. 올해부터는 토닥 사무국 상근도 5명에서 2명으로 줄었다. 지난해까지 받았던 서울시 청년혁신일자리사업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됐기 때문. 앞으로는 '청년지갑트레이닝센터' 등을 통해 수익모델을 만들어가려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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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금융'을 지향하고 있지만, 관계라는 게 하루 아침에 생기는 건 아니다. 관계를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 토닥이 가장 고민하는 지점이다. 이날 토닥학 개론에서는 참가자들이 '내가 배우고 싶은 것'과 '내가 가르쳐줄 수 있는 것'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엑소(EXO) 10명의 이름과 얼굴', '말이 통하지 않는 상사의 업무지시를 지혜로이 거부하는 법', '건강한 밥상 먹는 법', '다이어리 잘 쓰는 법'... 참가자들이 포스트잇에 적은 '가르쳐줄 수 있는 것'들이다. '배우고 싶은 것'으로는 '이어폰 잘 고르는 법', '그림 그리는 법', '유쾌한 삶을 사는 법' 등이 나왔다. '배우고 싶은 것'과 '가르쳐줄 수 있는 것'이 일치하는 참가자들끼리 연락처를 공유했고, 한 참가자는 향초 만들기 소모임을 개설하고 싶다고 제안했다.
현재 토닥에서는 이러한 '재능나눔'의 일환으로 요가, 기타, 포토샵 배우기 등의 모임이 진행되고 있다. 조합원들의 이사를 돕는 '일손나눔'을 하기도 한다. 조합원 가운데 변호사가 있어 무료로 법률 상담을 해주기도 한다. 김진회 이사장은 "토닥의 가치는 협동"이라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갑자기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돈으로 다 해결되는 게 아니다. 지금 우리는 이웃이 사라진 시대에 살고 있다. 옛날 시골에 옆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 까지 다 알고... 이런 이야기는 전설처럼 내려온다. 지금은 '우리 앞집에 사이코패스만 안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니까. 그런 현실 속에서 우리는 이렇게 얼굴을 보고 함께 만나는 활동을 통해서, 힘들 때 연락해서 하소연도 할 수 있고 토닥 씨앗도 쌓고, 급할 때 대출도 받을 수 있다. 우리 청년들은 협동을 글로 배웠을 뿐, 경험이 없다. 우리는 그런 가치를 지금 함께 (경험)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청년연대은행 토닥 다음 카페 http://cafe.daum.net/ybank1030 전화번호 02-332-58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