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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1편] 사람이 죽어도, 경제가 어려워도....꿈쩍도 않는 '불가사의한' 지지율

미국인들이 즐겨 쓰는 표현 가운데 "옷장 속 해골(skeleton in the closet)"이라는 말이 있다. 남에게 드러내고 싶지 않는 수치스러운 비밀을 이르는 말이다. 영국인들은 같은 뜻으로 "찬장 속 해골"이라는 말을 흔히 사용한다.

이 관용표현의 기원은 어렵잖게 짐작할 수 있다. 누군가를 살해한 뒤, 시신을 옷장이나 찬장 속에 감춰놓은 것이다. 안방이나 부엌의 일상적이고 친밀한 공간을 끔찍한 범죄 현장으로 설정한 것이 다분히 '히치콕'스럽지만, 이 속담이 갖는 정말 흥미로운 영화적 요소는 따로 있다.

그것은 은폐장소가 매우 허술하다는 사실이다. 옷장이나 찬장은 쉽게 접근할 수 있기에, 언제든 범죄사실이 발각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신이라면 이런 곳에 시신을 감춰 놓고 발 쭉 뻗고 잘 수 있겠는가?

이런 영화 시나리오를 가정해 보자. 당신 집에 친한 친구가 놀러 와 깔깔거리며 신나게 수다를 떤다. 목이 말라진 친구가 '물 한 잔 마실래' 하며 일어난다. 당신은 당황해서 '아, 앉아 있어. 내가 가져올게' 하며 말리지만, 친구는 괜찮다며 부엌으로 성큼성큼 걸어간다. 당신은 안절부절못하고, 화면에서는 불길한 음악이 흐른다. 친구가 딸그락거리며 이리저리 컵 찾는 소리가 들린다.

대개의 속담이나 관용어가 그렇듯, "옷장 속 해골"과 "찬장 속 해골"은 우리와 다르게 사고하는 문화권의 특징을 보여준다. 이 영어 표현에 상응하는 한국 속담을 찾기는 쉽지 않다. 한국인이 대개 '시체'나 '죽음' 같은 말을 입에 담기 꺼리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덜 잔인해서일까? 하지만 한국에서는 '해골'을 찾기 위해 옷장이나 찬장을 뒤질 필요가 없다. 바로 당신 발밑에 있기 때문이다.

파기만 하면 백골이 나오는 땅에서의 '애국'

'태극기 속 리퍼트를 찾아라!' 지난단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대한고엽제전우회 주최로 열린 김기종씨의 리퍼트 미국대사 피습 규탄 집회 '한미동맹 강화로 종북세력 척결대회'에서 바람에 날리는 태극기 사이로 리퍼트 주한 미국 대사의 그림이 보이고 있다.
'태극기 속 리퍼트를 찾아라!'지난단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대한고엽제전우회 주최로 열린 김기종씨의 리퍼트 미국대사 피습 규탄 집회 '한미동맹 강화로 종북세력 척결대회'에서 바람에 날리는 태극기 사이로 리퍼트 주한 미국 대사의 그림이 보이고 있다. ⓒ 이희훈

농담이 아니다. 땅만 파면 해골이 수두룩하게 쏟아져 나오는 곳, 그곳이 한국이다. 지난 한 해만 해도 경남 진주, 전북 익산, 충북 보은, 충남 대전에서 수십에서 수백 구의 민간인 유골이 새로이, 혹은 추가로 발견되었다. 매장지 다수에서 당시 한국 경찰과 군인이 사용한 소총과 탄피도 발견되었다. 가해세력이 정부였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진실화해위원회는 군경뿐 아니라, 정부의 사주를 받은 우익단체들도 민간인 학살에 적극 가담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런 식의 유해 발굴은 너무 흔히 듣는 이야기여서, 우리에게 아무 감흥을 주지 못한다. 우리들 다수는 정부가 그 유해들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알지 못하며, 또 어떻게 처리해야 옳은지에 대해서도 별다른 견해를 갖고 있지 않다. 한마디로, 우리는 죽음에 대해 무관심하고 무감각해진 것이다. 우리는 어쩌다가 이토록 가혹하고 잔인해진 것일까.

이런 사회에서 '애국'이란 무엇일까. 이 비통한 죽음의 실체를 드러내는 것인가, 아니면 가리고 감추는 것인가? 이 학살이 서슬 퍼런 권력의 실세와 핏줄로, 연줄로, 이해관계로 연결되어 있는데도 반성하지 않을 때, 이를 비판하는 것이 애국일까, 아니면 감싸면서 비판자에게 '종북' 딱지를 붙이고 폭력을 휘두르는 게 애국일까?

만일 두 번째가 애국이라면, '애국'은 '비겁'이나 '공모'와 어떻게 구분되는 것일까? 러시아의 야권 지도자 보리스 넴초프가 살해당했을 때, 많은 한국인이 충격을 받았다.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가 피습 당했을 때는 온 사회가 경악했다. 만일 이 가해자들을 '장하다'고 칭찬하면서 그를 돕기 위해 모금까지 벌인다면 어떨까?

놀랍게도, 이런 일이 한국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런 일을 벌이는 사람들이 스스로 '애국자'로 칭한다는 사실이고, 더 많은 사람이 이를 지켜보면서도 별로 놀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발밑의 백골에 무감각하듯 말이다.

폭력과 살인을 조장하는 세력

주한 미대사에 흉기를 휘두른 가해자는 범행 동기로 "전쟁반대"를 말했다. '평화'를 말하면서 흉기를 휘두르는 어처구니없는 짓을 한 것이다. 이 사건이 터진 후, 정부와 보수 정치인들은 비난의 칼을 진보세력에 돌렸다. 하지만 '평화'를 말하며 폭력을 행사한 가해자의 모순적 행동은 오히려 '전쟁을 결심해야 전쟁을 막을 수 있다'는 보수세력의 논리와 쌍둥이처럼 닮았다.

피습사건 후, 박근혜 대통령은 "배후가 있는지 등 모든 것을 철저히 밝혀서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당한 말이다. 살인과 폭력을 조장하는 세력이 있다면 준엄하게 법의 심판을 내려야 한다. 사람 목숨은 소중하며, 이 사실은 국적, 인종, 종교, 이념이 다르다고 해서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와 여당은 '종북세력', 즉 자신들에게 비판적인 국민들을 '배후'로 지목했지만,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범인을 감싸거나 '잘했다'고 칭찬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칭찬은커녕, 죄송하다며 고개를 조아리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자신이 '배후'가 아닌데도 '사과'를 하는 게 기이해 보이기는 했으나, 적어도 범인을 치켜세우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었다. 정말 '배후세력'은 다른 곳에 있었다.

<오마이뉴스>의 신은미 시민기자는 귀한 시간과 돈을 들여 남북을 오가면서 양쪽의 이야기를 들려주던 좋은 이야기꾼이자, 귀한 '민간외교관'이었다. 그의 '민간외교'는 남북 관계가 파탄난 이래로 '정부외교'가 아예 존재하지 않았기에 더욱 특별했다. 나는 신은미씨가 기고한 글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꼼꼼히, 그리고 즐겁게 읽었다.

그의 여행기를 읽는 동안, 단 한 번도 그가 북한 체제를 옹호한다거나, '지상낙원'으로 그리고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오히려 온건하다 못해 보수적으로 느껴지는 경우도 있었다. 나는 북한 전문가가 아니지만, 그렇다고 문외한도 아니다. 미국대학에서 2년간 남북문제를 연구하고 강의했으며, 방북 경험이 많은 공무원이나 연구자를 초청해 강연을 듣고 대화를 나눴다.

신은미씨가 북한에 대해 밝힌 견해는 보수적인 미국 관리들에게도 쉽게 들을 수 있는 내용이었다. 다만 더 섬세하고, 생동감 있고, 아름다운 한국어로 되어 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나는 그가 비난은커녕, 상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실제로 상을 받았다.

그는 지난해 10월 통일언론상 특별상을 받았다. 한국기자협회, PD 연합회, 전국언론노동조합이 공동으로 시상하는 영예로운 상이었다. 신은미씨 글의 가치를 먼저 깨달은 것은 박근혜 정부였다. 문화체육부는 그의 책을 우수 문학도서로 선정하면서 "북한에 대해 선입견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다"고 호평했다. 나와 정확히 같은 견해였다. 통일부도 나서서 그를 홍보 영상에 출연시켰다.

그런 그를 ('조선'이라는 북한식 표기를 고집하는) 종편 방송이 '종북'이라고 부르자, (1998년 김정일에게 '보천보전투' 호외 순금판을 선물한) 신문사의 다른 종편 방송이 함께 '종북'을 노래했다. 곧 '일베'나 '수컷닷컴' 등의 극우 사이트는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과 비난으로 도배되었고, 그곳에 드나들던 한 고등학생은 강연장에 찾아와 사제폭탄을 던졌다.

"빨갱이는 다 죽여도 돼"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에 올라온 사진.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에 올라온 사진. ⓒ 일베

더욱 놀라운 일은 사건 이후 일어났다. 우익 매체 <독립신문> 대표와 일베 회원 등이 가해자를 '애국소년', '투사'로 부르며 '돕기 모금운동'을 벌인 것이다. 한 개인의 강연을 '종북'에 딱지를 붙여 폭력행위를 부추긴 종편은 "장하지만 표현 방법이 조금 잘못됐다"는 패널의 논평을 내보냈다.

인터넷 게시판에는 "남산 지하실에서 고문으로 죽여버려", "죽창으로 난도질해야," "저 빨갱이 X들 토크쇼에 참석한 빨갱이들도 다 쳐죽여" 같은 끔찍한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남북문제를 가르치던 시절, 북한에 다녀온 미국 음대 교수와 이야기를 나눈 일이 있다. 그는 '북한의 클래식 공연수준이 꽤 높다'고 운을 뗐다.

그는 북한의 공연문화를 찬양고무하면서도 인권은 거론하지 않는 만행까지 저질렀다. '대동강물이 푸르다'라는 말이 폭탄 세례감이라면, 이 사람은 대체 어떤 피의 보복으로 응징해야 마땅할까? 하지만 나는 '그러냐'고 말했을 뿐, 폭탄을 조립하거나 죽창을 다듬을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듣기 싫으면 안 들으면 된다. 그게 그들이 다른 사람들을 "다 죽이겠다"고 말하면서까지 지키겠다는 '자유민주주의'의 기초다. 누구 말이 거슬린다고 증오를 부추기고 사제폭탄을 던지는 것은, 그 말이 듣기 싫은 사람에게 칼을 휘둘러도 좋다고 말하는 것이다. 미대사 폭행사건의 '배후'에는 폭력을 미화하고 부추겨온 사람들이 있다.

만일 지금의 주한 미국대사가 신은미씨가 말 한 것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면 보수세력이 어떻게 반응했을까? '냉전의 틀을 벗어난 유연한 사고'라고 극찬하며 부채춤을 추지 않았을까? 또 한 가지 궁금한 점은, 신은미씨 활동의 '배후'였던 문화체육부, 통일부, 박근혜 정부에 대해서는 왜 '애국행위'로 맞서지 않느냐는 것이다. 결국 사건의 기저에 자리 잡은 것은, 자기모멸적 인종주의와 권력에 대한 비굴한 복종이다.

보수세력은 '애국'을 말하지만, 이들이 사랑하는 것은 집권세력의 품이고, 이들은 '권력'과 '나라'를 구분하지 못한다. 폭력적 권력에 저항할 용기가 없을 때 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권력, 나라, 자기를 동일시하는 것이다. 이들에게 힘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그 자체로 선이다.

험악한 말과 거친 행동 때문에 강해보일지 모르나, 이들은 매우 나약하고 소심한 사람들이다. 이런 그들이 남을 협박하고, 조롱하고, 심지어 폭력까지 행사하는 '용기'를 보이는 것은, 단 하나의 이유, 즉 무슨 짓을 해도 막강한 권력이 자기를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해 왔다.

산, 들판, 도로, 운동장, 아파트 단지, 그 어디에 묻혀있을지 모르는 수많은 유골이 그 사실을 입증한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한국은 증오와 학살 위에 세워진 불행한 나라다. 이 사실은 어쩔 수 없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이 증오의 역사를 되풀이할지 말지의 문제다.

넴초프 암살 사건이 한국에 주는 교훈

 넴초프가 총격을 받고 쓰러진 자리에 사람들이 가져다 놓은 꽃들.
넴초프가 총격을 받고 쓰러진 자리에 사람들이 가져다 놓은 꽃들. ⓒ 강인규

신은미 테러사건은 러시아의 넴초프 암살사건과 여러 모로 유사하다. 정부가 자신의 이익에 반하기만 하면 무조건 '국익을 해치는 행위'로 규정해 탄압하고, 정부와 유착한 언론이 '종북'이나 '반역자' 같은 딱지를 붙여 대중들의 증오를 불러일으키고, 정권추종을 '애국'으로 착각하는 우익단체가 물리적 행동에 나서는 것이다.

러시아 국영언론은 푸틴의 긍정적 이미지를 재생산하는 가운데, 그에 반하는 사람들을 '역적' 또는 '이적 행위자'로 비난해 왔다. 넴초프는 그런 '역적' 가운데 한 명이었다. 박대통령의 지지자와 유사하게, 푸틴의 지지자들 역시 집권세력을 비판하는 것이 '국가에 반하는 것'이라는 신념을 갖고 있다.

넴초프 살해는 이런 사람들에 의해 저질러졌을 가능성이 크다. 자신들은 '애국'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을지 모르나, 사실은 용납될 수 없는 범죄였을 뿐 아니라 국가를 과거로 되돌려놓은 '해국'행위였다. 미대사 피격과 신은미 기자 테러 사건도 마찬가지다. 넴초프가 생전에 했던 말은 한국과 러시아 국민 모두 새겨들을 만하다.

"나라를 망가뜨리는 정권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나라를 망가뜨리는 데 공모하는 것이고, 결국 나라를 혐오하는 행위입니다. 정부가 나라를 잘못 이끌 때 이를 비판하고 맞서 싸우는 사람들이 진정한 애국자입니다."

목숨보다 중요한 이념은 없다. 이념이 사람을 위한 도구이지, 사람이 이념을 위한 도구가 아니기 때문이다. 당신의 신념이 중요한 만큼 다른 사람들 신념도 중요하며, 다른 사람들 신념이 틀릴 수 있듯, 당신 신념도 틀릴 수 있는 것이다. 당신의 신념이 틀렸다고해서 당신의 목숨이 무가치해지지는 않는다.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다.


#넴초프#박근혜#신은미#애국#미대사 피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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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학 교수로,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 기술과 문화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미디어기호학>과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를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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