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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선생의 청첩장
D선생의 청첩장 ⓒ 김소연

새빨간 카드. 선명하게 찍힌 두 개의 '희(喜)'. 한 쌍의 꽃과 새는 탐스럽게 생동하고, 수묵으로 흘려 그린 물고기는 잔잔하게 유영한다. 그 여백 사이로 불쑥 튀어나온 글자,

"2012년 11월 18일 11시 38분, 동하이 호텔 비펑탕(东海 大酒店 避风堂)"

20대 후반 D선생의 청첩장에는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했다. 빨간색은 행운과 성공을 상징해서 좋아하고, 물고기(魚)는 '부유하다, 넉넉하다' 뜻을 가진 '裕(yu)'와 발음이 비슷해서 좋아한다. 중국 전통 그림에 그려진 물고기와 관광지의 물고기 공예품도 그런 의미이다. 여기에 기쁠 희(喜)가 중복된 '囍', 꽃과 새로 비유되는 남녀 한 쌍….

빨간색, 8, 희(囍)... 중국 결혼식의 필수요소

그런데 결혼 시간은 왜 하필 38분일까? 기억하기 쉽게 딱 떨어지는 12시나 11시 30분이 아니라, 굳이 38분인 이유는? 중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숫자 8은 '돈을 많이 번다(發財)'의 '發(fa)'와 발음이 비슷하다. 숫자 8이 '부자가 되다, 일이 술술 잘 풀린다, 사업이 번창하다'를 뜻하니, 특별한 날에 그 숫자를 하나라도 더 보태려고 한다. 오죽했으면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을 원래 2008년 8월 8일 오후 8시 8분 8초에 하고 싶어 했을까. (실제로는 8월 8일 오후 8시에 했다)

숫자 8에 대한 애정은 생활 곳곳에서 나타난다. 상품 가격 끝자리가 8이거나, 전화번호나 휴대폰 번호에 8이 많이 들어갈수록 비싸진다. 언젠가 쓰촨성에서는 여덟 개 모두가 8로 된 전화번호 가격이 233만 위안(약 4억17000만 원)이었다. 중국 레스토랑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방도 역시 888호인 경우가 많다. 중국인이 빨간색 아우디를 유난히 좋아하는 것도 빨간색에, 8을 하나도 아닌 둘을 겹친 듯한 아우디 로고 때문이란다. 8에 대한 애착이 그 정도이니 경사스러운 날엔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공대 국제학원 D선생은 2012년 11월 18일 11시 38분 동하이호텔 비펑탕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내가 세 번째로 가본 중국인 결혼식이었다. 첫 번째와 두 번째는 2009년 가을에 있었던 Z선생과 W선생의 결혼식이었다. 두 사람의 결혼식은 보통사람들의 보통 결혼식이었다. 청첩장은 마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었다. 빳빳한 빨간색 카드에 신랑신부 그림이 금박으로 찍혀 있어서 속지를 보지 않아도 청첩장임을 알 수 있었다. 디자인에 은유나 비유가 필요 없고 따로 주문하는 제작방식도 아니었다. 결혼식도 시내 흔한 호텔에서 치렀다.

그러나 D선생의 결혼식은 좀 다를 것 같았다. 청첩장의 모양새도 달랐지만, 무엇보다 그녀의 아버지가 산둥성 어느 대학교에서, 총장보다 높은 당 서기였다. 결혼식이 열리는 동하이 호텔만 해도 칭다오의 역사지구와 자연풍경구가 만나는 지점에 있는 이름난 곳이었다. 당연히 결혼식 규모와 형식이 대단할 터, '이번에는 색다른 결혼식을 볼 수 있겠군'하고 기대를 했다.

 W선생이 결혼했던 시내 한 호텔의 결혼식장
W선생이 결혼했던 시내 한 호텔의 결혼식장 ⓒ 김소연

하지만 기대는 어긋났다. 일단 하객수가 적었다. Z선생과 W선생의 결혼식 때는 국제학원 직원들, 신랑 신부의 친구들과 친척들로 시끌벅적했다. 평소에 자주 보던 사람들이 모여 유쾌하고 장난스럽게 치른 결혼식이었다. 하지만 D선생의 하객들은 그 수가 적기도 했지만, 다들 나이가 지긋해서 묵직한 분위기를 풍겼다. 외국인은 나 혼자뿐이었다. 이공대 총장 내외와 국제학원 동료 6명을 빼면 다들 처음 보는 얼굴들이었다. 예식장도 층고가 높아서 개방감은 있지만, 장식은 검소한 편이었다.

알고 보니 이유가 있었다. 결혼식 한 달 전에 정권을 잡은 시진핑 중국공산당 총서기가 부패척결을 당면 과제로 내세운 탓이었다. 당 서기인 D선생 아버지는 괜한 오해를 살 만한 일을 해서는 안 됐다. 예식장은 몇 달 전에 예약해 놨으니 어쩔 수 없지만, 하객수가 많으면 부조금도 많아지니 자칫 권세를 이용한 비리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결혼식 과정은 Z선생과 W선생의 결혼식과 같았다. 하객이 식장에 도착하면 먼저 부조금을 낸다. '囍'가 인쇄된 홍바오(红包, 상여금이나 세뱃돈 혹은 부조금을 넣는 빨간색 봉투, 뇌물을 상징하기도 한다)에 넣어서 낸다. 한국처럼 흰색 봉투를 내밀어서는 안 된다. 중국에서 흰색 봉투는 초상집에서나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조금 액수는 중국인이 체면을 중시하는 탓인지 상당히 높다. 아주 친한 친구라면 한 달 월급을 통째로 내기도 하고, 관시(关系, 인맥)가 걸린 관계라면 몇 만 위안도 아낌없이 내놓는다. 하지만 그 관계가 일반적이고 젊은 층이라면 계산법이 좀 다른 것 같다. D선생의 젊은 동료들은 일인당 부조금을 결혼식에 나오는 음식 값보다 조금 높은 금액으로 정한 후 모아서 냈다. 부조금을 내면 방명록에 이름과 인사말을 남긴다.

그 다음엔 안내자를 따라 지정된 좌석으로 간다. 테이블마다 각자의 이름이 붙여져 있는데, 친척, 직장 동료, 친구별로 그룹을 만들어서 같은 테이블에 배치가 된다. 테이블에는 개인용 접시, 국그릇, 찻잔, 술잔, 수저가 세팅되어 있고, 그 옆에는 하객에게 주는 기념품이 놓여 있다. 역시 '囍'가 인쇄된 홍바오 안에 사탕과 초콜릿이 들어 있다. 한국에서 언제 국수를 먹을 수 있냐는 말을 중국에서는 언제 사탕을 먹을 수 있냐고 한다.

테이블 가운데에는 포도주, 중국 전통 술인 바이주(白酒), 담배가 쌓여 있다. 하객들이 자리에 앉으면 중국 코스 요리가 나온다. 음악이 흐르고 무대 한 편에서는 신랑 신부가 자라온 과정과 그들의 연애사를 보여주는 슬라이드 쇼가 시작된다. 하객들은 식사를 하다가 슬라이드 쇼를 보며 수다를 떤다.  

드디어 시작된 결혼식,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

드디어 결혼식 1부가 시작되었다. 음식냄새가 진동하는 식장 안에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와 연미복을 입은 신랑이 입장했다. 이야기 소리로 왁자지껄하던 실내는 박수갈채와 D선생의 애칭을 부르는 소리로 가득했다. 사회자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시작을 알리고, 신랑신부를 상대로 짓궂은 질문과 장난을 했다. 여기까지는 한국과 얼추 비슷했다.

다른 점은 신랑신부가 함께 입장을 하고 주례사가 따로 없이 하객 중에서 한 명이 축사를 한다는 것이었다. 그 다음에는 신랑·신부 아버지의 인사가 있었다. 신랑 아버지는 잔뜩 긴장한 채 더듬더듬거리다가, 중간에 잠시 할 말을 잊기도 했다. 반면 신부 아버지는 울림 좋은 목소리로 강약을 조절하며 능숙하게 말했다. 여기저기서 "역시 당 서기야!" 감탄이 쏟아졌다.

대조적인 두 아버지를 보면서 나는 새삼 D선생의 러브스토리가 떠올랐다. 신랑과 신부는 원래 캠퍼스 커플이었다. 그러나 D선생 부모가 그 둘의 교제를 줄곧 반대해 왔다. 너무나 평범한 집안의 평범한 남자가 사윗감으로 성에 차지 않았기 때문이다. 계속 결혼 반대에 부딪힌 D선생은 대학 졸업 후 혼자 호주로 유학을 갔다. 어쩌면 그 때 그녀의 부모는 안심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D선생이 귀국을 하고 취직을 해서도 그들의 관계는 계속되었다. 결국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었다.

1부 예식 끝머리쯤 신랑과 신부가 각자 가져온 선물을 교환했다. 신랑이 준비해온 것은 주걱·뒤집개·국자였고 신부는 요리책을 가져왔다. 한국인이라면 이걸 두고 이렇게 해석할 것이다.

신랑 : "내가 선물한 조리기구로 맛있는 음식 많이 해줘."
신부 : "이 요리책을 보고 네가 먹고 싶은 음식을 골라봐. 내가 다 만들어줄게."

그러나 중국인이라면? 천만의 말씀이다. 선물의 의미는 이렇다.

신랑 : "이제부터 집안에서 요리는 내 차지, 이걸로 열심히 요리할게."
신부 : "그래. 이 요리책 보면서 열심히 배워."

결혼식 2부는 붉은색의 화려한 드레스로 바꿔 입은 신부와 양복 차림의 신랑이 모든 테이블을 돌면서 하객들과 인사를 나눈다. 축하 인사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하객 한 명씩 신부에게 적포도주를, 신랑에게는 바이주(白酒, 도수가 높은 중국의 전통 술)를 따라준다. 신랑 신부는 하객들이 주는 대로 술을 받아서 '원샷'을 한다. 나는 처음 그 광경을 봤을 때 기겁을 했다. 저러고도 살아남을까? 중국인들은 다 술고래인가?

여기에는 속임수가 있다. 적포도주는 김빠진 콜라이고 바이주는 광천수다. 자세히 보면 신랑 신부가 테이블을 돌 때 옆에 따라다니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이 들고 있는 쟁반 위에 광천수를 담은 바이주 병과 콜라를 담은 포도주 병이 있다. 하객은 그 쟁반에 있는 술병을 들어 신랑 신부에게 따라 준다.

그러니 신랑 신부가 술에 취할 일은 없다. 다만 음료수를 많이 마셔서 배가 부를 뿐이다. 하지만 이것 역시 방법이 있다. 쟁반을 든 사람은 술병뿐만 아니라 빈 통도 들고 다닌다. 신랑 신부가 힘들어 할 때쯤 그 통에 살짝 음료수를 버리고 빈 잔을 다음 하객에게 내민다.

시끌벅적한 아파트 앞 결혼식 식전행사

 아파트에서 벌어지는 결혼식전 행사
아파트에서 벌어지는 결혼식전 행사 ⓒ 김소연

중국 결혼식은 예식장에서 하는 1·2부가 전부는 아니다. 행사는 결혼식 당일 아침부터 시작된다. '쨍강쨍강' 날카로운 꽹과리 소리, 둥둥 울려 퍼지는 북소리, 펑펑 터지는 폭죽, 폭죽소리에 놀란 자동차들이 울어대는 소리, 중국 전통 사자춤을 추는 젊은이들이 내뿜는 기합 소리와 지상에 발 내딛는 힘찬 소리... 길일이 낀 주말 아침에 아파트 광장에서 이런 소리가 나오면 그곳에는 그날 결혼식을 올리는 신부의 집이 있다.

그 개막식이 끝나면 신랑은 자신이 준비해온 웨딩카로 신부와 하객을 결혼식장으로 데리고 간다. 그런데 그 웨딩카의 대수와 종류가 장난이 아니다. 체면을 목숨처럼 여기는 중국인은 무리를 해서라도 비싼 외제차를 빌려서 준비한다. 차가 비쌀수록, 차 대수가 많을수록 체면이 선다. 100만 위안이 넘는 차를 빌리려면, 한 대당 렌트비가 5000위안이 넘는단다. 이런 차를 한 두 대도 아니고 6, 8, 10... 짝수로 빌린다. 가장 인기 있는 차는 역시 붉은색 아우디이고, BMW 컨버터블과 람보르기니도 인기가 많다.

꽃과 리본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웨딩카들이 도로 위를 한 줄로 달리는 것을 보면,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카퍼레이드가 따로 없을 지경이다. 요즘은 여러 친구들 차를 빌려서 웨딩카로 이용하는 알뜰족도 늘어나고 있다. 그럼에도 중국 젊은이에게 결혼 비용은 대단한 골칫거리다. 듣자하니 주택 마련 비용을 제외한 도시평균 결혼 비용이 10만 위안(한화 1790만원 가량)이 넘는다고 한다. 대졸자 초봉 월급이 보통 3000위안 정도이니, 부모의 도움이 없거나 빚을 내지 않으면 그 비용을 감당할 수가 없다. 그러니 결혼비용이 사회적인 문제라는 말이 나올 만하다.

사실 호화 결혼식 문제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개혁개방 전까지만 해도 중국의 결혼식은 단출했다. 정부 산하의 결혼 등록 부서에 가서 결혼 등록을 하면 정식 부부가 되었다. 연회랄 것도 없이 동네사람들과 가까운 친척을 불러 함께 식사하고, 기념품으로 사탕과 담배를 돌리면 됐다. 혼수품도 그저 이불 몇 채만 마련해서 단웨이(单位, 단체·직장 등의 조직)가 제공하는 신혼집에 들어가면 그만이었다.

개혁개방 이후 계획경제가 시장경제로 바뀌면서 결혼식도 시장의 논리를 따르게 됐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진 사회, 서구 문화의 영향, 한 자녀 정책으로 태어난 소황제와 소공주, 경제력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세태, 뿌리 깊은 체면의식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허례허식의 결혼 풍조가 생겨난 것이다.

결혼 시즌이 되면 칭다오 바닷가와 구도심의 독일 조계지는 웨딩 사진을 찍는 예비부부들로 북적인다. 끝없이 펼쳐진 푸른 바다, 금빛 백사장에 새빨간 아우디를 배경으로 하얀 웨딩드레스와 연미복을 입은 연인들이 한껏 폼을 잡는다. 독일풍 고전주의 건축 앞에 선 예비부부는 어느 왕국의 왕자와 공주라도 된 듯 연출을 한다. 그것도 모자라 아예 한국에 와서 웨딩촬영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결혼식장은 전문 예식장이 아닌 호텔에서 연회 형식으로 한다.

웨딩사진 찍기도 어려운 농민공들... '벌거벗은 결혼식'

물론 이것도 어디까지나 도시 중상류층의 이야기이다. 농촌 주민이나 농민공은 사정이 다르다. 일단 농촌에는 젊은 여자가 귀하다. 아직도 남아선호 사상이 남아 있는 농촌에서는 30년 넘게 한 자녀 낳기 운동이 시행되면서 남녀 성비 균형이 깨졌다.

심한 경우에는, 성별 검사를 해서 여아이면 낙태를 하거나, 성별을 모르고 낳더라도 몰래 죽이거나 버리기도 한다. 반대로 남자 아이는 유괴되어 팔리기도 한다. 태어난 딸들은 자라면 도시로 가서 농민공이 된다. 농촌에 남아 있는 총각들은 신부를 얻기 위하여 여성을 납치하거나 인신 매매단에게 구매하기도 한다. 어떤 마을에서는 납치한 여성과 강제로 결혼한 뒤 그 여성이 도망 갈까봐 마을 주민 전체가 감시하는 경우도 있었다. 요즘은 인신매매 대상이 중국인뿐 아니라 중국 국경과 인접한 동남아시아 여성, 탈북여성에까지 이른다.

도시로 나온 농민공은 대개 출신 지역별로 만나서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한다. 결혼이라고 해봐야 도시 바링허우들이 하는 결혼식은 엄두도 못 낸다. 대부분 옛날식으로 단출하다. 휴가 때 같이 고향에 가서 가족끼리 식사하고 결혼 등록을 하는 것으로 끝낸다. 간혹 결혼식을 못하더라도 웨딩촬영만큼은 추억으로 남기고 싶어 하는 농민공이 있다. 내가 칭다오에서 만난 22살의 동갑내기 농민공 커플은 칭다오 바닷가에서 웨딩촬영을 하기 위해 그동안 모아둔 돈을 탈탈 털었다.

없는 형편에 겨우 기본적인 절차만 밟은 결혼을 두고 생겨난 신조어가 있다. 그냥 듣기에도 춥고 쓸쓸한 기분이 드는 '뤄훈(裸婚, 벌거벗은 결혼)'이다.

간혹 칭다오에 온 한국인이 중국인의 결혼과정을 보면서 오해하는 대목이 있다. 한국은 보통 결혼식을 먼저 하고 혼인신고를 하지만, 중국은 그 반대다. 중국은 결혼 등록 부서에 가서 결혼증명서를 먼저 받는다. 그때 신혼집이 마련된다면 결혼생활을 먼저 시작하고, 결혼식은 나중에 천천히 택일해서 올린다. 이것 역시 개혁개방 이후 생긴 현상이다. '결혼식=결혼'보다는 '혼인신고=결혼'이라는 정서가 더 앞서는 모양이다.

D선생의 결혼식이 6개월 정도 남았을 무렵이었다. 회식자리에서 한·중 교수들이 서로 근황 이야기를 하다가 그녀의 결혼 이야기가 나왔다. "얼마 전 혼인신고를 했고, 지금은 새 집에서 알콩달콩 함께 잘 살고 있다", "결혼식은 늦가을에 치를 것이다"했더니 한국에서 온 교수 한 분이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동안 많이 힘들었겠네요. 부모 반대가 오죽했으면 동거부터 했겠어요. 이제라도 결혼을 하게 됐다니 다행입니다."

중국인들은 처음에 '이게 무슨 말이지?' 표정이었다. 한국 유학파인 W선생이 한국 사정을 떠올리며 한참을 웃다가 그 교수에게 설명을 해줬다.

"중국과 한국의 결혼문화는 다릅니다. 중국은 대개 혼인신고를 먼저 하고 결혼식을 나중에 합니다. 법적인 부부가 된 상태에서 같이 사는 것이니까, 한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혼전 동거와는 의미가 다르지요."

결혼식을 마친 D선생 부부는 신혼여행을 떠났다. 이미 결혼생활을 한 마당에 신혼여행이 뭐 그리 설렐까 싶지만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17일간의 결혼 휴가 기간, 한국에서는 꿈에나 가능한 일이겠지만 이공대에서는 당연한 현실이다. 그 시간을 남김없이 보내려고 그들은 멀리 외국으로 날아갔다. 어렵사리 이뤄낸 그들의 사랑과 결혼을 축하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는 '벌거벗은 결혼(裸婚)'을 하는 다른 젊은이들의 처지가 안타깝다.


#중국식결혼#칭다오이공대#바링허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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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이 좋다. 길이 없지만, 내가 걸어가면 길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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