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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스로는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알고 실력도 썩 괜찮은 '베스트 드라이버'라고 여겨왔는데, 아이의 눈에는 참을성 없고 난폭한 운전자였던 거다.
스스로는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알고 실력도 썩 괜찮은 '베스트 드라이버'라고 여겨왔는데, 아이의 눈에는 참을성 없고 난폭한 운전자였던 거다. ⓒ flickr

"아빠는 다 좋아. 운전할 때만 빼고."

올해부터 내 출근길이 아이의 등굣길이다. 출근 시간과 등교 시간이 오전 8시 반으로 같은데다, 아이가 넘어지면 나의 직장과 코 닿을 거리에 있는 중학교로 배정 받았기 때문이다. 중학생만 돼도 아빠와의 관계가 소원해진다는데 불과 15분 남짓이지만, 매일 부자지간의 대화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어 나름 행복하다. 그런데, 오늘 아침, 아이가 대뜸 이렇게 나무랐다.

"출근 시간 바쁜 건 알겠는데, 앞 차에 바짝 붙이거나 갑자기 차선을 바꿀 때는 솔직히 겁이 나. 앞자리에 앉기가 무서울 정도야. 아빠는 잘 느끼지 못하겠지만, 운전이 조금 서툰 사람이 앞을 막기라도 하면 아빠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해. 표정만 봐서는 당장 뛰어가 덤벼들 기세야. 경적 소리와 거친 말투가 누가 더 센지 서로 경쟁하는 것 같아."

잔뜩 별러 온 말투다. 스스로는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알고 실력도 썩 괜찮은 '베스트 드라이버'라고 여겨왔는데, 아이의 눈에는 참을성 없고 난폭한 운전자였던 거다.

옆에 아이가 타고 있는데... 고작 1~2분 늦었다고 호들갑

오늘 아침만 되짚어 봐도 그랬다. 신호가 바뀌었는데도 출발하지 않는다며 습관처럼 경적을 울려댔고, 좌회전 신호를 넣지 않고 갑자기 직진 차선을 막아선 차를 향해 상향등을 잇달아 비추며 험담을 쏟아냈다. 옆에 아이가 타고 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늦어봐야 고작 1~2분인데, 그 시간을 못 참고 아이 보는 데서 호들갑을 떤 것이다.

가만 생각해보면, 그 차는 초행길이었을 수도 있고 방향지시등이 고장 났을 수도 있다. 설령 그렇지 않다 해도 그렇게 여기면 한결 마음이 편해질 텐데, 마치 본능처럼 발끈 화부터 냈던 것이다. 직접 쫓아가 따질 수도 없고, 결국 나만 스트레스 받을 뿐인데도 끊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한적한 도로든, 꽉 막힌 고속도로든, 일단 운전석에만 앉으면 어김없이 '병'이 도진다.

얼마 전 시내에 갔다가 바로 곁에서 목격한 장면이다. 한 승용차가 유턴하기 위해 맨 바깥쪽인 3차선에서 1차선으로 접어들며 2차선을 살짝 걸치고 있었다. 2차선을 빠른 속도로 돌진하던 택시 한 대가 요란한 경적을 울리며 멈춰 섰다. 뒤따르던 차도 없고, 바깥 차선도 비어 있어 그냥 비껴가면 될 일이었다. 그러고는 한참을 그 자리에 멈춰서 있었다.

질주하던 속도로 보면 무슨 급한 손님이라도 태우러 가는 줄 알았는데, 아예 비상등을 켠 채 창문을 내리고 그 차를 향해 험한 욕설을 쏟아냈다. 앳돼 보일 만큼 젊고 훤칠한 기사의 거친 입은 그 반듯한 용모와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그럼에도 화가 덜 풀렸는지 자리를 떠나면서 까지도 보란 듯 창문 밖으로 가운뎃 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분풀이를 했다.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지거리를 들으며 진땀을 뺀 그 차에는 어린 아이가 유치원 가방 같은 걸 멘 채 타고 있었다. 운전대를 잡은 엄마는 그 순간 무슨 생각을 했을까. 물론, 나 같으면 그렇게 운전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교통의 흐름을 감안하자면, 조금 멀더라도 다음 유턴 표지가 있는 곳까지 가는 게 맞다. 안전을 위해서도 그게 당연하다.

운전이 서툴러 벌어진 일이건, 잘못 배운 운전 습관 때문이건, 그 정도로 욕먹을 일은 분명 아니다. 누가 봐도 택시 기사의 행동은 지나쳤고, 되레 그 소란은 이후의 교통 흐름을 방해했다. 오가는 차마다 무슨 구경거리라도 되는 양 주변을 힐끗거리며 속도를 줄였다. 미안하다며 연신 머리를 조아리는 엄마 곁에서, 아이는 울음을 터뜨렸다. 영문도 모르는 채 주눅이 든 것이다.

내가 택시 운전자의 입장이었다면 어땠을까. 가운뎃 손가락을 내보일 만큼은 아니었겠지만, 경적 소리에 짜증을 실어 마구 울려댔을 것이다. 혼잣말일지언정, 어찌 할 바 모르는 초보 운전 실력에 대해 조롱했을 것이고, '운전도 못하면서 큰 차만 타는 아줌마'에 대한 비하도 서슴지 않았을 것이다. 그 순간 옆에 탄 아이의 얼굴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원래의 성격이 운전할 때 드러나는 것인지, 아니면 운전이 사람들의 성격을 그렇게 만드는지 알 길 없지만, 20년 넘게 차를 몰면서 도로 위에서의 '아름다운 모습'은 거의 만나보질 못했다. 운전대만 잡으면 언성이 높아지고 욕설이 난무한다. 양보하면 손해라거나, 접촉 사고가 나면 일단 뒷목부터 잡고 내리라는 등의 '운전 상식'은 어느새 온 국민이 공유하는 보편적인 매뉴얼이 됐다.

꼭 운전할 때만 그런 건 아니다. 주차된 차를 두고도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이다. 요즘 들어 아파트 승강기 내에는 '연락하지 않으면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겠다'는 섬뜩한 안내문이 심심찮게 나붙고, 밤이면 비슷한 내용이 안내 방송도 종종 듣게 된다. 대개 주차 중에 범퍼를 긁고 간 뺑소니 차량을 찾는다는 내용인데, 얌체 같은 그를 두둔할 마음은 추호도 없지만, 시쳇말로 '티도 안 나는' 흠집에 고발 운운하는 게 이웃으로서 서글프다는 생각이 든다. 주차장 곳곳의 CCTV와 밤낮으로 깜빡거리는 차량마다의 블랙박스 불빛들을 보노라면 더욱 그렇다.

옆 차 범퍼 살짝 긁었더니... 대뜸 새 걸로 교체

친하게 지내는 이웃이 비슷한 일을 당한 적이 있다. 한 번은 좁은 곳에 후진으로 주차하다가 옆 차의 범퍼를 살짝 긁었다고 한다. 가까이서 봐야 눈에 띌 만큼 작은 흠집이었지만, 그냥 지나칠 수 없어 곧장 연락을 했단다. 부리나케 달려온 차주는 대뜸 범퍼를 새 걸로 교체해야겠다며, 보험 처리를 하거나 범퍼 값을 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이웃끼리 그럴 수 있느냐며 속상해 하긴 했지만, 마음씨 좋은 그를 정작 화나게 한 건 따로 있었다. 바로 그 자리에서 5만 원짜리 6장을 지갑에서 꺼내 건넸다는데, 그가 보험 처리를 하지 않은 이유가 황당했다. 고객이 원한다고 멀쩡한 범퍼를 교체해주는 건 '자원 낭비'라는 거다. 낡은 자기 차에 끼워 쓸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다고 했다.

이튿날 굳이 보험사와 공업사에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어제의 일을 설명하면서, 정비사들이 부품 상태를 진단한 후 교체를 결정하게 하면 불필요한 지출을 막게 돼 소비자에게도 이득이 되고 환경보호에도 좋지 않겠느냐며 건의했다고 한다. 바쁘다며 한사코 전화를 피했다는 걸로 봐서, 보험사든 공업사든 그를 '모자란' 사람 취급했을 게 틀림없다.

반대로 그가 피해를 본 적도 몇 차례 있다. 그때 주차장에 함께 있었는데, 누군가 밤새 그의 차 앞문을 살짝 찌그려놓고 간 것이다. 범퍼도 아니고 차문에 페인트 자국과 함께 흠집을 냈으니 발끈할 만도 하건만, 그는 문을 열었다 닫기를 반복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 더 심하게 들이 받았다면 열리지도 않았을 뻔했다며 사람 좋게 웃었다. 그러고는 끝이었다. 옆 차량의 블랙박스는커녕 그 흔한 주차장 CCTV 확인조차 요구하지 않았다.

또, 그의 차 백미러가 부서진 채 달랑거린 적도 있었다. 밤늦게 나다니는 주변 불량배들이 술김에 발길질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전에도 유사한 사례가 몇 건 있었다. 여느 사람들 같으면 관리사무소에 한달음에 달려가 야간 순찰이 소홀해서 벌어진 일이라며 목에 핏대를 세울 텐데, 그는 도리어 이렇게 제안하더란다. 차라리 그들이 스트레스를 풀 수 있도록 아파트 공원에 샌드백을 걸어두자고.

지금도 몇몇 이웃들은 그를 '이상하게' 여긴다. 너무 사람이 좋아 맨날 손해만 보고 산다며 모두가 위로 아닌 위로를 한다. 그러면서도 남에게 싫은 소리 못하고 기꺼이 손해 보며 사는 그가 제대로 인정받고 대접받는 사회가 좋은 사회라는 데에는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다. 표정만 보면, 늘 그렇게 사는 그가 손해볼까봐 애면글면하는 우리들보다 훨씬 더 행복해 보인다.

그런 그가 얼마 전 차를 없앴다고 한다. 여기저기 상처투성이인 낡은 차지만, 10년 넘게 정들었던 차를 떠나보내려니 많이 섭섭했단다. '죽이지 않고, 다른 주인에게 건넸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했다. 여하튼 직장까지 버스 노선이 마땅치 않아 출근길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니지만, 그 정도는 기꺼이 감수할 수 있단다.

차로 인해 벌어지는 이러저러한 일로 느긋했던 마음이 자꾸만 심란해지더란다. 부처 같은 그조차 차로 인한 스트레스가 적지 않았던 모양이다. 아직도 출근길 이따금 주차장에 내려가 차가 어디 있는지 두리번거릴 때도 있지만, 차 없이 지낸 요 며칠 새 부쩍 마음이 가벼워지고 나아가 '가정의 평화'가 왔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차는 애초 그에게 쓸데없는 '혹'이었을까.

오늘 아침, 운전을 거칠게 한다며 나무라는 아이에게 변명하듯 이렇게 대꾸했다. 말만 그렇게 했을 뿐, 사실 그럴 마음도, 용기도 없었다. 아이에게 운전대만 잡으면 난폭해진다는 꾸지람까지 들은 마당에 무슨 말을 못할까.

"너도 알지? '천사표' 용범이 아저씨도 차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에 차 없앤 거. 나쁜 사람 될 바에야 아빠도 차를 없애버릴까?"


#운전습관#접촉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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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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