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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원리 백자자료관을 찾아

 분원초등학교
 분원초등학교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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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난설헌묘에서 분원리로 가는 길은 중부고속도로 아래로 난 터널을 지나 389번 지방도로 바로 연결된다. 그런데 대형버스가 좌회전해 들어가는 게 불가능하다. 웬 터널을 이리도 좁고 불편하게 만들었는지. 우리는 별수 없이 왔던 길로 되돌아가 경안천을 건넌 다음 389번 지방도를 따라간다. 이 도로는 경안천을 따라 하류로 가면서 도로번호가 325, 342로 바뀐다.

경안천은 분원리에 이르러 한강에 합류되는데, 이곳에서 보는 한강은 바다처럼 넓다. 3월인데도 아침에 눈이 조금 뿌려 아직도 잔설이 남아 있다. 우리는 차를 산수로 삼거리 분원초등학교 입구에 세운다. 그곳에 분원도요지라는 표지석이 보인다. 그리고 분원 백자자료관이라는 표지판도 보인다. 길은 분원초등학교 가는 길을 따라 나 있다. 오르막길을 따라 오르니 그곳에 분원초등학교가 있다.

 분원리 백자자료관 외부
 분원리 백자자료관 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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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운동장 앞을 지나 계속 언덕길을 오르니 컨테이너 박스 모양의 백자자료관이 나타난다. 요즘 컨테이너 형태 박물관이 유행인가? 짓기는 쉽지만, 예술성과 미학성이라는 측면에서 영 아니올시다다. 입구에는 '한강 따라 500년, 분원에서 왕실까지'라는 상설전 제목이 보인다. 그러고 보니 이곳 분원리가 한강변에 있고, 분원의 역사가 500년이나 되었나 보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전시관이 생각보다 잘 꾸며져 있다.

분원은 사옹원(司饔院)의 분원(分院)을 말한다. 사옹원은 조선시대 왕실과 궁궐에 필요한 음식과 관련된 업무를 관장하는 관청이다. 이때 음식을 담을 백자를 구워 만드는 장소(燔造所)를 분원이라 불렀고, 그것이 1752년부터 1883년까지 이곳 분원리에서 운영되었다. 이곳 광주지역은 백토가 생산되고, 도자기를 구울 나무가 풍부하며, 한강을 따라 수운이 발달했기 때문에 사옹원 분원이 설치될 수 있었다.

도공들의 땀과 혼을 만나다

 분원리 백자자료관 내부
 분원리 백자자료관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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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원 백자자료관은 분원리 가마터 발굴조사 결과를 알리기 위해 가마터 인근 폐교사를 리모델링해 개관했다. 건물의 바깥면을 철판으로 둘러싸 수장고처럼 만들었다고 한다. 건물 안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가장 먼저 우리는 토층 전사패널을 만날 수 있다. 가마터에 있던 흙과 도자기가 뒤섞인 퇴적층으로 가마터의 역사를 아는 데 아주 중요하다.

두 번째 만나는 전시실은 분원 발굴시 나온 도자기 전시장이다. 이들 도자기는 상당수가 파편상태로 남아 있다. 그것은 제대로 완성된 도자기는 궁궐로 납품되어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이들 도자기에는 그림이 들어가기도 하고 문자가 들어가기도 한다. 국화문, 모란문이 보이고, 제(祭)라는 글자도 보인다. 그리고 양각이나 음각으로 도자기에 입체성을 부여하기도 했다.

 도자기를 구워내기 전후의 모습
 도자기를 구워내기 전후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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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란문 청화백자
 모란문 청화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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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는 또 완성품 백자를 전시하고 있다. 백자는 순백자를 기본으로 해서 상감백자, 청화백자, 철화백자, 동화백자가 있다. 이곳 분원에서 생산된 것은 대부분 청화백자다. 청화백자란 백자에 코발트(청화) 안료로 문양을 그리고 그 위에 투명 유약을 발라 구워낸 도자기다. 청화백자는 17~18세기에는 왕실에만 납품되었지만, 19세기에 이르러 대중화되면서 생활용기로 사용되었다. 대표적인 것으로 청화백자 운룡문 항아리, 국화 나비문병이 있다.

마지막으로 한쪽으로는 이곳 분원의 가마를 소규모로 축소해 재현해 놓았다. 가마는 반지하 오름식 계단 가마다. 백자관 앞 A, B지구에서 4기의 가마, 공방터 그리고 온돌시설이 확인되었다고 한다. 가마는 자연경사면을 따라 설치되었고, 그 길이가 23m나 되었다고 한다. 내부는 내 개의 번조실로 나누어졌고, 번조실 사이에는 격벽이 설치되어 있었다. 

땀은 도공이 흘렸는데 이름은 관리만 남아

 사옹원 선정비군
 사옹원 선정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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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자자료관 관람을 마치고 나오니, B지구 발굴지 앞에 사옹원 선정비가 서 있는 게 보인다. 20기 가까이 되는 것 같다. 이들을 자세히 살펴보니 사옹원 도제조를 지낸 관리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그 중 세 사람의 이름이 눈에 띈다. 능창군(綾昌君), 채제공(蔡濟恭), 박규수(朴珪壽)다. 이들은 모두 사옹원 (도)제조로 이곳 분원에 파견되어 백자 번조를 책임졌던 것 같다.

능창군청덕선정비는 건륭(乾隆) 20년(1755) 3월에 세웠다. 그럼 능창군(1691-1768)은 누굴까? 그의 이름은 이창수(李昌壽)로, ≪선원보략 수정의궤(璿源譜略修正儀軌: 1760)≫에 제조 능창군 이창수라고 나온다. 그리고 능창군은 영조(1694-1776) 임금과 아주 가까이 지낸 것으로 보인다. 조선왕계도에 이름이 없는 것으로 보아, 선대에 받은 군호를 세습한 모양이다.

 사옹원 도제조 채제공선정비
 사옹원 도제조 채제공선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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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제공선정비는 도광(道光) 5년 을유 4월에 세웠다고 안내판에 적혀있으니, 1825년에 세워진 것이다. 그렇다면 사후에 세워졌다는 얘기가 된다. 왜냐하면 채제공(1720-1799)은 정조 임금 때 좌의정을 지낸 남인의 영수이기 때문이다. 자료를 보니 그는 영조와 정조 때 개혁을 추구한 진보적인 지식인이었다. 그러나 그가 사옹원 도제조를 했다는 기록은 찾기가 어렵다. 그리고 사후에 선정비가 새겨진 것은, 채제공의 관작이 1823년 회복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박규수선정비는 광서(光緖) 3년(1877) 7월에 세운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그가 언제 사옹원 도제조를 했는지 역시 확인할 수 없다. 박규수(1807-1876)는 연암 박지원의 손자로 역시 개화에 뜻을 둔 진보적인 지식인이었다. 그의 제자인 김윤식(金允植), 김홍집(金弘集), 유길준(兪吉濬) 등이 나중에 개화 운동을 주도했기 때문이다. 그의 선정비 역시 사후에 세워졌다 그런 점에서 송덕의 진실성이 느껴진다.

상번천리 가마터 전시장

 상번천리 가마터 전시장
 상번천리 가마터 전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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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번천리 가마터 전시장은 중부고속도로 광주나들목 바로 옆에 있다. 그런데 버스 기사가 그것을 발견하지 못하고 그만 고속도로로 들어가고 말았다. 순간의 선택이 20분을 고속도로에서 허비하게 만들었다. 그리고는 정신을 차려 상번천리 가마터전시장을 다시 찾을 수 있었다. 상번천리 가마터전시장은 상번천리 522-2번지에 있다. 해공로를 따라 가다 보면, 왼쪽으로 보이는 조립식 철골구조물이다.

전시장 안으로 들어가면, 경사진 언덕에 가마터와 공방터가 나타난다. 가마터에는 오름식 계단 가마가 있고, 그 옆에 자기편들이 산재해 있다. 이곳의 자기는 주로 백자다. 수준에 있어서도 분원리에서 생산된 자기만 못한 것 같다. 그리고 가마터 오른쪽에 있는 공방터는 일종의 작업장이다. 이곳에서 장인들이 백토를 수비하고 반죽한 다음, 성형하고 건조하는 작업을 했다.

 공방터
 공방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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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방터에서는 또한 온돌이 발견되었다. 크기는 가로×세로가 4.6m×1.8m로 생활공간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을 보고 나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위쪽 공간에 마련된 도자기 전시장으로 올라간다. 이곳의 유리관 안에는 가마터에서 출토된 도자기들이 완형 또는 파편으로 전시되고 있다. 내 눈에는 용문, 난초, 꽃 등이 새겨진 백자보다 글씨가 새겨진 백자 더 눈에 띈다.

글자는 한글과 한자 두 가지가 있다. 한글로 된 것은 '려다, 가젼' 같은 글자가 보인다. 완형으로 발견되었다면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있을 텐데 아쉽다. 한자로 된 것 중 연(蓮)자가 적혀 있는 것도 인상적이다. 그렇지만 더 인상적인 것은 백자로 만든 묘지(墓誌)다.

 자기로 만든 묘지
 자기로 만든 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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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지는 죽은 사람의 무덤에 넣는 지석으로 이처럼 도자기를 구워 만들기도 했다. 묘지에는 '갑오년에 진사를 했고, 2남2녀를 두었는데 다 어려서...' 같은 글자가 보인다. 도자기는 사발, 대접, 잔, 접시, 항아리, 주전자, 향로, 제기, 연적 등 다양한 용도로 제작되었다. 그러나 묘지처럼 죽은 자와 함께 하는 명기(皿器)도 제작되었다. 그 때문에 지금도 무덤에서 묘지와 명기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광주 관요#사옹원 분원#분원리 백자자료관#청화백자#상번천리 가마터 전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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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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