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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위기를 기회로 여기는 사람에게는 즐거움이 함께합니다. 그가 품는 희망은 현실로 이루어집니다. 그동안 너무나 아파서 가슴이 막막했던 문제들을 해결해 오며, 작기만 했던 가능성은 어느덧 기대 이상으로 실현됐습니다. 그리고 삶의 희망을 갖게 해주었습니다. 그 과정들을 잘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중심에는 '사람은 상처 받고 고통만 당하기엔 정말 소중한 존재'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약 24년(1991~2014년) 동안 조카와 함께 울고, 웃던 나날들의 경험이, 어떻게 풍성한 열매로 자리하게 되었는지 하나하나 기록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 기자 말

현실적으로 볼 때, 덕이는 아무래도 주위 사람들로부터 '다르다'거나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냉대나 무시를 접할 상황들이 일반인들에 비해 더 자주 있을 거라고 보았다. 그러다보니 남들의 부정적인 태도를 잘 참고, 그들을 이해할 수 있다면 덕이 스스로를 보호하고 지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덕이에게 꼭 필요한 특성으로 '참을성'을 꼽아 보았다.

거기에 더하여 스스로 소중한 존재라는 강한 믿음, 다른 사람은 아니더라도 고모나 할머니로부터 절대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는 확신을 지니게 된다면, 외부의 압력, 상황들에 쉽게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 거라 여겼다. 4700년 이상 살아있는 '므두셀라' 나무의 뿌리처럼 말이다. 므두셀라 나무의 뿌리는 아주 깊이 박혀, 흙과 돌을 꿋꿋하게 잡고 있다. 따라서 지진이 나지 않고는 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덕이가 참을성을 기르고, 자신이 사랑받고 있는 소중한 존재임을 알게 된다면 굳건히 자신의 길을 갈 수 있으리라 여긴 순간부터 오늘날까지 계속 '참을성'과 '이해심' 그리고 사랑받고 있다고 여길 수 있도록 지도하는 중이다. 좋은 점들을 체득하기는 오랜 시간과 끊임없는 반복을 필요로 하지만 그것이 무너지기에는 너무나 빠르기에.

지쳐서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틀림없이 때가 되어 이루어 질 것이라는 희망으로 버티고 또 버티었다. 나에게 대표적으로 진정한 사랑의 실천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해준 친구가 있었다. 영국에서 생활하던 중, 1989년도에 내가 이사를 해야 하는 상황이 있었다. 나는 남에게 의지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는 이유로 가능하면 혼자 이사를 해볼 계획을 세웠으나, 혼자로는 어렵고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이사업체에 의뢰하기에는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워 하루 전까지 미루다가 한국 친구에게 부탁해 보았다. 거절이었다. 스케줄이 있다고 했다. 그럴수 있었다. 그것도 하루 전에 부탁을 했으니... 어떻게 할까 궁리하다가 영국 친구에게 이야기를 하자 마자 그 친구의 대답, "내가 기꺼이 함께 도와주겠다"고 한다.

충격이었다. 평소 주말 활동이 많았던 영국 친구에게 어떻게 그렇게 쉽게 "돕겠다"고 대답을 줄 수 있었는지 물어 보았다. 그 친구는 "원래는 내일 스케줄이 있지만 지금 옥숙에게는 내 도움이 꼭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그래서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고 했다. '지금 너에게 내가 꼭 필요하므로 우선 너를 돕겠다'는 것이다. 이는 평소 나의 사고체계를 완전히 바꿀 수 있을 정도의 놀라움이었다.

갑자기 이런 예가 떠올랐다. 오토바이 운전자가 교통사고로 부상을 당해 응급실에 올 경우, 의료진은 그 사람이 사고의 가해자인지, 피해자인지와 무관하게 즉시 그 사람에게 필요한 응급조치를 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 주위에서 도움을 필요로 할 때, 우리가 먼저 해야 할 일은 도움을 베푸는 것, 그것이 상대를 위한 진정한 사랑의 태도란 걸 그 친구를 통해서 깨닫게 되었다. 의미있는 경험이었다.

오늘날 내가 상담하다 보면 가끔 가족들 간에 애정보다는 서로를 원수 보듯이 하는 가족을 만나는 경우가 있다. 그 원인을 알고 보면 각 가족 구성원들이 각각 자기 위주로 사랑하기 때문이었다.

"내가 너를 생각해서 이렇게 해 주었는데 너는 어떻게 모를 수가 있냐"고 한다. 그러나 모를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자기가 사랑 할 수 있을 때만 상대에게 관심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 때 슬프게도 상대가 원하지 않았다면, 되려 귀찮은 존재로 다가왔을 수 있다. 상대가 필요할 때는 '나 몰라라' 하고 불필요할 때 관심을 보이니까 모를 수 밖에... '서로의 관심이 통해야 할 텐데'라는 아쉬움을 경험한다.

그러므로 시기의 적절성에 따라서, 나의 사랑한다는 표현에 상대는 두 가지 반응을 보일 수 있다. 상대가 나의 사랑 표현에 '저 사람은 나를 전혀 사랑하지 않아'와 다른 경우에는 '저 사람이 진정으로 나를 사랑하는구나'라고 느낄 때가 있는데, 그것은 내 위주의 사랑인지, 그 사람에게 적절하게 사랑 표현을 하는지에 따라 다르다.

나는 전자를 '정'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상대가 원하지 않고, '이제는 되었다'고 하는데도 '하나 더'라고 권하는 개념이랄까. 그러나 사랑은 '정'에 '이성'을 더한 것으로 분별력을 함께 지닌다. 이 때 상대는 '사랑 받고 있다'고 느끼게 된다.

나 또한 덕이가 나의 사랑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랐다. 이를 위하여 가능하면 매사에 덕이와 관련되어서는 비록 덕이가 자기 의사표현에 정확성이 덜 하더라도 '무엇을 원하는지', '왜 하고 싶은지', '어떻게 하고 싶은지', '그렇게 했을 때 도움되는 것이 무엇인지' 등에 대하여 의견을 물어보고 그 점을 존중하려고 노력하는 중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나와 덕이를 곤란하게 하는 경우가 있었다.

지금은 곳곳에 대형마트가 있어서 계산하기 위해 계산대 앞으로 나올 정도면 이미 선택은 끝나고 계산만 하면 되지만 1990년대에 덕이와 함께 일주일에 1-2회 정도 동네 문방구와 수퍼마켓을 비롯하여 이곳 저곳을 들렀을 때는 다양한 일들이 있었다.

대표적으로 자주 들른 두 곳은 문방구와 수퍼마켓이었다. 나는 덕이가 원하는 것을 차분하게 신중히 선택할 수 있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덕아, 너가 원하는 것을 골라 보렴. 나는 너가 원하는 것을 고를 때까지 기다려 줄 수 있단다."
"응"

'응'이라고 대답하고 나서 자기가 원하는 것을 바로 가지고 계산대로 오는 경우도 있으나 그렇지 않은 경우가 훨씬 많았다. 그럼에도 나는 덕이를 존중해주고 싶어서, 덕이가 원하는 것을 골라 올 때까지 기다렸다. 그 때마다 나는 계산 하시는 분의 눈치를 살폈다. 유쾌한 표정은 아니셨다.

이제는 용기를 내어 계산하시는 분께 우리의 상황을 정중히 설명할 필요가 있었다. 눈치 빠른 덕이가 당황하거나 사장님의 불편해 하는 시선 때문에 자기의 선택을 포기하지 않도록 돕기 위해서 나는 계산하시는 분께 미리 이런 말을 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그런 표현을 어떻게 했을까 할 정도로 생뚱맞아서 피식 웃게 된다.

"사장님(계산하는 분)께서 보시기에 우리가 결정하기까지 답답해 보이시더라도 가능하시다면 기다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는 지금 덕이와 함께 기다리고 참는 것을 배우는 중입니다. 더 나아가 존중하는 습관을 배우고 실천하는 중이라서요. 제가 부족해서 연습이 오래 걸리네요."

라고 계산하는 분께 미리 말씀드리면 그 다음부터는 감사하게도 이해를 해주시고 덕이가 계산대에서 물건을 바꾸기 위해 시간이 걸리더라도 흥미롭게 바라봐 주셨다.

이를 통해 나는 덕이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참을성과 기다릴 줄 아는 미덕을 지니길 간절히 바랐다. 지금은 그런 상황이라면 어떻게 할까 아마도... 모든 것은 때가 있는 것 같다.


#감성과 이성#영국과 한국#정과 사랑#소통과 믿음#노력과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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