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콘서트'를 열었다는 이유 등으로 구속된 황선 희망정치연구포럼 대표가 구속영장 실질심사에서 겪은 일과 앞으로 진행될 재판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담은 글을 남편인 윤기진씨에게 편지로 보내왔다. <오마이뉴스>는 황선 대표가 윤기진씨에게 보내온 편지 내용을 몇 편에 걸쳐 싣는다. [편집자말] |
2007년 10월, 드디어 2차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되었다. 참여정부 들어서자마자 1차 남북 정상회담과 관련한 특검이 진행되었고 그로 인해 많은 이들이 상처를 받기도 했다. 그리고 영호남 지역주의 극복에는 관심이 있어도 남북분단 극복에는 무관심인 듯한 정권 주변부의 분위기도 민족문제 관련해서 국민의정부만큼의 보폭은 기대하기 힘들게 했다. 결국 참여정부 임기 마지막 해가 되면서 아예 기대조차 접은 사람들도 많았다.
한데 2차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된 것이다. 나의 모든 관심은 노무현 대통령의 육로 방북, 그 한 걸음 한 걸음에 쏠려 있었다. 1차 남북 정상회담 때는 TV도 없는 대구교도소 독방에서, 분단 반세기가 지나 성사된 정상 간 만남을 상상만 하며 애타했다. 그때도 그랬지만 2007년 2차 남북 정사회담 때도 이 경사에 뜻밖의 사건사고가 초를 치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기쁨과 기대가 클수록 걱정도 클 수밖에 없었다.
4·19혁명으로 독재자를 끌어내리자 군사쿠데타로 더 긴 독재를 맞았고, 6월항쟁으로 민주승리를 맛보자니 KAL858기가 사라진 것 등의 역사를 아는 이들은, 뜻밖의 경사에 마음을 사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무튼 나는 1차 남북 정상회담 때 대구교도소에서 무사히 남북 정상회담이 진행되길 기원하며 회담 기간 내내 절을 했다. 바로 그 마음으로 2007년 가을에는 TV 앞을 지켰다.
북의 집단체조를 실제로 본 건 두 번이다. 처음엔 1998년 대학생 대표로 방북했을 당시 김일성경기장에서, 두 번째는 산통이 와서 반도 못 봤으나 2005년 10월 10일 능라도 5·1경기장에서 펼쳐진 '아리랑' 공연. 헌데 내가 <아리랑>이라는 시를 쓴 것은 이 두 번의 경험으로 감동에 겨워서가 아니었다. TV에서, 그것도 아리랑 본 공연이 아니라 관중석을 보다가 쓴 것이다.
바로 2007년 노무현 대통령의 방북 당시 평양 능라도 5·1경기장에서 그곳의 동포들이 환영하는 마음을 담아 '아리랑'을 공연한 것에 노 대통령이 기립박수로 인사했을 때, 덩달아 그 곳의 모두가 기립하여 남북 가리지 않고 서로 '고무찬양'했을 때, 그 표정과 박수 소리, 그 환호성을 TV 보도를 통해 본 나는 <아리랑> 시를 쓰지 않을 수 없었다.
남북 동포의 기립박수 묘사가 '북한 사회주의 미화찬양'이라니...
아리랑 꽃이야, 아무 때나 피어도 곱지만 한 가을 대동강 변에 만발한 꽃송이 곱고 고와라 흐린 하늘도 황홀한 그 빛을 가리지 못해 능라교 아래 탐스런 잉어 떼 흥겹게 비늘을 반짝이고 능라도 연꽃 환호에 놀라 화들짝 벌린 꽃 잎 속 꽉 들어찬 석류 알알처럼 빛나는 것은 심청이보다 갸륵한 겨레의 마음. (2007년 10월)시에서 대동강 변에 만발한 꽃송이는 5·1경기장이다. 노동절을 기념해 지은 경기장 이름과는 좀 거리가 있게 느껴지겠지만 5·1경기장은 연꽃과 퍽 닮았다. "능라도 연꽃/ 환호에 놀라/ 화들짝 벌린 꽃 잎 속"에 꽉 들어차 있는 것은 마음을 다해 환영하고 그 환대에 기립박수로 화답하는 "심청이보다 갸륵한/ (남과 북) 겨레의 마음"이었다.
안타깝게도 검찰은 이 시 <아리랑>을 두고 다음과 같이 오독했다.
"<아리랑> 제목의 시는 북한 대동강 변과 능라도에 핀 꽃송이들을 우리 민족의 정서가 담긴 아리랑 공연으로 비유하며 북한 사회주의체제를 미화 찬양하는 내용."(검찰의 구속영장 청구 사유 중)이렇게 읽힐 수도 있구나…. 이쯤 되면 나의 표현력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가, 자괴감까지 느껴지는 것이다.
2015. 2. 9. 황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