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태까지는 암울한 투병 생활을 써 왔지만, 지금부터는 제 나름대로의 암을 다루는 방법과 병으로 인해 우울해진 마음을 털어내는 희망 열차로 달립니다. - 기자말말 실수 중에는 서로 너무 믿어서 '알겠거니' 혹은 '믿겠거니' 하고 하는 말과 아무 생각 없이 하는 말이 있다. 실수라고 하고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그 말을 듣는 상대방이 어지간한 대인배가 아니고서는 마음에 상처를 받기 마련이다.
실수한 당사자가 순수한 마음을 가졌거나 영리한 사람이라면 얼른 사과를 할 테고, 그러면 서로 웃어넘길 수도 있다. 하지만 실수인 줄 알면서도 당혹스러워서 또는 속으로만 미안해 하면서 사과를 안 한다면, 결국 서로 돌이킬 수 없는 거리감을 초래한다. 만약 두 사람이 친한 사이였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어쩌면 말실수를 한 사람은 쉽게 잊어버렸을 수도 있고, 아니면 아예 기억조차 못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상대방에겐 큰 상처로 남을 수도 있다. 그 상처는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꿔버릴 수도 있다.
나는 요즘 전남 장성에 머물고 있다. '울고 싶은데 뺨 맞은 격'이라고, 그렇지 않아도 '나이 들면 시골에 내려가서 살아야지 하고 생각하던 차에 남편이 먼저 낙향했고, 내 몸마저 아픈 관계로 생각했던 것보다 빨리 시골로 내려왔다. 하지만 아직은 나의 활동처가 서울이고 미혼의 아이들이 서울에서 살고 있기에 한 달의 절반은 서울에 가 있는다.
"축령산, 암환자 투성이드만... 좋은 줄 알지만 찝찝해서"장성은 축령산 편백나무 숲과 방장산 휴양림이 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전국에서 가장 공기 좋은 고장으로 일간지에 나올 정도로 청정 지역이다. 그런 고장에서 보낸, 일 년 남짓의 시골 생활은 나에게 건강을 가져다줬고, 마음의 여유와 함께 생활의 느긋함까지 선물했다.
그러니 나는 자연스럽게 "시골생활이 어떠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장성에 대한 자랑을 늘어놓는다. 특히 축령산 편백림이 내 산 인양 극찬을 한다. 대다수 사람들은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놀러 한 번 가야겠다"고 말하지만 가끔씩 아무 생각 없이 말을 뱉는 사람도 있다. 얼마 전 서울에서 한 어떤 모임에서도 나는 축령산 자랑을 했다. 그런데 한 사람이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내 가슴에 가시다발을 던졌다.
"제가 장성 살 때 놀러 한 번 오세요. 연산홍도 피기 시작했고 이름 없는 예쁜 풀꽃도 천지삐까리고 특히 축령산의 공기는 전국에서 제일 맑대요.""아, 그 축령산! 거기 오는 사람은 전부 암 환자라면서요.""아니에요. 환자가 많기는 하지만 그래도 안 아픈 사람이 더 많아요. 환자 가족도 있고, 축령산 명성에 관광버스가 관광객을 실어 오기도 해요.""에이, 내가 한 번 가 봤는데 암 환자 투성이드만. 좋은 줄은 아는데 찝찝해서."봄이 되니, 눈 가는 곳마다 꽃세상이다. 혼자 꽃세상을 보기 아까워서, 지인들과 같이 즐기고자 꺼낸 말이었는데… 그 자리는 그만 싸~해지고 말았다. 슬며시 내 눈치를 보는 사람, 화두를 바꾸는 사람, 이래저래 그 분위기를 바꾸려고 몇 사람이 애를 썼지만 결국 그 모임은 일찍 끝나고 말았다.
남편의 권유로 단식원에 들어갔지만...그 일을 겪고 나서, 지난해 단식원에 들어갔을 때 생긴 일이 생각났다. 마누라가 아프면, 가족 중에 가장 몸 달고 답답한 사람은 배우자다. 남편은 이것저것 알아보다가 단식원에 들어가자고 했다. 몇 번을 거절했지만 남편이 멀쩡한 자기도 같이 가겠다며 하도 간절하게 권하기에 '전문가가 지도하는 거니까 괜찮겠지' 하고 8박9일 일정으로 단식원에 들어갔다.
솔직히 말하면, 들어가는 날부터 3일이 지날 때까지 나는 적응을 못하고 집에 가자고 남편을 졸랐다. 평소에도 말 수가 적은 남편은 귀를 틀어막은 것처럼 못 들은 척 내 말에 대꾸조차 안 했다.
그 곳에서는 아침에 감잎차 한 대접, 오후에 된장국물 한 대접만 마셨다. 물은 하루에 2ℓ를 마시게 했고 소금을 조금씩 먹게 했다. 그리고는 아침 저녁으로 관장을 했다. 사람 뱃속에 무엇이 그렇게도 많이 들어있는지 빼도 빼도 한없이 쏟아졌다. 악취는 어찌 그리도 심한지 내 뱃속에서 나오는 것인데도 숨을 쉴 수 없을 지경이었다.
곡기나 건더기는 아예 구경조차 할 수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배가 고프다거나 음식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렇게 4일이 지나자 정신이 맑아지고 몸이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4일째 되는 날부터는 냉·온욕을 해야 된다고 했다. 단식원에는 욕탕 시설이 안 돼 있어서 가까운 읍내로 나가서 대중목욕탕을 이용했다.
단식원 원장은 대중목욕탕에 가기 전에 몸을 깨끗이 씻고 가야 된다고 당부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기에는, '어차피 목욕탕에 가는데 왜 씻고 가나' 하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모이는 곳이니까, 아픈 사람이라서 혹시라도 나쁜 냄새가 날 수도 있으니까, 그로인해 다른 사람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기 위해서 씻고 가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샤워할 때 비누칠 하지 말라는 단식원의 말을 잠깐 무시하고 향 좋은 비누로 몸을 깨끗이 씻고 목욕탕에 갔다.
"암도 당뇨병도 전염병이 아닙니다"
목욕탕에 간 사람은 모두 8명이었다. 암 환자 3명, 당뇨병 환자 1명, 비만 때문에 살을 빼려고 온 여학생이 4명이었다. 이 모두가 단독으로 병을 앓고 있을 뿐 그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거나 피해를 주지 않는 사람들이다. 뿐만아니라 암 환자는 가장 깨끗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나를 포함한 우리 8명 중 유방을 절제한 2명은 아무리 아무렇지 않은 척 행동해도 스스로 위축이 되어 가슴을 가리고 욕탕으로 들어갔다. 눈은 발끝만 내려다보고 조심조심 몸을 다시 헹구고 욕조에 들어가서 냉·온욕을 하고 있는데, 손님 몇 명이 힐끗거리며 들으라는 듯이 나누는 말소리가 들렸다.
"이 목욕탕에 이젠 못 오겠다. 지난달에도 단식원 사람들이 왔기에 주인한테 못 오게 하라고 했는데 또 왔네.""그러게, 저 사람들 암 환자지? 아이 찝찝해.""얼른 씻고 나가자. 에이 기분 나빠."죄 진 것도 없건만, 우리 모두 그 소리를 들었건만, 아무도 그 말을 한 사람에게 따지지 않았다. 가슴이 아리고 쓰렸다. 다른 유방암 환자는 그만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나는 힘들어서 더 이상 못하겠다는 핑계를 대고 먼저 욕조에서 나왔다. 당뇨병을 앓는 사람도 눈치를 채고 따라 나왔다. 우리 둘은 아랫도리만 입고 어깨에 수건을 걸치고 그 사람들을 기다렸다. 조금 있다가 그 사람들이 나왔다. 두 명이었다. 내가 먼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아까 두 분이 하는 얘기를 들었네요."나는 어깨에 걸쳤던 수건을 벗고 그 사람들 쪽으로 가슴을 돌렸다. 당뇨 여인도 어깨의 수건을 벗었다.
"보시다시피 저는 유방암 환자고, 이 분은 당뇨가 있어서 이곳에 오게 됐어요. 아주머니들이 어떻게 알고 계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암은 전염병이 아닙니다. 당뇨병 역시 전염병이 아닙니다. 그리고 암 환자만큼 깨끗한 사람도 드물 겁니다. 암 환자는 면역력이 떨어져서 약하기 때문에 조금만 지저분해도, 나쁜 음식을 먹어도 안 됩니다. 그러니까 대체적으로 일반인들보다 훨씬 깨끗하다고요.""…….""아까 찝찝하다, 기분 나쁘다고 하셨지요? 왜 기분이 나쁘며 뭐가 찝찝한가요?"그렇게 말을 하는데 나도 몰래 주책없이 눈물이 마구 쏟아졌다. 그제야 아주머니들은 당황해 하며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암환자, '나와는 다른 고통 겪는 사람'으로 생각해줬으면그날 저녁, 멀건 된장국물을 한 대접씩 마시고 우리는 한 자리에 모여서 낮에 목욕탕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별꼴이라고 일축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분해 하는 사람도 있었다. 특히 다이어트를 위해서 온 4명의 학생들은 억울하다고 했다. 그 학생들은 모두 고등학생이었는데 처음 볼 때는 데면데면하더니 내 어깨에 손을 얹고 위로를 하기도 하고, 역성을 들며 함께 아파해 주기도 했다. 내가 아파서 불쌍하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일 년이 지난 지금도 비슷한 상황을 목격하거나 겪었을 때, 그 일이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은, 그만큼 상처를 많이 받았다는 것이다. 말하는 사람은 무심코 했겠지만,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는 맞아서 죽는다'.
축령산 편백림에 환자가 많아서 찝찝하다는 사람도, 환자와 함께 목욕을 해서 찝찝하다는 사람도 악의는 없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믿고 싶다. 그러나 앞으로는 암 환자를 볼 때 환자로 보지 말고 '나와는 다른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주면 참 좋겠다.
○ 편집ㅣ최유진 기자 덧붙이는 글 | 단식원 얘기는 '그 때의 상황'을 설명하느라고 쓴 글일 뿐입니다. 이 점 독자들은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